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본 Feb 12. 2021

마르크 샤칼 <나와 마을>

with 고향의 봄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 고향의 봄 / 이원주 작사 -




'고향'은 사전적으로 '태어나고 자란 곳' 또는 '조상대대로 살아온 곳'이라는 공간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한 편으로는 '마음 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태어나고 오래 자란 곳이 그립고 정든 곳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 아주 잠깐 머룰렀다 지나온 곳이 고향이 될 수도 있고, 지금 살고 있는 이 곳이 진짜 고향처럼 느끼질 수도 있다. 특히 이동이 잦은 현대인에게 고향은 더욱 그렇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 기억나지 않을 수도 있고, 정 붙일 곳이 마땅치 않아 고향에 대한 의미 또한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물론 삶에 지친 현대인이라고 고향을 만들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다. 바쁘고 피곤한 와 중에 옛 친구들과의 행복했던 그 시간들을 떠올리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다. 그저 떠올려봤자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기에, 만들어봤자 고향에 대한 마음을 오래 간직할 수 없기에 미리 차단해 버린 것 일수도 있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의 압박과 감당해야 할 무거운 짐들에 짓눌려 벅찬 현실을 살고 있기 때문에, 추억할 옛 일을 잊고 그리워 할 고향을 지웠을 수도 있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아있을 때 아름다운 것이라는 그 말을 따라 고향에 대한 그리운 추억을 덮고 충실하게 현실을 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고향'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평소 고향의 'ㄱ'도 생각못하지만, 이따금씩 때가 되면 고향을 찾는다. 고향이라 부를 수 없는 장소가 없다면, 가장 그리운 시간이나 사람을 떠올리며 고향의 그리움을 느끼기도 한다. 결코 도려내고 싶어도 도려내지지 않고, 지워버리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는 강렬한 잔상이 마음을 데운다. 피식하고 웃음이 나는 아주 짧은 떠올림 한번이면,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과 그 공간에 대한 그리움이 터져나온다. 그래서 고향은 여전히 지금도 따뜻한 말이다.


마르크 샤갈 <나와 마을> (1911) 캔버스에 유채, 뉴욕현대미술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듬뿍 담아 환상의 세계를 그려낸 마르크 샤갈의 <나와 마을>이다. 색체의 마술사라 불릴 만큼 말도 안되는 색들을 조화롭게 배치시킨 것, 원과 삼각형, 사각형 등 기하학적 도형과 구상화를 절묘하게 배치시킨 것, 대각선의 큰 구도 가운데 오밀조밀하게 묘사한 다양한 군상들의 재밌는 이야기들까지, <나와 마을>에서는 독창적인 기법을 활용한 샤갈의 놀라운 미술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작품이 흥미롭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유는 특별한 어떤 미술기법이나 독창성 때문만이 아니다. 지역과 시대, 인종과 문화를 초월해 보편적 인류가 느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감성, 바로 '향수'를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서부 유대인 거주지역인 비스테스크에서 태어나고 자란 마르크 샤갈은 1910년 파리 이주 후, 독창적인 미술세계관을 구축하면서도, 그는 고향 비스테스크에 대한 추억과 본국 러시아의 민속적 주제, 유대인으로써의 성서적 영감까지 샤갈 자신의 본연의 주제들을 잊지 않았다. 고향을 떠나온 이방인 미술가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 과거에 대한 동경과 낭만,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하며 느낀 기쁨과 환희, 슬픔과 안타까움까지, 샤갈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고, 그것을 진솔하게 화폭에 담아냈다.

<나와 마을>은 더욱 그렇다. 미소를 띄고 염소를 바라보고 있는 청록색 얼굴의 '나'와 영롱한 눈동자의 '염소'가 서로를 응시하는 모습 그 자체만으로 샤갈이 얼마나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보이는 그 대로 녹색의 '나'는 샤갈이고, 염소는 샤갈의 고향 비스테스크를 의미한다. 둘은 서로 다른 색체로 분리되어 있는 듯 하지만, 같은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있으며, 두 얼굴을 엮고있는 '원모양의 선'을 통해 사실은 이어져있다. 맑고 티없는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고향을 상징하듯 염소는 커다닿고 맑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내가 항상 여기서 널 기다리고 있어.'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나와 마을> 상단부 상세


염소와 '나'를 중심으로 샤갈이 그리워하는 고향 풍경이 그려져있다. 젖을 짜는 여인의 일상과 고향 마을의 교회와 집들, 일을 마치고 돌아온 농부와 그를 맞이하는 여인(혹은 풍요를 사징하는 여인이 낫을 든 농부에게서 도망치는 것이라고도 한다), 그림 아래쪽의 생명의 나무와 달, 그것을 가리고 있는 태양의 모습 등 다양한 초자연적인 요소와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 가득하다. 다만, 이 모습들은 하나의 완전체가 아니라 조각난 파편처럼 흩어져있는데, 이는 실제 과거를 조각 조각으로 회상하는 것처럼 옛 기억에 대한 아련하고 그리움 마음을 증폭시킨다. 심지어 거꾸로 세워져있는 집들의 모습에서는 돌아 갈 수 없는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 마치 상상이 현실이 된 것만 같다.



<나와 마을>은 분명 샤갈 개인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리운 고향, 아련한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바쁘고 지치다는 핑계 또는 현재의 쾌락에 빠져 본연의 모습을 잃고 있는건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그리워함으로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그리워함으로 잊었던 추억과 행복한 기억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또 다른 도약의 기회도 그려본다. 샤갈이 그러했듯 '그리움'은 발전하고 성장하는 영감의 초석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가끔은 그리운 고향, 그 시절, 그 장소를 떠올려보는 것이 어떨까?  만약 떠올릴 고향이 없다면, 지금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곳을 고향으로 만들어보자. 이제 '고향'은 만들기 나름이다. 만약 그리워 할 시간과 대상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면 천천히 삶을 되돌아보자. 차곡차곡 쌓아온 옛 기억들이 현재를 만들었다. 지금 현재는 그리움으로 가득한 옛 기억들을 발판삼아 걸어 온 것이니,  마음껏 그리워하자!


옛날이 지금보다 나은 이유는 뭔가가 하나 더 있기 때문이다.
바로 '추억'이라는 것.
- 패터 빅셀 -





이전 03화 제임스 휘슬러 <베니스 운하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