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세 우아한형제들 커머스사업부 사업PM 백승영 (2024년 2월)
9년 전, 미국 어학연수 도중 구글 본사에 방문한 적이 있다. 회사에 가까워지자 신호등에 매달린 도로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Google’
도로명이 ‘구글’이라니. 다른 지명이나 안내문구와 뒤섞임도 없이 오롯이 홀로 적혀있었다. 내 회사도 아니건만 가슴이 웅장해지는 희한한 경험을 한 기억이 난다. 입구에 들어서면 노란색 본체에 초록색 앞바퀴와 파란색 뒷바퀴, 그리고 빨간색 바구니를 달고 있는 알록달록한 자전거들이 곳곳에 놓여있었는데, 회사 부지가 워낙 넓은 탓에 건물 간 이동 시에 직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배치해 둔 것이었다. 잠금장치같은 것도 없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덕분에 자전거에 올라타 인증샷도 남길 수 있었다.
구글의 자유로운 조직 문화, 사내의 다양한 휴게 공간과 시설, 회사 밖에 있는 직원의 가족들까지 적용되는 돌봄서비스 등은 내로라하는 국내 기업에도 널리 수입되어 왔다. 구글은 (고용 불안 등 이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IT업계 종사자들 사이에 ‘꿈의 직장’이라 불린다.
이렇게 직원들에게 자유롭고 편안한 근무환경과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이유는 하나다.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배달의 민족’으로 유명한 기업 우아한형제들은 ‘일 하기 좋은 회사’이길 자처한다. 특유의 개성적이고 자유로운 조직문화를 구축하면서도 개인의 성장에 필요한 지원은 물론이고 일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회사 안팎으로 다양한 복지혜택을 파격적으로 제공한다. 무엇보다 주 32시간 근무제에 소정근로시간 초과 시 분 단위로 산정되어 지급되는 수당은, 이보다 더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이런 매력적인 기업에서 사업 PM으로 일하고 있는 12년차 직장인 승영을 만났다.
우아한형제들은 IT기업답게 서비스 관련 직무가 세분화되어 있는 편이다. 그 중에서 사업 PM(project manager)의 일은 신규 서비스를 위한 비즈니스 모델을 기획하고 그에 따른 기능과 필요한 정책들을 검토하고 기획한다. 이 과정에서 유저가 보다 잘 사용할 수 있게끔 프로덕트(서비스) 유관 부서들과 여러 운영팀의 요구사항을 취합하고 소통하며 의도한 방향대로 오픈할 수 있도록 관리한다.
승영이 처음부터 PM업무를 한 건 아니었다. 온‧오프라인 유통회사에서는 마케팅팀과 신규사업팀을 거쳤고 교육 스타트업 회사에서 전략기획과 서비스기획을 담당했다. 우아한 형제에 합류해서는 사업개발 Business developement 업무를 맡았었다. 작년부터 부서를 옮겨 사업 PM이 되었는데, 지금까지 해온 일들과 교집합이 있지만 새롭게 알아가거나 도전해야 하는 업무들이 장맛비처럼 쏟아진다.
승영은 어느 조직에서든지 제 기능을 하고자 했다.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일했고, 그 결과 인정받으며 일해왔다. 그런데 10년이 넘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부서 이동으로 업무 전환이 일어나면서 업무 자체에 대한 스터디와 적응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업무 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협력사와 소통하거나 현장에서 진행하는 업무보다는 회의와 문서 작업이 주를 이뤘다.
사내에서는 “회의 준비를 안 하면 새로운 회의가 생긴다.”라는 캠페인이 곳곳에 전시되어 있고, ‘회의 잘하는 사람’이 인정받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PM으로서 매 회의를 주관해야 하는 승영은 하루에 적게는 2~3개, 많게는 6개의 미팅을 연다.
