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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dfpark Jan 04. 2023

도쿄의 유도리

#3. 700엔과 1640엔


도쿄 여행 셋째 날, 우리는 부푼 기대를 안고 디즈니씨로 출발했다. 미키 마우스 모양 손잡이가 달린 디즈니 열차에서 내리니 입구의 거대한 지구 분수대가 우리를 반겼다. 본격적으로 디즈니씨를 접수하기 전 먼저 무거운 짐부터 맡겨야 했고 가까이 있는 라커룸으로 향했다. 700엔을 넣고 열쇠로 잠그는 방식의 라커들이 다닥다닥 붙은 라커룸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남은 자리가 얼마 없었고, 중년 남자 직원 한 분이 인원을 안내 통제하고 계셨다. 우리는 구석자리에 남은 라커 하나를 간신히 발견해 짐을 쑤셔 넣은 뒤 100엔 7개를 하나하나 세 동전 투입구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열쇠를 철컥 돌렸는데… 어? 열쇠가 돌아가지 않는다? 문을 힘껏 밀면서 아무리 열쇠를 돌려봐도 문이 잠기질 않았다.


그 사이에도 다른 입장객들이 몰려들어 다른 라커들도 빠르게 선점되고 있었다. 이미 700엔을 꿀꺽 삼켜버린 라커를 포기할 수 없었던 우리는 일단 구석에 하나 남은 다른 라커를 슬쩍 몸으로 가리고 섰고, 남자 직원분께 다가가 손짓발짓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그가 누군가에게 무전을 하는 듯했고 그 상태로 십여 분이 지났다. 우리는 어두침침한 라커룸에 갇힌 채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바깥에 꿈과 환상이 가득한 디즈니씨가 기다리고 있는데…!





다음 날, 도쿄 근교의 바닷마을 가마쿠라에 가기 위해 ‘에노덴 패스’라는 1일 교통권을 구매했다. 가격은 인당 1,640엔(약 16,000원)이며 하루 동안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신주쿠역에서 오다큐선을 타고 먼저 후지사와 역을 가야 했다. 우리는 오다큐선 개표구에 에노덴 패스를 집어넣었고 패스는 반대쪽으로 뿅 하고 튀어나왔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직 여유 시간이 좀 있었고, 친구는 다시 패스를 찍고 나가서 신주쿠 구경을 좀 하다가 돌아오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그래서 다시 밖으로 나가기 위해 오다큐선 개표구에 다시 에노덴 패스를 집어넣었는데… 사라진 패스는 도로 튀어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허공에 사라진 1,640엔(약 16,000원)이 뇌리를 스치며 식은땀이 흘렀다.


알고 보니 이 패스는 신주쿠-후지사와행은 왕복권 + 후지사와에서 에노덴라인만 무제한인 패스였다. 신주쿠에서는 들어갈 때 한 번, 나올 때 한 번뿐이라는 얘기. 일반적인 교통카드처럼 하루동안은 무제한으로 막 찍고 다니는 줄로만 알았던 우리는 또다시 시련을 마주했다.





어리바리 외국인 관광객에게 벌어진 두 해프닝은 의외로 간단히 해결되었다. 디즈니씨의 라커룸에서 망연자실한 우리 앞에 주머니춤에 열쇠 꾸러미를 단 인자한 미소의 중년 여성 직원분이 나타났다. 그리고 열쇠로 단 번에 동전 투입구를 따 돈통을 꺼낸 뒤 그곳에 고이 들어있는 우리의 700엔을 돌려주었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홀랑 날린 에노덴 패스도 마찬가지로, 다시 패스를 구매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우리의 상황을 들은 역무원은 흔쾌히 개표구를 열어 패스를 돌려주었다. 활짝 열린 개표구를 보니 감격의 눈물이 흐를 지경이었다.








최근까지도 일본에서는 비대면 근무 중에도 도장을 찍기 위해 출근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결국 사람만이 보고 듣고 해결해줄 수 있는 섬세한 지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일본 사람들은 믿는 듯하다. 다시 도쿄를 찾았을 때, 또 당황스러운 일을 겪더라도 이러한 너그러움이 도쿄에 남아있길 바란다.



무사히 즐기고 온 도쿄 디즈니씨와 가마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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