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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Apr 22. 2022

[M :신과 악마의 내기] #12. 마지막

율은 범을 하린의 옆에 두고 더그를 따라나섰다. 조금 전의 소란은 온데간데없이 한없이 조용한 새벽의 공기가 율의 몸을 타고 올라왔다. 둘은 말없이 경복궁을 걷다 이내 경회루에 다다랐다. 서서히 옅어져 가는 보름달이 경회루 연못에 비췄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적막을 이기지 못한 율이 더그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어떻게 되다니?”

“시험의 날에 이승을 엉망으로 만들었잖아요. 성물도 빼앗길 뻔했고.”

“그렇긴 하지.”

더그의 말에 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상황이 정리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율이 저지른 일은 생각보다 큰일이었다. 태초의 천사와 인간, 세상이 생긴 이후로 한 번도 있지 않은 일이었다. 신이 정한 시험의 날에 이승에서 대악마와 마찰을 일으킨 것도, 신의 아들을 죽인 성물로 내기를 한 것 모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역시 징계는 피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 율의 낯빛이 조금은 어두워졌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과정이 어찌 되었든 결국 하린을 구해냈다. 다시 시간을 돌려도 율은 같은 선택을 하리라 스스로 생각했다. 

“왜 남자를 믿은 거지?”

문득 들려오는 더그의 물음에 율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왜였을까. 수십 번을 스스로에게 되물었었다. 사람을 믿고 무어와 내기를 할 수 있겠냐고. 알 수 없었지만, 왠지 모를 느낌이 율을 내기로 이끌었다. 

“확신보다는 믿음이었던 것 같아요.”

“믿음?”

“네. 정확히 설명은 못 하겠지만, 그냥 믿어야 될 것 같았어요.”

“그렇군.” 

다시금 둘 사이에 적막이 흘렀다. 

“이제 올라가 봐야겠어. 잠깐 이승에 내려왔다고 밀린 업무가 한두 개가 아니라서 말이야.”

갑자기 올라가겠다는 더그의 말에 율이 다급히 더그를 멈춰 세웠다. 

“저는 어떻게 하면 되죠? 같이 올라가면 되나요?”

“네 직위는 이승의 사람을 돌보는 것 아닌가?”

“그렇지만, 어떤 식으로라도 징계를 받아야 하니까요.”

“신은 이미 너를 용서한 것 같은데.”

“네?”

“언젠가 내게 물은 적이 있었지. 신이 너의 일생에 한 번이라도 너의 기도를 들은 적이 있냐고.”

율이 죽고 처음 더그를 봤던 날, 하소연처럼 물었던 질문이었다. 더그가 백 년도 더 된 율의 질문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율에게 더그가 말을 이어갔다.

“신은 모든 사람의 곁에 언제나 함께 있어. 악인의 옆에도, 선인의 옆에도, 심지어 천사의 옆에도.”

“옆에 있다면 왜 나타나지 않는 거죠? 신이 나선다면, 더 나은 세상이 될 수도 있을 텐데요.”

“글쎄. 믿음 아닐까. 네가 처음 본 남자를 믿은 것처럼.”

말을 마친 더그가 이내 옅은 미소를 보이더니 이내 등 뒤에서 커다란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는 율이 무언가 물을 새도 없이 빠른 속도로 통로가 있는 곳으로 사라졌다. 사라지는 더그의 뒷모습에서 순간 율이 꿈에서 봤던 익숙한 뒷모습과 겹쳐 보였다. 율의 얼굴에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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