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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formoflove Oct 31. 2024

사랑이 잘

아이유(with 오혁)

창밖으로 잔잔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커피잔이 놓인 테이블 위로 차가운 공기가 내려앉아 있었다. 그는 휴대폰을 내려다본 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고, 그녀는 작은 숨을 내쉬며 그를 마주 보았다. 오래도록 사랑했던 그가 여전히 눈앞에 있었지만, 그와의 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멀게 느껴졌다.


“넌 지금 나한테 관심도 없잖아.”


그녀의 목소리는 작지만 깊은 울림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시선을 들어주지 않았다. 대답 대신 손가락을 바삐 움직이며 화면을 스크롤할 뿐, 마치 그녀의 존재조차 잊은 듯했다. 한숨을 삼킨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그냥 친구야? 뭐야, 이게.”


그녀의 질문 속에는 짙은 외로움과 서운함이 가득 담겨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무심하게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긴 침묵이 내려앉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이제 예전처럼 가벼운 대화도, 설렘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로의 얼굴만이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한때 모든 것을 함께 나눴던 두 사람이 어느새 이렇게 멀어진 것임을, 그녀는 이제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의 눈길을 피하는 모습이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무언가 이미 멀어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견디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느 저녁, 고요가 그를 에워싸던 순간, 그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랑이… 잘 안 되는 것 같아.”


그의 손이 잠시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는지, 입을 열고도 침묵을 삼켰다. 한때 사랑한다고 말할 때마다 설렜던 순간들이 이제는 모두 흐릿해져 버렸다. 그녀는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아보았지만, 그의 손끝은 더 이상 온기를 전해주지 않았다. 식어버린 감촉이 그저 낯설고 차갑기만 했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힘없는 목소리로 “미안해”라고 말했다. 사과마저 허공에 흩어져 아무 의미도 남기지 않았다. 그녀는 그 말을 들으며 깨달았다. 이젠 아무리 사과해도, 그 사과가 두 사람의 틈을 메울 수 없다는 것을. 그조차도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로 “미안해”를 반복할 뿐이라는 것을.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이 관계의 끝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깊은 밤, 그녀는 방 한가운데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차분했지만, 어딘가 먼 곳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어디야?” 그녀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택시야. 집에 거의 다 와.”


짧은 대답 뒤에 이어진 긴 침묵. 어둠 속에서 서로의 숨소리만이 전화기 너머로 희미하게 들렸다. 그녀는 이 순간이 마지막일 것 같은 예감에 한참을 망설이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냥… 다 미안해.”


작고 담담한 목소리에는 애써 눌러 담은 체념이 묻어났다. 그가 조용히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모든 게 조용히 끝나버릴 것 같은 정적이 흐르던 그 순간, 그는 머뭇거리며 덤덤하게 말을 덧붙였다.


“… 나, 네 집에 지갑 두고 왔어.”


그가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이었지만, 그 속엔 단순한 핑계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 말 한마디에 붙잡아 보려는 마음이 실려 있었다. 사실 그가 무언가를 두고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이대로 모든 걸 끝내고 싶지 않은, 이 마지막 대화 속에 머무르고 싶은 그의 마음이 전해졌다.


서로의 목소리가 교차하던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있잖아” 하고 입을 열었다. 그녀가 피식 웃으며 머뭇거렸다.


“아니야… 그냥.”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다시 물었다.


“아니, 말해봐. 뭐가?”


그녀는 전화를 쥔 손이 떨리는 걸 느끼며, 마지막으로 남은 마음을 꺼내놓았다.


“이제 더…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그녀의 목소리가 공기 속에 가라앉았다. 택시는 그의 집 앞에 멈춰 있었다. 창밖의 빗방울이 차창을 두드리며 잔잔히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택시에서 내리지 않은 채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자신조차도 끝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제는 모든 걸 놓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동안 함께해 온 순간들이 가슴속에서 서서히 뒤섞이며 아련하게 남아 있었다.


그가 전화를 끊고 천천히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아무도 없는 집 안에서 조용히 전화를 내려놓고 한참을 어둠 속에 멈춰 있었다. 두 사람의 흔적이 여전히 그들 곁에 남아 있었지만,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흔적들뿐이었다. 다만 그 흔적이 어디선가 잔잔하게, 흔들리듯 남아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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