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아끼는 글 한 편을 올려봅니다. 어쩌다 이 글이 제 어린 눈에 들었을까요?
감동의 물결이 파도처럼 몰려와 서너 번을 읽었습니다. 작가님의 억제된 슬픔의 문장이 가슴을 더욱 아리게 했습니다. 제가 감히 이 작가님 작품을 평을 할 수 없어 전문을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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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선물
유인실
지난 두 계절을 감옥에서 지냈다. 그렇다. 감옥이라는 말이 아마 적절할 것이다. 적어도 그 시공간 안에서는 모든 것이 정지되었으니까. 봄이 가는지 여름이 오는지 계절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했으니까. 삶을 대상으로 어떤 사유를 전개한다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해 보이지 않았으니까.
초여름의 열기가 깊은 땅속으로부터 훅 밀고 올라오는 어느 날,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6월임을 알았다. 벽에 걸려 있는 달력은 산 정상이 아직 눈이 덮인 채로 2월에 멈춰 있고, 올해에 실행할 많은 계획들은 부서진 욕망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해마다 혁명처럼 찾아왔던 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분배되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도 이 봄을 겪고 나서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새삼 봄은 먼 남쪽에서 밀고 진군해 오는 것이 아니라 그를 환대하는 자들의 몫이었던 것이다.
겨울의 끝자락에 매달려 있던 2월의 달력을 뜯었다. 삼월, 사월, 오월 그리고 유월……. 슬픔을 잘라내듯 한 장씩 뜯고 나니 봄날의 꽃 비린 시간들은 흔적도 없이 다 증발해 버렸다. 지난 넉 달 동안 그 많은 봄빛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일찍이 두보는 “꽃 한 조각 떨어져도 봄빛이 줄어든다.”라고 했다. 꽃잎 한 조각 추락하는 것도 이럴진대 하물며…….
지난 2월 남편이 갑자기 쓰러졌다. 누군가 생의 멱살을 잡고 그의 삶을 오려가려고 독을 품은 것 같았다. 순식간에 그의 몸에 수십 개의 줄이 장착되고, 각종 기계들이 호위하듯 눈에 불을 켜고 그를 에워쌌다. 심장을 향해 타전하는 듯한 기계음만이 쿵쿵 소리를 내며 24시간 그의 병실을 지켰다. 나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알지도 못하는 어마무시한 각종 의료 서류에 사인하느라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그 모습은 참담했다. 벼랑 끝에 매달려 가까스로 붙잡고 있는 그 나뭇가지를 누군가가 집요하게 흔들어대는 듯한 무서운 공포감은 빙벽 같은 속을 다 하루에도 몇 번씩 녹아내리게 했다. 처참하게 너덜 해진 그의 삶을 붙잡고 ‘살려 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생명이란 참 불가사의하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슬픔과 두려움을 겪고 나니 오히려 생이 가볍다. 때로는 전체를 지배하는 9할보다 그것에 항거하는 1할로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9할의 생명이 스러져가고 남은 한 가닥 생명은 정오의 태양보다 더 강력했으니까.
아이러니한 것은 그토록 염원했던 생명을 돌려받고 나자, 이제는 그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에 침묵으로 잠식되어 가는 듯했다. 아들은 아빠의 병간호를 하다가 퇴원하기 이틀을 앞두고 입대하게 되었다. “아빠도 못 지키고 왔는데 나더러 무슨 나라를 지키라는 거야.” 짧은 이 한마디를 혼잣말처럼 삼키더니,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가족들을 향해 손 한 번 흔들고 논산훈련소 연병장을 가로질러 나갔다. 훗날 아들은 그의 스무 살 봄날을 어떻게 기억할까. 그날 아들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온몸이 저려 오는 슬픔 또한 온전히 내 몫으로 남아 내 마음을 쿵쿵 울렸다.
나의 이러한 ‘불행한’ 스토리는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다. 졸지에 불쌍하고 딱한 사람이 된 난 주변 사람들의 동정의 시선을 느낄 때마다 진땀을 흘렸다.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온 삶이 순식간에 부정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 이 비루한 삶이라니…….’ 슬픔은 멈추지 않고 회로를 돌렸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몸을 쑥 빠져나오는 슬픔을 만났다. 조심스런 마음으로 내 슬픈 심장을 섬세하게 더듬으며 그 벽을 말없이 함께 넘어주는 사람들, 묵묵히 내게 필요한 것들을 헤아려 대신해 준 사람들, 수업의 결손을 대신해 주고 서류들을 도맡아 처리해 준 사람들, 먼 길을 가야 하는 나를 위해 첫새벽에 달려와 픽업을 자처하고 각종 음식 등을 보내준 사람들……. 슬픔을 다하고 나면 선물이 된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어두울수록 더욱 밝게 빛난 그들이 있어 난 그 엄청났던 슬픔의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물론 값싼 위로의 말에서 마음의 상처도 났다. 그들도 한때는 머그잔 가득 온기를 나눈 끈끈한 인연이었겠지만 느슨한 인연이었음을 알게 된 것 또한 선물이지 않은가.
이제 조금 여유를 찾은 난 사람들의 언행보다 심장을 섬세하게 더듬는다. 미처 마음이 가닿지 못해서 더 헤아리지 못했던 미숙함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동안 받았던 그 사랑을 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흔히 누구나 인생에서 겪어야 할 ‘슬픔 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슬픔은 기꺼이 받아들이고, 스스로 이겨내야 할 몫이고, 묵묵히 그 무게를 견뎌야 할 터이다. ‘하필이면 왜 나냐?’고 묻지 않기로 했다.
삶의 슬픔이 건드리는 몇몇 통점이 내면 깊숙이 닿자 반사되어 돌아온 삶의 언어 또한 선물이었다. 그것은 마치 아직 누설되지 않은 삶의 비의 같다고나 할까?
“……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중략) 그 갈피를 더듬어 볼 수 있는 바람의 마음,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라는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 오늘도 나를 깨운다.
‘부서지기 쉬운, 부서지기도 했을 그 갈피를 더듬어 볼 수 있는 바람의 마음’을 흉내라도 낼 수 있다면 헛된 것들에 아첨하지 않을 것 같다.
아직도 얼마만큼의 시간을 더 견뎌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이 지난한 슬픔의 과정에 백기를 들지 않고 환대한다면 나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노트북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 창밖을 응시한다. 폭염이 재난처럼 무너져 내려도 가을을 준비하는 나무들이 한껏 부풀어 있다.
봄날의 ‘힘센’시간들이 이제 물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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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실
-전북 김제 출생. 《문예연구》 시(詩) 등단(1997년). 《수필과비평》 평론 당선(2015년)
-수상: 제5회 청암문학상
-시집 《신은 나에게 시간을 주었다》, 《바람은 바람으로 온다》, 《나는 지금 빛과 어둠의 계단 앞에 서 있다》 외 다수
-현. 월간 《수필과비평》 주간. 전북대학교,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동리목월문학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