“미팅을 이끌어야 할 일이 많은데 이런 경험이 아주 많지는 않다 보니까 설명하는 것도 처음에는 자신이 없더라고요. 말도, 설명도 잘 못하겠고. 실무진끼리 할 땐 그래도 괜찮은데 임원분이 들어와서 보고를 해야 할 때면 어렵더라고요. 모든 게 단단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잡힌 미팅이면, 스스로 자신감이 없어지고 미팅 끝나면 혼자 자괴감이 들어요. 그런 감정이 솔직히 많이 있었어요.”
전사적으로 ‘회의의 완성은 회의록 공유’라고 강조되다 보니 회의가 끝나도 긴장은 이어진다. 이력이 나도록 회의록과 보고서를 써본 승영도 회의록을 작성하고 공유할 때면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회의록에 대한 기대 수준과 목표도 높아졌다.
“누가 보더라도 간명해서 이해하기 쉬워야 하고, 이미 논의된 내용을 다음 회의에서 다루지 않도록 잘 정리해야 해요.”
잘 쓴 회의록은 참석자들이 다음 회의에서 비슷한 내용을 반복하거나 헤매게 두지 않는다. 읽는 사람의 시간을 아낄 수 있도록 한 페이지 안에 정리되면 베스트. 그러나 회의 중에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들이 오가다 보면, 목표한 대로 정리하기가 말처럼 쉽지가 않다.
내부에서는 이런 문서 작업을 더 잘하고 싶은 니즈가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스터디를 할 정도란다. 물론 승영도 매번 많은 고민과 시간을 들여 작성해왔고, 최근에는 작업 속도와 퀄리티가 나아졌다고 자신할 수 있게 됐다.
승영은 임원에게 보고해야 하는 상황을 설명하며 “임원분들이 되게 똑똑하고 무섭거든요.”라고 언급했다. 부하직원에게 화를 내거나 다그치지 않는데 똑똑해서 무섭다니, 의아했다.
“모든 의사결정은 근거가 촘촘하게 있어야 하고, 임원들은 그걸 다 파악하고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하세요. 정말 핵심만 짚고 명료하게 딱 끊으시고. 결정도 합리적으로 하고요.”
그뿐이랴. 실력 좋은 주니어들과의 함께 일하다 보면 이따금씩 긴장하게 된다. 상사들에 대해 거침없이 평가하는 팀원들이 종종 있기에, 혹시 자신이 부족해 보이진 않을까 걱정이 앞서 “머릿속이 깜깜”해진 적도 있단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 수준이 사실 되게 높아요. 임원분이 컨설턴트 출신이고, 리더급에 해외대 출신이 많아요. 주니어 친구들도 실력이 좋은 친구들이 많다 보니. 제가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들기도 하고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하고 싶어요. 자극이 돼요. 내 동료가 이런 수준이고, 내가 그만큼 좋은 인재풀에 있으니 나도, 내게도 좋다.”
직장생활 10년이 넘으면 아무래도 업무 관련 지식이나 숙련도에 대한 기대가 있게 마련이다. 승영이 사업PM으로서 일하게 된 지는 1년이 채 되지 않는지라, 위아래로 능력자들에 치인다. 더욱이 기술적 전문성이나 경력이 요구되는 IT회사에서 테크 부서와 맞붙어 일하려니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이전 회사에서는 내가 우수 인재였는데 여기서는 진짜 ‘용의 꼬리’구나 이런 생각도 들었죠. 그래도 객관적으로 저를 봤을 때 성장한 건 맞는 것 같아요. 이제 이 무리 안에서 나도 뭔가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하고, 잘 하고 싶어서 노력하는 중이기도 하고요.”
승영은 SQL과 기획서 작성법, 커뮤니케이션 스킬 관련해 틈틈이 스터디하고 있다. 현재 직무에서는 숫자를 다루지는 않지만, 언젠가 주어질 기회에 대비해 데이터 인사이트를 발굴하는 능력도 키울 작정이다.
