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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Dec 10. 2020

두 번째 대위기

제발, 서로 배려 좀 하고 예의 좀 지킵시다.


대망의 두 번째 대위기다.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교사와 싸울 뻔했던 에피소드이다. 일이 커지지 않은 건 그 매체가 학교 메신저였기 때문이다. 아마 실제로 얼굴 보고 있었으면... 그 이상은 상상조차 위험할 것 같아 이쯤에서 멈추겠다.




그날은 그냥 평범한 날이었다. 그 사건이 생기기 전까지는. 소소하게 대출, 반납, 행사 준비를 하며 오전을 보냈다. 그리고 가장 바쁜 점심시간에 사건이 터졌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다음 주 수요일 1~6교시 도서관에서 저희 학년 독서 짝꿍 수업하겠습니다~]


사실 이 메신저는 살짝 기분 상하는 정도였다. 도서관에 대한 배려가 없는 느낌? 근데 워낙 그런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냥 그럼 그렇지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죄송하지만 그렇게 연달아서 진행을 하시면 도서관을 정리할 시간이 없어서요.. 다른 학년도 이틀에 나눠서 오셨으니 그렇게 진행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내면 마무리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 후 받은 답장이 기어코 나를 진심으로 화나게 만들었다.


[선생님 수요일은 원래 저희 학년이 도서관을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에요. 선생님께서 정리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저희 학생들이 도서관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이하 중략, 처음에 말한대로 사용하겠다는 내용)]


이 메신저를 읽는 순간 이미 내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이 사람은 도서관을 대체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도서관에서 단체 수업을 해본 적이 있긴 한 건가 싶은 심정이었다. 알지도 못하면서, 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거기다 누구 맘대로 통보인지. 정말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학교도서관은 그 역할과 의미에 맞게 수업 시간에 꽤 자주 활용이 된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려고 만든 도서관이고, 그러고 나면 이용률이 늘어난다는 장점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1인 사서인 학교도서관에서 단체 수업을 저렇게 연달아 진행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보통 아침 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찾아온 학생들이 휩쓸고 간 자리를 수업 시간에 치워가면서 운영을 하는데, 그 수업 시간에도 아이들이 있다면? 도서관 책은 끝도 없이 빠져나와 책수레 위에 쌓이고 만다. 중간중간 정리를 한다고 해도 따라갈 수 있는 속도가 아니다.


그리고 나도 다른 업무(대출/반납, 행사, 행정 업무 등)가 많은데 하루종일 책만 꽂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렇게 되면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책은 자리에서 찾지 못하고, 엉망으로 쌓인 책수레에서 꺼내다가 책이 우수수 떨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덤으로 내 속도 무너져 내린다. 그렇게 여섯 시간 내내 진행한다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다.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했던 말인데, 그게 그냥 징징대는 소리로 들린 모양이다. 상대가 도서관을, 그리고 나를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보낸 메신저와는 다르게 딱딱한 말투로 답장을 보냈다. 내용은 뭐, 그냥 위에서 언급한 부분을 정리한 것이었다. 쓰다 보니 너무 장문이 되었지만 그냥 보냈다.


그렇게까지 하고 나서야 알겠다는 답변이 왔다. 그 학년도 결국 이틀에 나눠 수업을 진행했다. 설전이 더 이어지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진심으로 속이 터질 것 같았다. 서로 기분 상하지 않고 끝낼 수도 있었을 텐데, 대체 왜 저런 식으로 말을 하는 걸까?




같은 말이라도 분명히 좋게 할 수 있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답장이 온 것은 그냥 상대가 나를 무시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 들어왔고, 어린 데다가, 언제나 웃으면서 좋게 말해주니까.(그 순간마다 내가 얼마나 참고 있는지도 모르고..) 정색하고 말하니까 바로 수긍하는 것만 봐도 그게 맞았던 것 같아서 더 씁쓸했다.


이런 곳에서 더 일을 해야 할까? 진심으로 고민했었다. 비단 이 사건뿐만 아니라, 정말 소소하게 은근히 무시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어디다 화내기도 애매할 정도. 그 애매함이 쌓여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되게 오래 근무한 시점 같지만 고작 4월 말이었다. 첫 번째 위기 때는 그냥 정신이 나갈 것 같았는데, 이때는 좀 진지했었다. 이 일에 대한 회의감이 느껴진 것이다. 그런 나를 버티게 한 것은 오기였다. 그럴수록 더 잘 해내야지, 싶었다. 무엇보다 이런 일로 포기하면 뭔가 지는 것 같아서 싫었다. 물론 살면서 지는 일도 있을 수 있는 거고, 나는 그걸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지만, 이번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끝까지 버티자. 그냥 버티기만 하지 말고 잘하자. 그래서 결국 인정하게 만들자. 그렇게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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