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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U May 11. 2024

차를 좋아해서 생긴 일_이현

37세 벤츠 코리아 세일즈 트레이너 이현 인터뷰 (2024년 3월)




 삼각별이 좋아서


현은 대학에서 생명과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졸업 후 진로를 정할 때는 전공을 살리지 않기로 했다. 이런 경우 보통 제약회사 영업으로 방향을 정하는데, 현은 이왕 영업을 한다면 “볼륨이 큰 걸 다루고” 싶었다. 졸업까지 한 학기를 남겨두고 군에서 제대한 현은 자동차를 떠올렸다.


“군대 선임이 쉬는 시간에 자동차 채널을 몇 번 보는데 그냥 재밌더라고요. 리뷰하는 거. (차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진짜 그게 다였어요.”


옆에서 같이 보다 보니 좋아지고, 나중에는 스스로 관련 잡지도 사 보게 되었다. 군인 시절에는 “사회에 나가면 좋은 차를 사서 멋진 여자를 만나야겠다는 꿈이 있었다”며 멋쩍게 웃어보였다. 좋은 차를 사고 싶다는 꿈은 자연스럽게 좋은 차를 다루고 싶다는 꿈으로 번졌다.


“일단 누가 봐도 세계적으로 가장 입지있는 브랜드를 취급해보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어요.”  


제대 후 마지막 학기 앞뒤로 계절학기까지 꽉꽉 채워 들으며 학점 앞자리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일 년 가까이 취업 준비에 올인한 덕분에 졸업 후 꿈의 직장에 출근하게 됐다.  


현의 첫 직장은 딜러사(社)다. 두 번째 직장 역시 딜러사다. 모두 벤츠를 판매하는 곳이었다. 벤츠 자동차 딜러는 보통 국산차 대리점 또는 수입차 딜러 경력을 차례로 쌓고 입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운이 좋게 대학 졸업하자마자 지원해서 한 방에 붙었다.” 실제로 출근하던 지점의 바로 위 선배와 7살 차이가 날 정도로 20대 신입이 드물었다.      


“운이 좋게 좋은 선배를 만나” 많은 도움과 지원을 받으며 일했다. 덕분에 더 적극적으로 임했다.

“베테랑 선배들보다 잘하는 점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노력한 게 두 가지 정도 있어요. 첫 번째는 선배들보다 차에 대해 많이 알아야겠다 싶어 공부를 확실히 많이 했었어요. (벤츠 코리아의) 트레이닝 센터에 가서 (세일즈) 교육을 받을 때 시험을 보면 항상 상위권에 있었어요. 두 번째는 막내다 보니까 발표같은 걸 나서서 했어요.”


자동차 영업사원이었던 현은 보다 안정적인 직무로 전환하고자 KCC오토로 이직했다. 전시장 관리 직무에 지원해 이직에 성공했건만 이번에는 벤츠 인증 중고차를 담당하라는 오더가 내려왔다. 당시 벤츠 본사에서 인증중고차 사업을 확장할 목적으로 집중 교육에 나선 때였다. 현은 전시장 관리 담당자이지만 인증 중고차 관련 교육을 받기 위해 벤츠 트레이닝센터를 다시 찾았다.               



     

 준비된 실력에 운 한 방울


“한성자동차 다니던 그 분 아니에요?”      

벤츠 본사의 담당 트레이너들이 현을 알아봤다. 교육 때마다 그랬듯이 현은 가장 먼저 손들고 발표했다.


교육을 마치고 일상에 복귀한 현에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이현 씨죠. 벤츠 코리아 000입니다.”

그 때 그 트레이너였다.      


벤츠 코리아에서 트레이닝 센터를 새롭게 짓게 되어 트레이너들을 영업하기 위해 물색 중이라고 설명했다. 평소처럼 열정적으로 교육에 임하던 현이 그에게 인상을 남긴 것이다. 그렇게 스카웃 제의를 받아들여 지금의 세일즈 트레이너가 되기 위한 면접을 보게 됐다.


벤츠 코리아는 한국지사임에도 독일 본사의 정책에 따라 입사 시 영어 면접을 필수적으로 거친다. 현은 영어 면접 경험이 없었지만 “정말 운이 좋게도 최종 면접에서 마주한 임원이 한국인”이었다. 솔직하게 자신의 영어실력을 고백했다. 대신 이를 커버할 만한 영업, 마케팅, 관리 능력을 강조했다. 당돌한 현의 모습을 좋게 본 당시 부사장은 현에게 합격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현은 첫 직장부터 세 번째 직장에 입사하기까지 곡절마다 “운이 좋았다”고 회상했다.     


사실 트레이너가 되기까지 많은 이들의 응원과 격려가 따랐지만 질투와 시기, 반감도 못지 않았다. 가족사(社)라고 부르는 딜러사의 중요 인력을 본사에서 스카웃하는 것이 마뜩잖았던 탓이다. 그럼에도 용기내어 주변에 조언을 구했고, 부족한 점보다는 강점을 내세워 관문을 뚫고 나갔다. 입사 후에도 자신을 증명하고 인정받기 위해 본사 인증 트레이너 자격증 취득은 물론이고 입사 초반 3~4년은 매일같이 야근하며 공력을 쌓았다.