“그냥 저는 어렸을 때부터 좀 모범생 스타일로 계속 살았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도 반장을 계속했고 중‧고등학교 때도 거의 뭐 한 번 빼고 반장 이런 걸 했고요. 고등학교 때도 동아리 회장, 대학교 때 또 미술 동아리 회장하고요. 약간 그런 욕심도 많고 명예욕도 많고 책임감이나 내가 뭔가 더 잘하고 돋보이고 싶은 그런 욕심이 어렸을 때부터 좀 있었나 봐요. 그래서 좀 남들한테 더 인정받고 싶고. 그러려면 내가 더 잘해야 되잖아요. 저는 그런 게 그냥 제 기본 마인드예요.”
승영은 어느 무리에서든 앞에 서는 일이 익숙했고, 남보다 뛰어나기 위해 애썼다. 오래전부터 그래왔기에 오늘도, 내일도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내 모습이 맘에 들기도 했다. 선생님이, 상사가, 특히 부모님이 좋아하셨다.
병환으로 돌아가신 그의 아버지는 생전에 남매에게 꿈을 크게 가지라며 성공에 대한 가치를 가르치셨다. 열심히 공부해라, 치열하게 일해라. 어디서든 리더, 최고의 자리에 가야 한다는 열망은 일찌감치 남매에게 스며들었다. 게임회사에 근무하는 동생은 자신의 분야에서 탑(top)을 찍겠다는 마음으로 빡세게 산다며 승영조차 혀를 내둘렀다. 동생은 승영과 마찬가지로 출근하면 정시에 퇴근할 줄을 모른다.
지금껏 열심히 일하는 승영을 보며 동료들의 반응이 엇갈리기도 했다.
“승영이는 진짜 자기 개발 의지가 대단하다. 왜 그렇게 하려고 해?”라고 신기해하거나
“승영은 나의 귀인이야. 네 덕분에 많이 배운다.”라고 칭찬한다.
승영은 후자의 사람들과 더 가깝게 느낀다고 고백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꽉꽉 채워 사는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던 그에게도 최근들어 가치관의 변화가 생겼다.
“사실 ‘나는 커리어 우먼이야, 나는 일로서 내 업적을 어떻게 이룰거야’ 이런 건 없어요. 처음엔 빈 종이였는데 내가 꾸역꾸역 잘 채워 넣어서 완성되듯이 내가 주체가 돼서 사람들이 소통하고 일이 마무리되면, 그러면 내가 잘하고 있구나 하면서 그 자체로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아요.”
일적으로 최고가 되지 않더라도 제 역할을 능히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단다. 가까운 미래에 마음 잘 맞는 반려자와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오랜 바람이기도 하다.
미국의 세계적인 피아노 경연대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임윤찬이 우승하자 승영은 환호했다. 그에겐 한국이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과 다름없었다. 조성진, 손열음, 선우예권에 이은 그의 등장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승영은 어릴 적 피아니스트를 꿈꿨을 정도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한다. 휴일이면 좋아하는 음악이나 연주자의 공연을 찾아다닌다. 그림을 직접 그리기도 한다. 일러스트를 주로 그리고 동화 작업이나, 아트 페어에 참여하기도 했다. PM을 맡은 이후로는 일에 몰두하느라 취미와는 잠시 멀어졌다.
인터뷰 이후 시간이 흘러 승영이 파트장을 맡게 되었고 업무 적응도 끝난 것 같다며 소식을 전했다. 팀원들을 관리하면서 회사에서도 인정받고 있어 여러모로 자신만만한 모습이다. 내가 원래 알고 있던 승영의 본캐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불금인 어제도 밤 열 두시를 훌쩍 넘겨 업무를 마치고는 “매일 이렇게 일해서 자동으로 스킬이 늘었나” 라고 너스레를 떤다. 여전히 고군분투 중인듯 하지만, 고민과 초조함보다는 성장에 대한 기대와 보람이 느껴진다. 조만간 승영이 주말에는 취미를 누리는 여유까지 전해주길 바라본다.
#상단 사진은 인터뷰를 진행했던 감성가득 LP카페&바 ‘실낙원’ 의 한 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