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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U Apr 12. 2024

[인터뷰하는 하루 이야기] 김은희 옆 장항준

10년 회사생활 끝, 글밥 10년 열어준 남편

“회사 그만두면 뭐하고 싶어?”     


지난 여름 어느 날, 저녁식사를 마치자 남편은 ‘내일 저녁엔 뭐 먹고 싶어?’ 정도의 가벼운 말투지만 조심스러운 눈을 하고 물었다.     


“글쎄…. 읽고 쓰는거?”     


미리 생각해둔 게 없어서 평소 하고 있던 것 중에 골라 얘기했다.     


“오, 어떤 글?”

“글쎄…. 그냥… 뭐든?”     


솔직히 나는 얼버무리며 넘기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음. 그래, 퇴사하고 일단 푹 쉬면서 천천히 생각해보자.”     




회사 생활에 괴로워하던 내가 결국 퇴사하기로 한 뒤로, 우리 부부는 매주 일요일이면 가족회의를 했다. 사실 남편이 먼저 퇴사를 제안하긴 했지만, 예상치 못하게 결혼한 지 반년 만에 맞벌이에서 외벌이로 경제 체제가 바뀌게 생겼으니 나도 남편도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나는 나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단단한 각오와 구체적이지 않더라도 큰 그림이 필요했다. 나는 회사에서 하던 습관처럼 주간보고 형식에 맞게 어떤 목표와 계획이 있을지 적어가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들을 점차 좁혀나갔다.     


회의를 준비하며 나는 글을 쓰고 싶다던 말이 얼마나 막연했는지 실감했다. 나는 과연 무엇을, 왜 쓰고 싶은가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다. 내 이야길 하고 싶은 건지, 남의 얘길 하고 싶은 건지, 내 얘길 남의 얘기처럼 쓰고 싶은 건지,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이야길 쓰고 싶은 건지…. 그 이야기를 통해 읽는 사람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은건지, 그저 나 자신을 위해 쓰고 싶은건지 영 알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점점 더 강렬해졌다. 가장 많이 써본 글은 아무래도 내 얘기이니 쉽게 써지긴 하겠지만, 잘 쓸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성질 급한 나는 가장 빠른 시일 내에 들을 수 있는 글쓰기 강좌를 신청해 듣기로 하고, 그 전까지는 혼자 뭐든 써보는 시간을 갖기로 다짐했다.     


목표는 하루에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주제, 형식을 불문하고 뭐든 매일 쓰는 습관을 들이고 싶었다. 그러다 보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다짐과 반비례하는 실행력이었다. 잘 쓰고 싶은 욕심과, 잘 쓰지 못할 바엔 아예 쓰고 싶지 않은 나태함이 글쓰기를 가로막았다. 생업을 그만둔 30대 후반의 작가지망생으로서 계단식 성장은 사치같았다. 감사하게도 남편은 단 한 번도 재촉하거나 서두른 적이 없다. 시가에서도 나의 정신적 안정을 염려할 뿐 내가 하려는 일에 대해 어떤 질문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 월급 안 받는 건 아깝지 않니?” 라며 회사에 대해 미련을 내비치는 건 나의 엄마뿐. 그럴 때면 신경이 곤두서 급하게 대화를 매듭짓곤 했는데, 그렇잖아도 조바심을 견디지 못하던 나 때문이었다.      


시간이 흘러 하루 한 편은 무리임을 인정했고, 글쓰기 강의에 나를 밀어넣어 던져지는 과제부터 써보기로 했다. 지켜보니 나라는 닝겐은 혼자만의 다짐이 아닌 ‘약속된 마감’이 있어야만 글을 완성했다. 브런치스토리에 연재 형식으로 인터뷰 글을 쓰기로 한 것도, 글감과 함께 마감을 던져주는 글방을 찾아간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통번역가 친구는 프리랜서로 일한 지 벌써 6년차에 접어들었다고 했다. 통번역대학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프리랜서로 일하는 동안에도 기복없이 생계를 이어왔다. 스스로 그 비결로 성실함을 꼽았다. 성실함은 무엇인가. 목표를 위해 꾸준히 나를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가만히 앉아 목표와 계획을 세우는 건 나같은 불성실분자도 즐겨하는 일이다. 어릴 적부터 그는 “무리한 목표는 아예 생각지도 않는다”고 했다. 목표도 계획도 조금만 노력하면 달성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잡았다.     


나도 회사다닐 땐 데드라인에 맞춰 업무 계획을 짜고 일을 진행시켰다. 무리한 일정이라면, 앓는 소리 한 번 해볼 뿐 어떻게든 해냈고, 예상했던 일정보다 더 많은 시일이 소요된다면 그는 그대로 야근을 해서라도 기한을 맞췄다. 회사에서는 그랬다. 업무 관련자들에게 폐 끼치고 싶지 않았고,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무리해서라도 해냈다. 무소속인 현재의 나는, 나를 위해서는 그러지 않았다.     


