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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아 Sep 08. 2024

남들처럼 평범하게

02 효원과 혜미


 현관에서부터 진하게 올라오는 된장찌개 냄새가 효원의 코를 찔렀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주방에서 혜미가 앞치마에 물기를 닦으며 나왔다. 그 순간, 욱- 하는 소리와 함께 황급히 입을 틀어막는 효원이었다. 놀란 혜미가 가까이 다가가자 참을 수 없는 구역질이 나는 듯 효원은 신발도 벗지 않은 채 화장실로 달려갔다.

 변기에 얼굴을 파묻은 효원이 등을 두드려주겠다는 혜미를 향해 괜찮다고 말했다. 엄마의 된장찌개라면 삼시 세 끼도 먹던 내가, 냄새에 이렇게 반응할 줄이야. 아마도 입덧이 시작된 듯했다.

 “뭐 잘못 먹었나, 체한 거 아니니? 언제부터 그랬어?”

 걱정하는 혜미를 뒤로한 채, 일단은 냄새를 피해 방으로 들어가야 했다. 효원이 조금만 쉬겠다며 방문을 걸어 잠갔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헛구역질이 나올지 모를 일이었다. 앞으로 해나가야 할 수험생활이 걱정됐다. 학교는 어떻게 가지? 수능은 어떡하고?

 효원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병원에서 챙겨준 초음파 사진을 꺼냈다. 차분히 계획을 세워야 했다.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들엔 뭐가 있을까. 가장 먼저 내일 등교하자마자 동하부터 만나야 했다. 임신 사실을 털어놓고, 서로가 같은 마음이라면 일단은 혜미를 설득하는 일이 가장 큰 난관일 터였다. 그렇지 않을 경우는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효원이 초음파 사진과 함께 임테기를 서랍 구석에 깊숙이 숨겨두었다. 혜미가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비밀이었다. 나중에 다시 꺼낼 일이 생긴다면, 그땐 꼭 웃으며 보리라 효원이 다짐했다.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진정된 듯한 효원이었다. 방문을 열고 나가자, 혼자 TV를 보며 식사를 마친 혜미가 그릇을 정리하고 있었다.

 “딸, 괜찮어? 약부터 먹자.”

 “아까 먹었어.”

 혜미가 미리 약통에서 찾아둔 소화제를 건넸지만, 효원은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임신한 상태에서는 감기약도 조심해야 한다고 가정 수업시간에 배운 적이 있었다. 낮에 눈을 맞아서인지 어쩐지 몸도 으슬으슬한 것 같았다.

 “매실차 있어?”

 감기약 대신 따뜻한 매실차로 몸을 달래야 했다.     


*     


 “쟤 부모는 가슴 찢어지겠다, 어쩜 좋니.”

 혜미가 소파에 앉아있는 효원에게 매실차를 건넨 뒤, 캔맥주를 뜯었다. 그녀의 시선이 TV로 향했다. 효원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여자가 갓난아기를 안은 채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몸을 회복하기도 전에 둘째를 임신했다는 이제 막 성인이 된 소녀였다. 화면을 보던 혜미가 혀를 내두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신은 겪어 본 적 없는 일이라는 듯, 그리고 앞으로 자신의 딸 효원이 겪어야 할 일임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효원이 가만히 배 위에 손을 얹어 보였다. 혜미에게 묻고 싶었다. 만일 TV 속 여자아이가 남이 아닌 나였다면 엄마는 어떻게 하겠냐고.

 “본인 의지가 제일 중요하지, 뭐.”

 마치 자신의 속마음을 들은 것 마냥 혜미가 혼잣말을 해 보였다.     


 화면 속 여자는 웃고 있었다. 나이는 어려도, 아이가 생기면서 가정을 꾸리게 돼 행복하다고 했다. 둘째를 갖게 된 건 남편과 상의 후에 계획한 일이었다며, 부부가 함께 태어날 아기의 태명을 고민하는 모습이 예뻐 보였다.

 “그렇지, 남자를 봐야 돼. 지 자식들을 책임질 수 있는 놈인지, 아닌지.”

 “그걸 어떻게 알고?”

 효원의 물음에 혜미는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녀에게 동하의 눈빛은 어떻게 비칠까.     


 혜미는 딸을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단 한순간도 낳아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의 결정에 부모와 형제, 그리고 남편 될 사람까지 모두 등을 돌려버렸지만. 만일 나였다면, 이 세상에 혼자 남게 돼버린 그 상황을 버틸 수 있었을까? 스스로 버림받은 여자라며 나와 아이의 미래를 포기하지는 않았을까. 효원은 어쩌면 스스로가 이미 부족한 엄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근데 가능하면 평범한 게 좋은 거야. 대학 나와서 직장 생활하다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람은 늘 자신이 가보지 못한 길, 갖지 못한 것들을 갈망하고 그리워한다. 그렇기에 혜미는 효원이 자신과 다른 인생을 살아가길 바라고 있었던 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후회한 적 없어?”

 효원의 물음에 혜미가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수천 번 후회했지.”

 당연한 대답이었다. 아무리 강한 엄마라고 해도 말도 못 하는 아기와 단 둘이 살아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테니까. 효원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혜미가 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었구나, 하는 생각에 엄청 많이 후회했어.”

 단 하나였다. 믿고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배신감, 그녀를 힘들게 했던 건 그것뿐이었다. 혜미가 효원과 눈을 맞추고는 아직 젖살도 채 빠지지 않은 효원의 볼을 꼬집었다.

