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대기>
요즘 세상에서는 누구나 돈만 있으면 원하는 물건을, 원하는 시간대에 받을 수 있다. 예전에는 물건을 살 때 가격이 중요한 결정 요소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빠르게 신선함을 유지한 채로 내가 원하는 때에 정확하게 배송이 되어야 고객의 만족도가 높아지는 시대이고, 그 마지막 부분의 만족도가 배송업체 간의 차별화를 이루는 중요 요소가 되고 있다.
이렇게 고객의 마지막 순간의 만족을 최적화하려는 노력을 <트렌드코리아 2020>에서는 ‘라스트핏(Last Fit Economy)’라고 명명헸다. 배송의 라스트핏은 고객에게 쇼핑의 번거로움을 해소해 준다. 더군다나 요즘같은 코로나19 시대에는 대면 접촉이 꺼려지는 시대이기 때문에 더더욱 배송산업은 활기를 띠고 있다. ‘누가 가장 빨리 소비자의 문 앞에 당도하는가’라는 과제를 두고 유통 업계가 사활을 걸고 있으며, 이러한 배송의 시각은 점차 빨라져서 새벽배송도 모자라 그보다 더 빠른 ‘야간배송’에 뛰어든 업체들도 증가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위의 과정들을 모두 ‘클릭’ 한 번으로 해결하고 있다. 조금 돈은 더 들어가도 시간을 아끼고 발품을 덜 팔고 최대의 만족을 얻는 형태로 소비는 바뀌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것은, 이러한 시스템이 돌아가는 토대에는 바로 ‘인간’이 있다는 사실이다.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수상한 이종철 작가의 <까대기>는 배송 산업의 구조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보여주는 한편, 그곳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작가도 ‘택배물건을 차에서 올리고 내리는 작업’을 일컫는 ‘까대기’를 하기 전까지는 택배를 너무나도 당연한 배송서비스라고 알고 있었다. 택배를 주문하면 무조건 하루 이틀만에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며칠 늦어지면 왜 이렇게 안 오냐며 짜증을 냈다. 하지만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까대기’를 접하고 나서는 내가 택배를 기다리는 동안 택배 현장에서는 곡소리가 울리고 있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저자는 고객의 ‘라스트핏’을 위해 그야말로 자신의 한 몸을 갈아 넣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급을 많이 준다는 말에 혹해서 현장에 왔지만 어마어마한 택배 물량에 바로 줄행랑을 치는 휴학생, 오전에는 ‘까대기’ 알바를 하고 오후에는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종범, 자신에게 할당된 물량을 해소하기 위해서 쉬지도 못하고 무리하다 결국 쓰러지는 이 기사, 비오는 날 택배상자를 가슴에 품고 뛰다가 빗길에 넘어져도 수수료 7백원짜리 상자의 안전 먼저 확인하는 떡대 기사 등 다양한 사람들의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비단 택배 현장만 이렇게 하루 12시간씩 일하는 치열한 삶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와 함께 고등학교 시절 같은 미술학원에 다녔던 수정이란 친구는 디자인 회사에 다니는데, 그녀 또한 많은 일에 치어 살고 있다. 수정은 평소에 아침에 출근해서 늦은 새벽까지 일을 하다 보니 쉬지를 못해 간이 부었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저자에게 토로한다.
대기업의 광고는 소비를 하면 꿈과 같은 생활이 바로 눈앞에 펼쳐질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지만, 그 이면에 그러한 환상을 위해 희생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들은 보이지 않기에, 이 땅에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인지되지 않고 있다. 사람들은 코로나로 말미암아 전통적인 산업들이 디지털로 전환될 때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 부분이 우리가 제일 두려워 해야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우리 사회를 지탱해 나가는 기본 요소인 ‘인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까대기>의 후반부에서도 저자는 수정과의 대화를 통해 이러한 현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주 6일 근무에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는 것은 기본이고, 사람 값이 싸도 너무 싸다. 몸으로 사는 사람은 몸이 망가지면 끝장이다’. 그리고 덧붙여 자신의 소망도 피력한다. ‘조금 덜 일하되 조금 더 벌어가면 좋겠다. 아프고 다치면 나가라, 네 책임이다가 아니라 쉬어라, 걱정마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러한 사회는 불가능한 것인가? 수많은 전문가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갈 지금 현재가 이러한 패러다임을 바꿀 절호의 기회라고 이야기한다. 먼저 배송산업을 비롯한 우리 사회에 기본적으로 사람이 있음을 자각해야 하며, 동시에 그들의 중요성도 인정되어야 한다. 코로나 이전까지는 배달, 택배 업계의 중요성을 인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 그것을 넘어 의료, 보육 업계에서 일하는 하나하나의 구성원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된 것이다. 영국에서는 이제 이렇게 식품, 의료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핵심인력’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코로나 이후에는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분야에서 일해왔지만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분들에 대한 배려와 처우개선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의 문화도 되돌아 봐야 한다. 코로나 이전, 그러니까 어제까지의 사회는 무한경쟁, 빠른 속도, 소비주의가 판을 치는 사회였다. 기술의 발전은 생산성의 극대화를 위해 좀 더 오랜 시간 일하고, 더 빨리 처리하는 것을 미덕으로 만들었다. 이토록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바쁜 일상에서는 소비에 진득하게 시간을 쓸 여유란 없다. 얼마나 최소한의 스마트폰 터치로 물품을 살 수 있느냐라는 편리성이 핵심가치로 대두된다. 한편, 페이스북 같은 공유사이트의 발전은 남들이 가진 것은 나도 가져야 한다는 소유의 욕망을 만들어냈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특정 제품을 나만 가지고 있지 않으면 사회에서 뒤쳐진다는 불안감이 소비를 부추기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의 시대는 과연 그러한 삶, 그리고 그러한 소비의 패턴이 과연 올바른 것이었냐는 질문을 하게 만들 것이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소유와 욕망에 대한 재정의가 이루어지고, 앞으로는 지혜로운 만족감을 추구하는 사회로 나아가면서 더 적은 것을 가지고 너와 내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공존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 소비 뿐 아니라 사회의 전 분야에서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고, 두려움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믿으며 같이 협력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택배는 로봇이 포장하고 배송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산업의 근저에서 밀알이 되어 일하는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25장 40절에서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시며 작은 자를 향한 관심을 촉구하셨다. 코로나는 우리의 너무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그러나 지금은 또 한편으로는 기존에 생각하지 못했던 우리의 고정관념을 바꿀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변화의 시대, 우리 주변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이지만 그동안 관심을 받지 못했던 분들에게도 관심을 가지는 기회로 삼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