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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본 Feb 27. 2021

고흐 <해바라기>

with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 김준엽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며 살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었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기쁘게 대답할 수 있도록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꾸어 가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 김준엽 -




나는 항상 말하곤 한다. 나의 묘비명에는 "하고싶은 거 다 하고 갑니다"라고 적혀있으면 좋겠다고. 그러나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며 살기에 세상은 참, 각박하다. 당장 살아야하기에 해야만 하는 일들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그 틈새 가운데 하고 싶은 것을 하겠노라 발버둥치며 살고 있다. 그 미비한 나의 선택이 오늘을 살게하고, 삶의 동력이 되고, 나의 행복이 된다. 선택해야만 하는 것들에서 벗어나 선택하고싶은 것을 선택한 나의 결정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가끔 회의감에 빠져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고흐도 그랬을까. 본래 목표로 했던 신학자의 길을 버리고, 동생 테오의 조언과 도움으로 미술가의 길을 걷게 되었을 때, 그 안에서 행복을 느꼈을까? 비록 살아 생전 풍족한 생활도 누리지 못했고, 제대로 된 평가도 받지 못했지만, 미술가의 길을 선택한 것이 그에게는 행복이었을까? 심지어 정신장애로 거의 반평생을 고통 속에 살았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그림을 그리며 행복을 느꼈을까? 아마 그렇겠지. 아마 그랬을 것이다. 어쩌면 그림만이 그의 안식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빈센트 반 고흐, 해바라기 (1888), 뮌헨노이에피나코텍


고흐의 수많은 작품 중 『신발 한 켤레』 다음으로 좋아하는 작품이 『해바라기』다. 그것은 색체나 구도 등의 수준 높은 미술적 기법 때문만이 아니다. 해만 바라보는 일편단심 ‘해바라기’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미술에만 집중한 - 어쩌면 집중을 넘어 집착을 한 - 고흐의 삶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고갱과 함께 작품을 활동을 하고 싶어서 5개월 간 그에게 편지를 써 호소를 하고, 고갱과 함께 지낼 아를의 ‘노란 집’을 꾸미기 위해 『해바라기』를 그린 고흐를 생각해보자.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는 고갱과 작품 활동을 하게 된 기쁨에 그를 기다리며 그의 방을 장식할 『해바라기』를 그렸을 고흐를 생각하니, 아이처럼 순수한 그의 마음이 갸륵할 지경이다.


그러나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순수한 마음에서 제작한 것임에도 철저히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 속 꽃들이 제 각기 다른 모양과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해바라기는 빨리 시들어버리기 때문에 나는 매일 아침 일찍부터 황혼이 올 무렵까지 해바라기를 그린다.” 따라서 고흐의 해바라기들은 모두 같은 모양이 아니다. 어떤 꽃은 만개해 있지만, 또 어떤 꽃은 이미 시들어있다. 순수한 마음을 담아 그린 해바라기 속에서도 어쩔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놓치지 않은 고흐를 발견할 수 있다. 모든 꽃을 활짝핀 아름다운 꽃으로 그릴 수 있었음에도, 고흐는 현실적인 꽃의 모습을 그리기로 선택한 것이다. 




해바라기에 담긴 고흐의 순수한 마음, 현실적인 꽃의 모습은 이상과 현실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는 우리의 삶과도 닮았다. 순수한 열정이 발현될 현실은 때론 시든 꽃잎처럼 가혹하다. 그럼에도 하고싶은 것이냐? 해야만 하는 것이냐? 순수함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 사이에서 최선을 다해 선택을 하며 살고 있다. 그렇게 무수한 선택의 과정을 겪으며 살다보면, 어느날 황혼 무렵의 나에게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김준엽 시인처럼 묻게 되겠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느냐? 아름다운 삶을 살아왔느냐?" 그 물음에 나는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 아름다운 삶을 살아왔다." 대답하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해 선택을 하고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 김준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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