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좋아했던, 지금도 좋아하는 박완서선생의 작품이다.
언젠가 복닥거리는 집에서 마땅히
글 쓸만한 공부방 하나 없는 내 신세를 한탄한 적이 있다. 이 글을 읽고 즉시 마음 고쳐먹었다.ㅎㅎ
그렇긴 했지만 남편 옆에서 수필을 쓰고 싶지는 않다.ㅋㅋ
♤♤
서재에서 당당히 글을 쓰는 나는 정말 꼴불견일 것 같다.
요 바닥에 엎드려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뭔가 쓰는 일은 분수에 맞는 옷처럼 나에게 편하다.
양말깁기나 뜨개질만큼도 실용성이 없는 일, 누구를 위해 공헌하는 일도 아닌 일, 그러면서도 꼭 이 일에만은 내 전신을 던지고 싶은 일, 철저하게 이기적인 나만의 일인 소설 쓰기를 나는 꼭 한밤중 남편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하고 싶다. 규칙적인 코 고는 소리가 있고, 알맞은 촉광의 전기스탠드가 있고 그리고 쓰고 싶은 이야기가 술술 풀리기라도 할라치면 여왕님이 팔자를 바꾸재도 안 바꿀 것같이 행복해진다. 오래 행복하고 싶다. 너무 수다스럽지 않은, 너무 과묵하지 않은 이야기꾼이고 싶다.
-박완서, <쑥스러운 고백> 2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