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세 숲(구 아프리카TV) 광고사업본부 PM L (2024년 3월
아프리카TV가 29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사명을 '주식회사 숲(SOOP Co., Ltd.)'으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숲(SOOP)'은 다양한 구성요소를 아우르는 숲처럼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콘텐츠로 소통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의미한다. (출처 : 연합뉴스)
연재를 올리는 오늘, 공교롭게도 아프리카TV가 사명을 주식회사 숲으로 변경했다.
정찬용 대표는 “라이브 스트리밍이라는 플랫폼 서비스가 TV라는 인식 속에 갇혀 있지 않고, 더욱 펼쳐 나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브랜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라며, "이제는 주식회사 숲이라는 새로운 사명과 브랜드로 글로벌 확장에 더욱 박차를 가해 더 많은 유저와 스트리머를 연결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또, 기존에 BJ로 불리던 개인방송 진행자들을 ‘스트리머(streamer)’라고 지칭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하는 기대가 읽혔다.
L은 주식회사 숲의 광고사업본부에서 광고주의 브랜디드 콘텐츠와 e스포츠 운영 등 게임과 관련된 업무를 맡고 있다. 신규 광고 제안부터 기존 광고주에게 캠페인 제안하고 확정된 캠페인을 방송 콘텐츠 제작을 포함해 다양한 팀들과 협업해 운영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제작된 방송은 유튜브에 라이브로 중계되거나 업로드되고, 때에 따라 당사 채널에 추가적으로 방송되기도 한다. 이를 프로젝트 단위로 매니징한다 하여 직책이 PM(Project Manager)이며, 이번달에는 2개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다.
L의 일은 흔히 알려진 BJ 개인 방송과는 관련이 없다. 이용자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프리카TV는 광고사업본부를 통해 광고대행 사업을 하고 있다. 광고주인 기업의 브랜드 마케팅을 위해 모든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하면 보다 이해하기 쉽다. 실제 프로젝트 현장에서 L을 PM이 아닌 PD로 오인하여 부르는 경우가 왕왕있다고 하는 걸 보면 이 사업과 L의 직무가 관계자들 안에서도 낯선 듯하다.
어느덧 8년차 과장이 된 L이지만 그간의 경력에 따르면 그에게도 일이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광고대행사와 인하우스(자사브랜드) 마케팅, 콘텐츠 제작 대행사를 거쳐 현재 직장에 도달하기까지 그간 퍼포먼스 마케팅이나 프로모션 마케팅처럼 데이터 분석 업무 중심의 일을 해왔기 때문이다. 현 직장으로 옮기면서 브랜드 마케팅으로 직무 전환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업무가 데이터 마케팅 중심이 되면서 숫자를 보고 의사결정해야 하는 정적인 업무이다 보니 좀 더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고 싶더라고요.”
데이터 마케팅에 작정하고 덤벼보기도 했다.
“전에 다닌 회사 실장님이 진짜 수학적인 요구를 많이 하셨어요. SQL을 해야 된다고 하셔서 제가 SQL을 하니, 그것만 하는 게 아니라 SQL은 기본적으로 로데이터(Raw data)를 뽑아내는 거고 이 로데이터를 가지고 인사이트를 보려면 통계를 할 줄 알아야 된다 하시고. 그 다음 단계는 R과 파이썬을 다뤄야 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해봤어요. SQL도 배우고 R도 배워봤거든요. 그런데 쉽지 않더라고요. 사실 너무 스트레스 받았어요.”
듣고 있자니 프로그래밍 기술이며 트렌드며 익혀야 할 것이 끝이 없어보였다. 일을 시작한 초기만 해도 내부 개발 부서에 데이터를 추출 요청하거나 회사와 계약되어 있는 솔루션을 통해 얻은 데이터로 인사이트를 도출했었다. 요즘은 마케터가 손수 데이터를 추출하고 가공해서 인사이트를 구하는 추세다. 마케터 구직 공고를 보면 SQL 자격증이나 사용 능력을 지원자격으로 내세우거나 파이썬과 R같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다룰 줄 알면 우대해준다는 내용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L은 데이터를 다루는 일에 개인적인 어려움을 토로하며 끝내 고백했다.
