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이다.
이 대목을 고른 이유는 지금쯤 어느 과수원에서는 달빛을 받으며 사과꽃이 피고,아니 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그 바람에 온 마을에 사과꽃 향기가 가득하지 않을까.
'사과꽃 향기', 라고 쓰고 나니 무슨 시 제목같기도 하다.ㅎㅎ
문장이 아름다웠고 소설이지만 옴니버스 형식이라서 지루하지 않았다.
♧♧
사과꽃 냄새다.
그것은 반쯤 열린 창에서 미끄러져 들어온다. 요 며칠 사이에, 온 마을의 나무가 한꺼번에 꽃을 피웠다. 내 후각은 보통이 아니다. 적어도 두 종류의 사과꽃 향내를 분간할 수 있다. 하나는 야에코네 집에서, 또 하나는 병풍 속을 구불거리며 흐르는 강 훨씬 저쪽 상류로부터 봄바람이 실어 온다.
나밖에 모르는 사과밭이 있다.
가는 붓을 써서 콩 크기로 그려진 아득히 멀리 있는 산, 사실은 그 산록에도 사과밭이 펼쳐져 있다. 어느 나무도 모두 멋지다. 나는 벌써 여러 번 거기에 갔었다. 강을 건너고, 바위에서 바위로 옮겨 뛰고, 걷고 걸어서 겨우 도달한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꼭대기에 풀이 자라 있는 띠로 지붕을 인 집, 사과나무 아래에 놓아기르고 있는 색색가지 닭, 흩어지게 피어 있는 연꽃과 민들레꽃, 날아다니는 하루살이…… 그러나 인기척은 아무 데도 없다.
-마루야마 겐지, 《달에 울다》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