친구의 얘기를 들으며 하루 한 편의 글을 쓰겠다고 했다가, 매일 실패했던 내가 머릿속에 스쳤다. 나는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한 내 시간과 노력, 무엇보다 나의 능력 수준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관성을 역행하기 위해 일기를 쓰며 마음을 다잡아도, 매일 아침 노트북 앞에 앉아 허공을 헤매는 일은 습관으로 붙질 않았다. 작심삼일이 반복됐다. 머릿속엔 써야 한다는 생각을 늘 붙들고 있지만, 매일 실패하다보니 실망과 죄책감으로 속이 부대꼈다.     


그러다 <유퀴즈>에 나온 심리학과 교수의 설명을 듣고는 의문이 좀 풀렸다. 이 교수의 연구팀이 조사한 결과 완벽주의 성향의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꾸물거리는 행동적 특성을 보인다고 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많고, 다른 사람의 평가를 염려하기 때문에 공부든 일이든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철두철미한 완벽주의자는 오히려 꾸물거리지 않는단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기 때문이다. 나는 전자인 완벽주의‘성향’의 사람인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특히 ‘사회부과 완벽주의자’에 주목하는데, 완벽주의자이고 싶었던 적이 없으나 주변 기대에 부응하다보니 액면만 완벽주의자가 된 유형을 말했다. 속이 뜨끔했다. 뭐든 “잘해야 돼”가 내면화되어 있는 사람이라니. 글을 쓰기로 한 것은 내 선택이지만, 그 과정에서 내면적으로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것은 ‘나를 위해 잘하고 싶은 마음’보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잘해야 된다’에 방점을 찍고 있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이는 자존감과는 또 다른 문제다. 덕분에 나는 내가 글을 쓰고자 하는, 추구하는 본질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머리가 굵은 후로 내 꿈은 줄곧 ‘주변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세계적인 저자가 되는 것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 기자지망생인 적도 있도 있었지만 직업 자체가 꿈인 적은 없었다. 그러니 나는 글이라는 매개로 누구에게라도, 단 몇 명에게라도 내 글을 읽는 독자에게 의미있는 파장을 만든다면 꿈을 이룬 것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 먼저 내 안에서의 파장을 일으키는 것이 필요하다. 고통스러운 기억, 내재된 억압, 무지에서 오는 선입견 등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이런 경험을 글방에서 짧게나마 하고 있었다. ‘하루’라는 필명으로 어디서도 꺼내지 못했던 내용을 글로 풀어냈고, 글을 글로 받아내는 동료와 스승을 만났다. 물론 글에 대한 아쉬움을 들을 땐 ‘내(나)’가 아닌 ‘글’에 대한 피드백이라고 되뇌며 여전히 마음쓰곤 한다. 그만큼 내 글에 공감과 격려의 피드백을 보면 상상치도 못한 위로와 해방감을 느낀다. 이런 저런 감정의 파도를 지나고 나면 스승의 말씀을 떠올린다. 독자의 피드백은 “전체 독자 중 1/n 몫이다.” 바깥에 눈을 두어 독자가 원하는 글을 쓰려하거나, 피드백에 연연하지 않기로 한다.     


글방에서의 목표를 정비했다. 한 편의 글에서 내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글의 마지막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완결짓기. 꾸준히 말이다. 인터뷰 연재도 마찬가지다.      




잠들기 전, 남편에게 뜬금없이 고백했다.


“오빠 나중에 내 카드 못 써. 김은희같은 작가는 못 될 것 같아.”

“응. 괜찮아.”

“난 내가 그렇게 될 줄 알았는데. 오빤 안 될 줄 알고 있었어?”

“당연하지. 그런 사람은 0.1%도 안 될걸?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면 돼. 그거면 돼.”     


친정 식구들이 나로 인해 남편이 힘들어지지 않을까 걱정을 내비칠 때면 남편은 “열심히 외조해서 나중에 장항준 감독처럼 와이프 카드 쓰려고요”하고 씩씩하게 받아치곤 했다. 장 감독의 아내는 드라마 <킹덤>, <악귀> 등을 쓴 김은희 작가다. 엄마는 “아유, 그게 되겠니?”라며 딸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사위에게 미안한 마음이 뒤섞인 얼굴로 멋쩍게 웃었다.      


어쩌면 내 주변에선 나에 대해 큰 기대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내면의 눈이 바깥으로 향해있지만, 가장 큰 욕심은 내 안에서 자라고 있었는지도. 이제는 ‘너무 욕심내지 않고’ 내 능력보다 조금 더 노력해보기로 한다. 거창한 포부도, 무리한 목표도, 실행 계획도, 바깥만 보는 눈도 버린 채.


물론 로또 당첨을 꿈꾸듯 때때로 실없는 상상을 해본다. 내 이름이 새겨진 카드로 한도 없이 결제하는 남편의 모습을.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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