현이 습관처럼 “나는 운이 좋다”고 하지만 앞서 말한 일들이 단지 운이 좋아 가능했을 리 만무하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은 기본이고, 이에 더해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고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그를 '운이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이쯤되니 주문처럼 외우고 싶어진다. "나도 운이 좋다!"




 소통하는 트레이너


현은 메르세데스 벤츠 AG의 한국지사인 벤츠 코리아의 10년차 세일즈 트레이닝 담당자다. 전국의 세일즈 접점에 있는 모든 직군에 대한 신차, 제품 교육 등 직무 교육을 담당한다. 흔히 알고 있는 한성자동차, 더클래스 효성, KCC오토 등 벤츠 자동차의 판매를 대행하고 있는 딜러사(社)의 임직원(딜러)들이 주요 대상이다.      


교육이 있는 날은 보통 중간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 교육을 진행한다. 교육 내용에 따라 이틀에서 일주일정도 교육을 진행하며, 신청인원 규모에 따라 차수를 나눠 몇 주씩 진행하기도 한다. 교육 현장에는 약 60명 정도가 자리를 메우고, 줌(zoom, 화상회의)으로 수백 명이 동시 접속해 현과 함께하기도 한다. 교육이 없는 날에는 교육자료를 제작하고, 신차 또는 업데이트 사항이 있는 경우 해외출장을 통해 직접 본사 교육을 받고 오기도 한다. 이 때 현은 단순 번역을 넘어 우리 나라 실정에 맞게 로컬화한다.      


“벤츠는 차 사양이 유럽과 미국이 다른 케이스들이 있는데, 한국은 미국 사양을 따라하거든요. 그런 걸 거르고 풀어서 교육 자료를 만들어요.”     


나아가 딜러로 일한 경험을 살려 교육생들의 입장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가공한다.      


“저희가 하는 일이 일방적인 딜리버리(전달)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소통)하는 일이에요. 그래서 우리 직업이 티처가 아니라 트레이너인 이유 중에 하나가 교육생의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


현의 한 친구는 현을 부러워하며 이같은 말을 했다.      

“일 하는 사람들을 3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

내가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너는 첫 번째이지 않냐.”     


현은 부정하지 않았다. 동의했다.      


“솔직히 직업에 대한 만족도는 굉장히 좋아요. 두 번째만 하더라도 굉장히 럭키한 케이스라고 하는데,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굉장히 베스트인 케이스라는 얘기를 좀 많이 들었어요.”      

대체 그 일이란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즐기는지 궁금해졌다.      


“(제가) 교육생들이 모르는 걸 알려줬을 때 막 눈이 휘둥그레지거든요. 신이 나고 열정이 생겨요. 우리 차도 완벽하지 않아요. 근데 부족한 부분을 영업 스킬로 승화할 수 있는 것들을 제가 말해주는 거예요. 여러분은 이 차가 독일에서 온 게 아니라 막말로 어딘지 모를 나라에서 온 차여도 팔 줄 아는 스킬을 갖고 있어야 된다 이렇게 얘기를 하거든요. 다행인 건 당신들은 세계 최고의 브랜드를 판매하고 있으니 얼마나 쉽냐고, 그 얘기를 해주는 거죠.”     


뜨거운 피드백은 다시 사람들 앞에 서게 하는 연료가 된다.      


“교육생들이 저한테 보내주는 응원의 메시지들, 팬심들이 있어요. 교육이 딱 끝나고 나면 박수 세례를 엄청 많이 받고요. 개인적으로 연락도 많이 받고요. 직업이 약간 배우 같아요. 배우들은 대학로에 있는 소극장에서 연극을 하잖아요. 저는 그걸 강의실에서 할 뿐이고요. 아니면 온라인으로 스튜디오에서 할 뿐이고요. … 사실 직업 만족도에 제일 큰 영향을 주는 건 우리 내부에 있는 직원들보다 제 교육생들이 주는 힘인 것 같아요”    



세일즈 교육을 하고 있는 트레이너 이현 (사진 본인 제공)


듣고 있자니 그는 영락없는 무대 체질이다. 무대에서 내려온 뒤에도 관객(교육생들)과의 교류는 끊이지 않는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달라는 현의 교육 맺음말은 인사치레가 아니다. 애프터서비스가 확실하다.


인터뷰하는 도중에도 현의 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지만, 교육생일 거라며 정중하게 받아드는 현이었다. 과연 현의 말이 맞았다. 현의 도움에 감사 인사를 전하는 전화였다.      


내부에서 “너무 딜러 프렌들리하다.”는 핀잔을 들은 적도 있지만, 어쩌겠는가. 상사의 칭찬보다 교육생들로부터 받는 피드백이 가장 큰 힘인 것을. 엄밀히 말해 같은 회사가 아님에도 딜러사 임직원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현의 애정과 동료의식이 진하게 느껴졌다.      


