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존슨 : 영원히 살고 싶은 남자>
최근에 넷플릭스로 <브라이언 존슨 : 영원히 살고 싶은 남자>라는 다큐를 흥미롭게 봤다. 다큐에서는 노화를 늦추며 이 땅에서 영생하려는 브라이언이라는 백만장자가 나오는데, 그가 장수를 위해 하는 하루 루틴은 100가지가 넘는다. 그 일부만 소개하자면, 일단 아침 4:30 기상, 하루 1시간 운동, 오전 11시에 마지막 식사, 하루 100알 정도의 알약 섭취, 취침은 저녁 8시 30분. 후반부에 가면 유전자 요법 주사도 맞고, 새로운 피를 수혈 받는 등 온갖 과학적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늦추는 것이지 어쨌든 결국에는 죽을) 그가 이렇게 죽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이유 무엇일까? ‘악동뮤지션’의 이찬혁 씨가 부른 <파노라마>라는 곡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 고장 나버린 내 몸을 두고 저 돌팔이 의사가 사망 선고를 하네.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버킷리스트 다 해봐야 해. 짧은 인생 쥐뿔도 없는 게 스쳐가네 파노라마처럼’. 한 마디로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죽고 싶지 않다는 거다. 브라이언은 가족과 오래도록 살고 싶고 백만장자의 삶도 놓치고 싶지 않기에 죽을 힘을 다해 안 죽으려는 거다.
이찬혁은 이 <파노라마>를 작년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불렀는데, 이 노래와 함께 부른 또 다른 노래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 노래는
<장례희망>이라는 곡이다. 노래의 내용은 ‘나의 장례식은 축하와 환호성 또 박수갈채가 있는 파티가 되었으면 한다’는 장례식의 희망사항을 밝힌 노래다. ‘꿈의 왕국에 입성한 아들을 위해 함께 일어나 춤을 추고 뛰며 찬양하자. 할렐루야 큰 목소리로 기뻐 손뼉 치며 외치세’라고 노래한다. 먼저 CCM이 아닌 대중가요에서 이런 내용이 나왔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파노라마>의 미련, <브라이언 존슨>의 노력이 헛되고 헛됨을 보여주는 노래가 아닐 수 없다. 디모데전서 6장 7절의 말씀처럼, 우리는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니 또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 세상의 삶이 막을 내리면 모든 소품을 버려두고 무대를 떠나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이 세상에 영원히 살 수 없고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크리스천의 삶을 ‘순례자의 삶’이라고 종종 이야기한다. 그냥 쉽게 말해서 ‘여행자의 삶’이라고 생각하자. 여행을 떠나면 집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집이 제일 좋다!’라는 말과 함께). 거기에 계속 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저것 장만할 수가 없다. 좋았던 경험은 모두 추억으로 남기고 돌아와야 한다.
태어난 사람은 언젠가 죽어야 하고 동전 하나 가지지 못하고 떠나야 한다면, 결국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이 ‘예쁜 쓰레기’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바울 사도는 조금 더 심하게 그것을 ‘똥’이라고 이야기한다. 빌 3:8). 그렇다면 그 ‘예쁜 쓰레기’를 조금이라도 더 모으려고 노력하고 그것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는지 자랑하고, 없다고 비관하는 건 얼마나 헛된 것인가.
올해는 ‘여행자의 마인드’로 살아보자. 그것이 물질이던지 비물질이던지 간에 분류상 ‘예쁜 쓰레기’에 해당된다 싶으면 결국 쓰레기니 남에게 양보하고 미련을 거두고 살아보자. 그렇게 역행하는 삶에 대해서 질문하는 이들이 생기면 ‘나는 여행자의 삶을 살고 있다’고 답해보자. 그렇다면 그것은 ‘뭥미?’라고 반응하는 이들에게 조금씩, 천천히 내가 믿고 있는 천국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