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끌려!>
22년 7월 출간된 <자꾸만 끌려!>(생각학교)는 청소년의 중독 문제를 다루고 있는 독특한 소설집이다. 생각학교는 1318 청소년들이 현실적으로 마주한 문제들을 주요 화두로 삼은 클클문고를 출간하고 있다. 총 5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 책에는 5가지의 중독 문제가 짧은 단편소설로 등장하는데 그 중 3가지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정명섭 작가의 <오라클>은 게임 중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상진이는 공부가 뜻대로 안 풀릴 때는 게임을 찾는데, 우연한 계기로 가상현실 게임기 ‘오라클’의 신형 모델을 테스트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상진은 가상과 현실이 구분이 안 되는 게임 속에서 탈출하기 위해 악전고투한다. 정명섭 작가의 작품 속에는 청소년들이 왜 게임 중독에 빠지게 되는지가 잘 녹아들어가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오라클’ 게임기는 가상현실 게임기로 안마의자에 앉게 되면 시각 뿐 아니라 온 몸을 통해 게임을 체험할 수 있다. 미래에는 이렇게 사실과 구분할 수 없는 게임이 사용자로 하여금 좀 더 게임에 몰입하게 만들 것이다.
청소년들은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 공부 스트레스를 게임을 통해서 풀려고 하는데 게임이 너무 재미있다보니 자연스레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이러면서 고달픈 현실을 도피하고자 게임에 과몰입하면 중독에 이르게 된다. 문제는 아이들의 게임사용을 관리해야 하는 부모님들이 너무 바쁘고 일에 지쳐서 그만 손을 놓아버린다는 사실이다. 주인공 상진은 게임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오라클’ 게임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다음에는 게임을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게임을 하는 시간은 즐겁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 현실의 문제를 미루기 시작하면 고통은 가중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독을 치유하는 첫 걸음이라 하겠다.
조영주 작가의 <살이 찌면 낫는 병>은 현아라는 친구가 다이어트 약의 도움을 받아서 살을 빼기 시작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현아는 결국 살을 빼는데 성공하지만 심각한 부작용에 시달리게 된다. 현아는 병원에 입원해서 SMA(상장간막동맥) 증후군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는다. 이 병은 동맥이 십이지장을 심하게 압박하면서 통증을 일으키는 병인데, 보통의 사람은 그 중간에 내장 지방이 있어서 문제가 없지만 심한 다이어트로 지방이 과도하게 빠지면 걸리는 병이다. 결국 그것은 ‘살이 찌면 낫는 병’이다. 현아는 그 말을 듣고 역으로 ‘병이 안 나으면 살이 찌지 않는 거 아니냐’며 좋아한다. 의사는 그 모습을 보고 SMA 증후군보다 더 심각한 다이어트 중독에 걸렸다고 진단한다.
이 단편은 중독의 폐해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무서운 단편이다. 책에서는 주인공이 약을 병원에서 처방을 받지만 저자는 실제로 16세 이하의 청소년이 약 처방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미성년자가 다른 루트로 약을 구하는 방법을 밝히면 악용될 우려가 있어서 그렇게 했다고 밝힌다. 현아는 다이어트 약을 먹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속이 메스꺼워지고 불안해지는 현상을 겪고 항우울제를 복용한다. 실제로 약에 중독되어 심정지로 죽은 사람의 경우에 식욕억제제와 우울증 치료제를 같이 처방을 받았다고 하는데 둘은 기본적으로 상반된 기능을 하고 있어서 신체 내에서 충돌이 일어난다고 한다. 약물로 조절하는 다이어트는 이렇게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는 부작용이 있는 것이다.
김이환 작가의 <세계 다람쥐의 날>은 스마트폰 중독에 대해 다루고 있다. 과학기술이 발달한 미래 도시 ‘테크 시티’ 시민들은 새로운 스마트폰 ‘에토스 나인’이 나온다는 소식에 환호한다. 여기에는 인공지능 ‘히파티아’가 내장되어 있는데 히파티아는 사용자의 스마트폰 중독을 막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소설 속 서윤네 가족은 스마트폰 사용을 너무 많이 하다가 히파티아의 경고를 받고 급기야는 일주일간 스마트폰이 정지되는 사태에 이른다. 인공지능이 스마트폰 중독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긴급통화용으로 사용되는 것 말고는 모든 기능을 정지시킨 것이다. 업무와 오락 모두를 스마트폰에 의존하던 서윤네 가족은 엄청난 혼란에 빠지게 된다. 알람이 울리지 않아 회사에 지각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평소 활용하던 내비게이션도 먹통이 되어 길도 찾아갈 수 없다. 유명 크리에이터를 희망하는 서윤은 SNS 댓글, 조회 수, 좋아요 숫자를 확인할 길이 없어 불안해한다.
이런 서윤이 바뀌는 계기는 종이책을 사랑하는 ‘플라이아데스 시티’에서 전학을 온 루비와 친해지면서부터이다. 루비는 구 버전 스마트폰 ‘에토스 세븐’을 쓰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서윤은 루비와 스마트폰을 학습용으로 같이 쓰면서 친해지고 스마트폰 없이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배워간다. 서윤은 스마트폰에 중독된 자신을 투영하는 다람쥐 캐릭터를 만들어 공모전에 내면서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는다.
<세계 다람쥐의 날>은 사람의 건강을 중요시하는 인공지능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스마트폰을 차단당한 주인공이 도리어 오프라인에서 가족과 친구들과 더 밀접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는 신선한 내용이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루비마저도 신형 스마트폰을 산 뒤에 점점 스마트폰에 빠져들게 되는데, 서윤은 스마트폰이 정지되었을 때 다 같이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고 공원으로 놀러 다녔던 기억을 상기시키며 스마트폰에 중독되지 않도록 서로 돕자고 제안한다. 서윤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동안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또 SNS를 확인하지 않아도 사는데 큰 문제가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 책에는 이외에도 친구관계를 다룬 <우정은 동그라미 같은>(장아미), 인정중독에 대한 <형이 죽었다>(정
해연)도 실려 있어, 10대들의 삶에 떼려야 뗄 수 없는 요소가 된 스마트폰과 게임, 다이어트를 비롯해 인정과 관계 중독까지 넓은 범위에서 청소년들의 마음을 위협하는 문제를 다룬다.
필자는 책에 나오는 다섯 가지 이야기를 통해 청소년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는 것이다.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청소년들은 외모에 신경 쓰고, 성적이 떨어질까 두려워한다. SNS라는 온라인 공간에서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존재감이 있고 인기가 있는지 확인해야 하고, 게임이라는 온라인 공간을 통해서는 현실의 나와 다르게 자신이 강한 존재라고 인식되길 원한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통해 구축되는 관계와 이들 관계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우리 청소년들에게 존재한다. 이런 욕구들이 건전하게 추구되면 좋지만, 혹여 과하게 집착할 때 중독의 위험이 발생한다.
어른들도 청소년들이 어떤 부분의 욕구들이 있는지 이해하고 그것을 어떻게 해소하고 있는지 알아야 효과적인 지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먼저는 청소년들에게 변화무쌍한 인간관계 말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립되어야 하겠다. 그 분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태초 전부터 계획하신 유일한 사람이라는 정체성과, 나에게만 주신 특별한 재능과 소명이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비결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