‘상생’이라느니 거대 아젠다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나와 연결된 이들과 단절되지 않고 서로 기꺼이 도움과 감사를 주고받는 사례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뜨끈해졌다.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기 위해

    

자신만의 전문분야가 있어도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끊이지 않는다. 내부 조직뿐 아니라 외부 시장 상황이나 기술 트렌드에도 눈을 뗄 수 없다.      


해외 출장에서 만난 유럽과 일본의 트레이너들은 50대 중후반이 대부분이다. 그에 비해 한국의 트레이너 연령대는 30대로 한참 낮은 편이다. 벤츠 코리아도 다른 글로벌 지사들과 마찬가지로 세일즈 트레이너가 롱런할 수도 있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기대수명 120세 시대에 롱런을 보장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AI(인공지능)트레이너가 등장해 일자리를 위협하기도 한다. 그럴싸한 이미지와 음성을 갖춘 AI 교육 영상은 실제 사람이 출연한 줄 착각할 정도로 정교하다.


“판매만 온라인 세일즈로 바뀌는게 아니라 (트레이너가 하는) 교육도 온라인으로 바뀌고 있어요. 교육할 때 (교육생들에게) '그럴수록 AI가 터치 못하는 걸 해줘야 된다. 차량에 대한 스펙이나 그런 것들이 아니라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의 감성같은 것들이 생존 전략'이라고 강조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AI는) 일방적 소통밖에 안 되니까 양방향 소통할 수 있는 인간의 경쟁력은 변함이 없어요.”      


급속한 기술의 발달로 자동차 시장도 급변하다 보니 신기술을 내세운 브랜드들도 유심히 지켜본다. 혁신적인 기술로 판을 흔드는 브랜드를 목도할 때면 업계 사람으로서 도전 의식이 생기기도 한다.      

어지럽게 돌아가는 세상이지만 과거에 그랬듯이 자신만의 답을 써나가기 위해 현은 부지런히 움직인다.




 둘이 넷이 되는 기적, 가족

   

아무리 적성에 맞는 일을 하더라도, 매사 당당하고 거침없는 현이라도, 일하는 것이 늘 신날 수만은 없다. 지치고 어려운 날을 버틸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가족인 것 같아요.”

그의 대답에 망설임이라곤 없다.      


현은 아내와 결혼해 2년 만에 첫 아이를 낳았다. 아내는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할 즈음 둘째를 임신해 퇴사를 결심했다. 아이가 둘이 되니 하나일 때와는 차원이 달라졌다. 모든 힘듦이 단순 합산이 아닌 제곱으로 늘어난다고 하지 않던가. 칠순이 가까운 부모님께 부담을 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아내가 주 양육자가 되기로 했다.


“솔직히 맞벌이가 (경제적으로) 조금 더 유리해지는 부분은 있겠지만 제가 돈을 더 많이 번다면 외벌이가 낫다고 생각해요. 아이를 케어하면서 와이프도 (심적으로) 좀 여유가 생기니까요. 와이프가 회사를 가면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있을 거라 둘 다 스트레스 레벨이 동일한 경우에는 마찰이 많이 생길 수 있어요. 육아 스트레스는 저보다 훨씬 높겠지만 대신 밖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훨씬 낮으니까 서로 보완이 되어서 집에서는 화합이 돼요.”     


아내가 일을 한다면 근무시간이 유연하고 업무 스트레스가 덜한 일을 하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육아만으로도 힘들테니 사회생활의 힘듦은 자신이 감당하겠다는 마음가짐이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현은 첫째가 ‘아빠 껌딱지’일 정도로 육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퇴근 후에는 집에 들어서는 순간 신발장 정리로 시작해 가사노동에도 단단히 한 몫한다. 아내의 친구들이 현의 육아와 살림 스킬에 엄지를 치켜세울 정도다.


덕분에 용기가 난걸까. 아내는 새로운 적성을 찾아 재취업 준비를 했다. 고되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에 진한 보람을 느껴 어린이집 교사가 되기로 한 것이다. 근무지가 집에서 가깝고 근무 시간이 비교적 유연해 아이들을 키우며 일하기에도 적합하다. 올 봄에 두 아이 모두 어린이집에 갈 수 있게 되자 다가오는 여름부터 정식 출근하기로 했다. 비록 ‘어린이 전시 기획’을 하던 경력은 단절되었지만, 미련은 없다. 부부는 결정적 시기마다 최선의 방안을 찾아내고 있다.



      





현은 쉬는 날이면 짐을 꾸려 캠핑을 가거나 여행을 떠난다. 현의 친구들, 아내의 친구들, 아이들의 친구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까지. 다양한 조합으로 동행한다. 워낙 야외활동을 즐기기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한다. 덕분에 네 가족은 다른 이들과 관계가 확장되고 깊어진다.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 거쳐온 회사의 선배들, 마주했던 교육생들과의 인연이 늘어나고 쫀쫀해진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먼 미래에 캠지기(캠핑장 주인)가 되면 좋겠다는 현의 소망을 듣고 있자니, 언젠가 그 꿈을 이룰 것만 같다. 그 캠핑장도 그의 삶처럼 사람들로 북적일테다. 뜨끈하게 그리고 시끌벅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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