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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본 Oct 23. 2021

르네 마그리트 <연인 II>

with 어떻게 생각해 / 넬(Nell)

당신의 입술에 나의 입술 맞대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인 것 처럼

당신의 손길에 내 몸을 맡기고

믿음으로 무장한 관계인 것처럼 하지만


평행 그저 바라볼 뿐, 끝내 서로 닿지는 않을 우리의 마음

평행 그저 바라볼 뿐, 끝내 서로 닿을 순 없는 우리의 마음


참 이상한 이상한 일이죠

늘 사랑을 속삭이면서도 다시 돌아갈 곳을 생각하고 있고,

어쩜 서로에 대해서 알고 있는건 이름 뿐 일지도 모른다는 것

어떻게 생각해


- 어떻게 생각해 中 / 넬  -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온전히 동일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것은 연인의 관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사춘기 아이와 부모님, 우정이라는 이름의 친구 사이, 또 때로는 익숙함 때문에 예의를 져버린 가족안에서도 '이해의 부재'는 발생할 수 있다. 각자가 각자의 생각과 논리, 감정을 앞세우면 서로 마주보고 있음에도 서로를 이해할 수가 없게 되고, 결국 넬의 <어떻게 생각해> 가사에서 나온 것 처럼 어쩌면 서로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이름' 뿐 일지도 모르게 되고 말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 <연인II> (1928) 캔버스에 유화, 뉴욕 현대 미술관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는 데페이즈망 기법을 사용해 기이하고 신비로운 작품을 남긴 화가로 유명하다. 데페이즈망은 서로 상관없는 물체를 같은 공간에 두거나, 어떤 물체를 원래 있어야 할 곳이 아닌 다른 곳에 두어 심리적 충격을 불러일으키는 기법으로, 이렇게 익숙하지만 낯선 그림을 본 독자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충격을 받게된다. 작품 제목과 표현이 완전히 상충된 <연인 II> 그림에서 처럼 말이다.    


<연인 II>이라는 작품의 제목에서처럼 사랑하는 두 연인이 말끔하게 차려입은 채 달콤한 입맞춤을 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입맞춤을 하고 있는 그림이 뭐가 특별할까 라고 할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두 연인은 얼굴을 포함해 머리 전체, 목덜미까지 천으로 꽁꽁 싸맨채 입맞춤을 하고 있다. 천 하나가 두 사람을 덮어 그 천 안에서 입맞추고 있는 것도 아니고, 서로 각각 다른 천을 두른 채 입맞춤을 하고 있다. 어둠속에서 서로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혹 얼굴도 모른채 입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천을 맞추고 있다. 게다가 <연인>이라는 제목과 달리 천을 뒤집어 쓴 이들의 입맞춤은 사랑의 설렘이나 달콤한 입맞춤의 떨림은 느껴지지 않는다.  


천으로 뒤 덮인 얼굴 안에는 서로를 사랑하는 연인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천이 그들의 사이를 막고있다. 마치, 연인이 서로를 이해하려 하기 보다 각자의 감정만을 밀어붙이는 것 처럼 말이다. 서로를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보려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포장된 허황된 '욕심'이 될 것이다. 욕심으로 가득찬 허세뿐인 사랑은 작품에서처럼 달콤하고 짜릿한 입맞춤마저도 차가운 공기처럼 싸늘게 식어버린 어색하고 불안한 관계만을 지속시킬 것이다. 이들의 얼굴을 꽁꽁 싸맨 천과 같은 이기적인 마음을 거둬내야 비로소 진정한 사랑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천으로 가린 연인의 입맞춤이 차갑고 불안하게 표현된데에는 마그리트 본인이 경험한 충격이 그림속에 담겨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어릴 적 엄마가 강가에서 익사한 채 발견되었는데, 그때 엄마의 얼굴이 천으로 가리워져있었다. 천을 거둬 얼굴을 보고 싶음에도 보고 싶지 않은 아이러니함, 차갑게 식은 엄마와 두렵고 무서운 감정이 아마 마그리트를 뒤덮었을 것이다. 때문에 죽음처럼 차갑고 단절된 감정이 작품에서도 느껴진다.     



서로가 같은 곳에 있지만 바라보는 것이 다르다면 그 관계만큼 냉정하고 가슴 아플 수 없다. 끝내 닿을 수 없는 마음이라면 서로가 서로에게 고통만 줄 뿐이다. 서로의 얼굴을 가린 천을 거둬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소통'해야 한다. 그런데 사실 말이 쉽지. 이기적이고 나약한 인간인지라 후회하고 자책하면서도 매번 내 감정, 내 상황이 먼저다. 이해하고, 소통하고, 타인의 감정에 경청해야지 다짐하면서도 말을 섞다보면 어느새 내 이야기, 내 감정만 털어내기 바쁘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해야 한다. 노력없이는 사랑도 없으니까.



사랑은 자신 이외에 다른 것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렵사리 깨닫는 것이다.
- 아이리스 머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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