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집 막내아들>
재벌 총수 일가의 오너리스크를 전담하던 비서가 죽다 살아나보니 그 재벌가의 초등학생 막내아들이 되어있었다. 전생(?)에서 40대 직장인이었던 기억을 모두 가지고 회귀한 덕에 학교 공부는 껌이고, 직장에서 상사에게 아부하던 실력으로 할아버지의 사랑도 독차지한다. 뿐만 아니라 시간을 거스른 덕에 도시 개발 계획까지 미리 알고 있는 상황. 아직은 논밭 뿐인 분당의 땅을 선물로 받아 놓는 센스도 챙겼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재벌집 막내아들>의 이야기이다.
<회빙환>이란?
‘회귀’, ‘빙의’, ‘환생’을 일컫는 말로 최근 웹소설에서는 성공 공식으로 불리는 소재이다. 사실 웹소설 뿐 아니라 영화 <백 투 더 퓨쳐>(1987)에서부터 타임슬립물은 등장하고 있었다. (이보다 더 오래되었을지도 모른다.) 지난 상반기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어게인 마이 라이프>역시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인생 2회 차를 사는 이야기를 그린 회귀물이다.
웹툰, 웹소설에서는 회빙환이 빠진 스토리를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로 일반화 되어가고 있으며, 그런 작품들이 엄청난 조회 수를 자랑하고 있다.
그럼 사람들은 왜 그렇게 <회빙환>에 열광하는 걸까?
누구나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라는 후회를 한다. 쉽게는 그때 공부를 좀 더 했더라면, 그때 그 주식을 샀더라면, 혹은 사지 않았더라면 같은. 어떤 시점으로 시간을 돌려 다시 살 수 있다면 훨씬 좋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한다. 회빙환은 그런 욕망을 실현 시켜 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수능의 정답을 모두 알고 있고, 세계 주요 뉴스들을 이미 알고 있고, 우리나라의 정·재계 사건들도 미리 대비할 수 있다. 심지어 성공할 벤처기업들을 미리 알고 있으니 주식투자는 거리낄 것이 없다.
그러나 현실은 고구마투성이이다. 조별과제는 무임승차하려는 조원들 때문에, 직장에서는 말도 안 통하는 상사 때문에 가슴이 턱턱 막힌다. 뉴스를 보아도 정치, 경제, 사회 어느 분야도 사이다가 없다.
<회빙환> 코드는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피난처가 되어준다. 소설 속 내용을 다 알고 있는데 소설 속 인물로 빙의하고, 절대고수였던 검객이 100년 뒤 환생하여 무너진 자신의 문파를 다시 세운다. <재벌집 막내아들>에서는 재벌가를 전담하던 비서였고, 창업주의 자서전을 달달 외우고 있는 윤현우가 회귀하였으니 당시 아무도 모르던 회장님의 거취도 다 찾아내고, KAL기 폭파 사건, 대통령 당선자, IMF금융 위기 등을 미리 알고 있으니 승승장구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기존의 우리가 알던 스토리들은 대부분 인물이 역경과 시련을 이기고 성공하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회빙환 콘텐츠의 주인공들은 갈등요소들은 쉽게 뛰어넘으면서 악을 규탄하고 성공을 향해 쭉쭉 올라간다. 이는 어떻게 보면 웹소설의 특성과 맞아 떨어진다. 바로 독자들이 복선 등의 복잡한 이야기는 싫어하고 단도직입적으로 결론으로 향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회빙환>은 괜찮을까?
문화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현실을 바꾸고 싶은, 그리고 고구마 따위 없이 사이다만 있었으면 하는 현실의 욕망이 이렇게 회빙환에 열광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회빙환 열풍은 그것이 일어나길 바란다기보다는 현실의 팍팍함에 대한 반증일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갈등없이, 노력없이 쉽게 결과물을 얻고 싶은 욕망이 투영된 결과가 아닐까.
린다 딜로우가 쓴 '만족'(좋은씨앗)이라는 책에 보면 사람은 누구나 두 가지 ‘if’로 고통을 겪는다고 한다. 과거에 ‘만약 내가 그랬더라면 어땠을까?’라는 후회는 분노의 감정에 휩싸이게 만들고, 미래에 ‘만약 이렇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우려는 두려움에 빠지게 만든다(212쪽). 하지만 과거와 미래 모두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을 떠났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을 기억하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은 이들의 인생이 종국엔 영화로운 단계에 이르도록 이끌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회빙환이 인기 몰이하는 이유를 우리는 알지만, 우리는 그런 가상역사에 심취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역사하시고 선한 일을 하시는 주님께 좀 더 집중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