 “이렇게 착한 내 새끼가 옆에 있어서 엄마는 행복해. 얼른 어른돼서 엄마랑 같이 술도 마셔줘-”

 잔뜩 기대에 부푼 표정을 한 혜미가 효원의 매실차에 캔맥주를 짠, 하며 부딪혔다. 자신은 절대 착한 딸이 아니라는 걸 효원은 알고 있었다. 혜미가 남의 집에 얹혀살며 눈칫밥을 먹어야 했던 것도, 아르바이트로 겨우 반지하 월세방을 구해 산 것도, 그리고 수도 없이 마주했던 힘든 순간들까지 모두 자신의 탓이었다. 만일 19살 그녀의 순조로웠던 삶에 자신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혜미는 지금쯤 훨씬 멋진 인생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문득 효원은 두려워졌다.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은 내 아이도 먼 훗날 지금의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될까? 그리고 아무에게도 위로받지 못한 채 혼자 외롭게 버텨왔을 그녀의 세월을, 당신의 딸이 똑같이 걸어가겠노라 말할 수 있을까. 효도는커녕, 조만간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박게 될 또 한 번의 불효를 생각하니 효원의 가슴이 답답해졌다.     


*


 [잠깐 얘기 좀 해]     


 동하를 기다리는 효원의 표정이 굳어있었다. 오전에 받은 성적표에 처음 보는 숫자가 적혀있던 탓이었다. 시험 기간 내내 불면증에 시달리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 공부에 집중을 못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예상 못한 터였다. 가장 중요한 수험생활의 시작이 이렇게 망가지다니, 효원은 화가 났다.

 “정효원!”

 멀리서 성적표를 들고 달려오는 동하의 모습이 보였지만, 그를 뒤로한 채 효원은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런 효원을 보며, 당황한 표정의 동하 역시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효원이 만석인 버스 안으로 계속해 밀려 들어가자 동하가 사람들을 제치며, 효원의 옆자리에 섰다.

 “오늘도 학원 안 가?”

 효원을 보는 동하의 눈은 하고 싶은 말들로 가득했다. 대답 없이 앞만 보는 효원에겐 분명 무슨 일이 있는 듯했지만 동하는 그녀가 입을 열 때까지 아무것도 묻지 않기로 했다. 그저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자꾸만 중심을 잃고 옆으로 넘어지려 하는 효원을 안전하게 잡아주는 동하였다. 한 정거장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며 앞으로 자리 하나가 생기자 얼른 동하가 효원을 앉혔다.

 “… 가방 줘.”

 효원이 동하에게 손을 내밀었다. 잠시 망설이던 동하는 이내 그녀의 무릎에 가방을 올려두었다.     


*     


 “아무도 안 계셔?”

 “엄마 회사 갔어.”

 효원이 문을 열고 들어와 방으로 향했다. 그런 효원의 눈치를 보며, 그녀를 뒤따라 들어가는 동하였다. 이윽고 효원이 서랍에 숨겨둔 초음파 사진과 임테기를 꺼내 동하에게 건넸다. 순간 말없이 쳐다보는 동하의 표정은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나 아기 가졌대.”

 효원이 동하와 눈을 맞췄다. 동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들이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이윽고 가방에서 성적표를 꺼내 넋이 나가버린 동하의 앞으로 내미는 효원이었다.

 “공부하는 내내 힘들고, 아팠어. 잠도 제대로 못 잤고. 나 이제 어떡해?”

 효원은 반에서 줄곧 1등을 놓치지 않던 우수생이었다. 그런 그녀가 고3 첫 중간고사에서 23등을 했다. 

 “… 병원은, 혼자 갔다 온 거야?”

 방 안으로 흐르는 정적에 동하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그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였다. 혜미가 말한 눈빛이란 게 이런 걸까…. 순간 안심이 된 탓인지 효원의 눈앞이 눈물로 가렸다. 처음 보는 낯선 효원의 모습에 놀란 건 동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만 뚝뚝 흘리는 효원을 동하가 가만히 안아주었다. 마치 그녀에게 다 괜찮다고 말해주듯이. 동하 역시 울고 있었다. 품에 안긴 효원은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나 대학교 가야 돼. 가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좋은 직장 들어가서 멋있게 살고 싶어. 그러려고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잖아. 아빠 없이 자랐다고, 어디 가서 모나고 부족하다는 소리 안 들으려고, 내가 진짜….”

 우리는 행동을 더 조심했어야 했다. 부모 없이 자라 그렇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고, 엄마 밑에서 가정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손가락질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부단히 공부하고 노력했다. 그런데 모든 게 망해버렸다. 이제 분명 그 엄마에 그 딸이라며, 평범하지 못한 집안에서 자라 그런 거라며 온 동네 사람들은 둘을 향해 혀를 끌끌 찰 것이었다. 효원이 울분을 터뜨렸지만 그럴수록 동하는 그녀를 더 세게 안아주었다. 혼자 힘든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하다며, 다음번엔 같이 병원에 가보자고 말해주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성적표 나왔니?]     


 혜미에게 문자가 왔다. 한참 울다 지쳐 소파에서 잠든 효원을 보던 동하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잠시 생각하고는 이윽고 효원에게 이불을 덮어주고는 조용히 집을 나서는 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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