“제 수능 수리 점수가 진짜 낮았어요.(웃음)”
대리 연차였던 L은 시대의 변화를 현장에서 체감하며 적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과장 연차가 되면 커리어를 변경하기가 더 어려워질 거라 생각하니 더욱 간절해졌다. 콘텐츠제작 대행사에서 콘텐츠기획 업무를 접하면서, 마케팅 성격보다는 영업적 성격이 더 강한 업무를 앞으로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먼저 미디어사와 랩사(미디어사의 광고를 위탁하여 대행사에 판매)의 영업부서로 문을 두드려봤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다 콘텐츠로 영업하는 회사로 확장해 찾던 중 현 직장에 연이 닿게 되었다. 인하우스보다는 대행사에서 일하는 것이 본인 성향에 더 맞는다고 느끼기도 했다. 적을 옮긴 지는 어느덧 1년 4개월차가 되었고, 올해 과장을 달았다. 아프리카TV 시절 주요 콘텐츠가 ‘게임’이다 보니, 새로운 고객사를 찾아 영업을 하기보다는 기존 고객사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업무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언제든지 새로운 광고주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며 연신 강조했다. 주변에 기업 광고 관련 담당자 있으면 소개 좀 시켜달라며 넉살을 피웠다.
몸담고 있던 회사와 직무가 바뀐 지금, 만족도는 어떨까.
“지금 만족스럽고 좋아요. 일단 저도 몰랐는데 제가 되게 아이디어를 내고 뭔가 (새로운 것을) 하는 게 재밌더라고요. 예전 직장에서는 너무 포맷대로 하는 경향이 강하고, 아이디어보다는 시즌성에 맞는 것들 위주로 했어요. 지금은 훨씬 아이디어를 많이 반영할 수 있고요. 유저들이 (콘텐츠를) 보고 피드백을 바로바로 보내니까 동향이 보이잖아요. 커뮤니티에 올라갈 수도 있고, 조회수라든지 이런 걸 볼 수 있으니까 훨씬 재밌는 것 같아요.”
캠페인 결과물을 접한 유저들은 콘텐츠에 댓글을 달거나 커뮤니티에서 이를 공유하며 “00(광고주) 회사가 이런 캠페인을 해서 너무 좋다, 역시 신경 많이 쓰는구나” 라는 등 긍정적인 피드백을 직접 확인할 때면 일에 대한 보람을 피부로 느낀다.
이런 보람들 덕분에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고 했다. 파트장을 비롯한 팀원들이 워낙 실무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덕분에 자리잡을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럼 이제 일이 좀 편해졌느냐 묻자 단호하게 답했다.
“전혀 편하지 않아요. 왜냐면 저는 어쨌든 경력직으로 입사했으니 내부적으로 기대가 있잖아요. 팀장님이 믿고 맡겨주시니 그에 대해 계속 (퍼포먼스를) 보여드리고자 하는 것도 있죠. 지금 저는 더 이상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을 때가 아니라 직급이 있으니까요.”
일하면서 너무 힘들다고 느낀 적은 없냐고 묻자 사회초년생 시절을 떠올렸다.
“예전에 상사가 저를 심적으로 너무 힘들게 한 적이 있었어요. 대표이사도 그러셨고. 그때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눈에 핏줄이 터지고 그랬는데, 그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이제 연차가 쌓이니까 그래도 (일에 대해) 포장하는 법을 알잖아요. 이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잘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손에 쥔 게 ‘퇴사’라는 카드밖에 없는 막내가 연차와 경력이 늘면서 대처 능력도 함께 늘어났다. 물론 2019년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되며 세상도 바뀌었다.
인터뷰 도중 과거 괴로운 기억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묘사하며 얼굴 위로 진저리치는 표정이 스쳐갔다. 그래도 이제는 과거 기억이 미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건강하고 단단해진 그의 모습을 보니, 어쩌면 퇴사 후의 좋은 기억들이 힘을 길러 안 좋은 기억들을 밀어낸 것이 아닐까 하고 멋대로 추측해보았다.
L은 사람 “살기 바빠서”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덜해졌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사람을 좋아하는 성정에는 변함없어 보였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팀원들이랑 저녁 먹고, 집에 가서 와이프랑 떠들어요.”라거나, 딱히 취미가 없다면서도 “저는 혼자 있으면 엄청 심심해하거든요.”라며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즐기고, “업무할 때 좌우명이 항상 ‘혼자보다 둘이 낫다. 둘보다 셋이 낫다.’예요. 그래서 가족도 둘보다는 셋이 낫다는 생각에 아이 하나 있으면 좋겠고요.”라는 L. 인생을 사람으로 채우는 그는 영락없는 ‘people person(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사람, 사교적인 사람)’이다.
지금은 회사에서 인정받고 구성원으로서 제 몫을 해내는 것이 목표다.
“지금 꿈은 내 집 마련이죠. 아이도 한 명 있고요. 너무 늦지 않은 나이에 장사도 해보고 싶어요.”라며 은퇴 후의 계획도 꺼내보였다.
미래의 아이와 손잡고 사회에서 만난 선배들에게 세배하러 다니겠다는 그의 말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귓전을 울렸다. 평범하게 살기 어려운 시대에, 착실하게 평범한 삶을 꾸려갈 L의 미래가 나도 모르게 기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