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간택일지 1>
2022년 6월,
뜨거운 불볕더위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르는 날씨였다. 습도도 높고 불쾌지수가 오르려던 찰나,
"여보, 빨리 이리 좀 와봐!"
요란스러운 남편의 목소리가 들린다.
"왜? 무슨 일인데?"
나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주차장 쪽에서 나를 다급하게 불러 남편이 있는 쪽으로 가보았다. 남편 발에 누워있는
노란 치즈 고양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어딘가 모르게 억울하게 생겼고, 귀여운 외모에 작고 마른 고양이는 이곳에서 누가 키우는 건지,
이리저리 떠도는 고양이인지 모르겠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잔망을 떨며
애교를 부리는데 너무 귀여웠다.
새로운 집에 이사하기 전 마지막 잔금을 치르고, 확실히 우리의 소유가 된 집에 들어가 여기저기 실측을 하며 인테리어 구상을 하기 위해 아침부터 달려온 곳이었다.
서울을 떠나 낯선 이곳, 경기도 화성에서 내 거처를 옮긴다는 것이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 때였다.
여러 생각이 교차하던 순간 잠깐 만난 치즈 고양이는 불볕더위도 잊게 할 만큼 기분 좋은
에피소드였던 거 같다.
'이렇게 귀여운 개냥이가 우리 동네에 살다니!'
한 달 뒤 이사를 오게 되면 츄르를 늘 지니고 다니며 챙겨줄 생각이었다.
사실 나는 남편과 연애하기 전 까진
강아지 vs 고양이 논쟁을 펼치면 무조건 강아지 파였다.
어린 시절 강아지와 가깝게 지내왔기도 했고 초등학교 때 길에서 만난 새끼 고양이를 구조하는 현장에서 구경한 적이 있었다. 옆에서 한 번 새끼 고양이를 만졌는데 내 손을 콱 깨물어 피가 난 적이 있어서,
고양이라고 하면 사납고 무서운 동물로 느껴져 왔다.
그것도 그럴 것이 고양이가 발정기가 되면 무섭고 사납게 우는 것이 마치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같기도
하고 그 소리가 소름이 끼쳐 듣기 거북해서 좋지 않은 인식이 있었다.
[고양이는 요물이다]라고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던 차라 길고양이를 마주치기만 하면 가던 길을 돌아가고,
웬만하면 먼저 도망을 쳤다.
나와 반대로 남편은 중국 유학 시절 고양이 2마리를 키웠었고 늘 고양이에 대한 사랑이 극진해서
주기적으로 고양이 인터넷 카페도 활발히 다니며 틈만 나면 고양이 영상과 숏츠를 밤새 보는 찐 고양이 파였다.
남편과 사귀고 정식으로 첫 데이트를 하는 날!
고양이카페로 나를 데려갔고 거기서 난생처음 고양이를 가까이 보면서 고양이 특성을 조금씩 이해했다.
쥐돌이라는 것으로 고양이들과 놀아주는 남편이 너무 신기하기만 했다.
그리고, 나도 점점고양이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지나가는 길고양이 한 마리조차도 애정이 생기고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 먹이를 찾아다니고, 꽁꽁 얼어붙어 물 한 모금 먹지 못하는 길고양이들을
생각하니 갑자기 측은해지기도 했다. 남편은 늘 내 집 마련을 하면 꼭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했는데,
이 번에 내 집 마련을 하면서 은연중에 고양이를 입양하자는 의지가 대단했다.
하지만, 나는 길고양이들 챙겨주는 캣맘 정도로 살고 싶었지, 고양이를 직접적으로 키우고 싶진 않았다.
고양이 털이 집안에 날리는 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고, 무엇보다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 무거웠기에 쉽사리 동의 하진 못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드디어 집을 이사하게 되었다.
이사하는 날,
저 멀리 익숙한 뒤태가 보였다.
단지 내 작은 풀밭에서 신나게 뒹굴거리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 한 달 전 봤던 그 고양이였다.
여전히 활발하고 호기심 왕성한 고양이는 우리들 환영해 주듯 맞이해 주었고 다리 사이사이를 지나다니며
꼬리를 90도로 치켜든 채 비비적거렸다.
그런데, 관리사무소 직원들도 모두 이 고양이를 알고 있었고, 우리에게만 다정한 게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이쁨 받고 있는 단지 내 인싸고양이였다.
이런 '고양이의 탈을 쓴 개 같은 고양이가 다 있을까?'
하면서 그 친화력에 혀를 내둘렀다. 단지 내 지하주차장 한편에 누군가 이 고양이를 위해 밥과 물을 제공해 주는 것 같았다. 어디 가서 절대 굶어 죽진 않을 거 같은 친화력이라 내가 아니어도 인간친화적 마인드로 여러 사람 손을 타며, 함께 공동육아 개념으로 잘 지내고 있는 녀석이었다.
남편은 연애초창기 내가 꼭 고양이 같은 성격을 가졌다며 나와 닮은 고양이 캐릭터를 찾아내고는
"꿀냥이"라는 애칭으로 나를 불렀다. 귀여운 어감이라 나도 그 애칭이 좋아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남편이 고양이를 꼭 입양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서 나는 대신 암컷 고양이보단 수컷 고양이를
키웠으면 좋겠다고 장난 삼아 얘기를 했다.
내가 꿀냥이기 때문에 우리가 입양한 고양이는 '꿀' 돌림으로 '꿀복'으로 지었으면 좋겠다 했고,
키우진 않지만 미리 가족이 될 녀석의 예정된 이름이 있었다.
만약 강아지도 키우게 된다면 그 친구의 이름은 '꿀순이'였는데 아직 입양도 안된 아이들의 이름을 지어놓고 우린 순수하게 기뻐했다.
남편과 나는 자연스레 우리 집 인싸고양이를 "꿀복아~" 하면서 이름도 불러주고 동네에서 만나면 귀여워해주고 간식을 챙겨줬다. 낯선 환경 친구도 없는 곳에서 적응하기 막막했는데 제일 처음 나를 반겨줬던 꿀복이가 너무 고마웠다.
코로나 시절이라 재택근무를 하던 나는 틈틈이 쉬는 시간,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매일 꿀복이를 찾아갔다.
꿀복이의 아지트에 가면 어느 날은 보이지 않고, 어느 날은 만나기도 하는 그런 날들이 지속되었다.
그렇게 2개월간 짧은 우정을 나눴다.
고양이는 키우진 않지만, 다이소에서 고양이 장난감 등을 사서 꿀복이와 자주 사냥놀이를 해줬는데 꿀복이는 낚싯대에 거의 미쳐 있었다. 꿀복이는 심각할 때에는 침까지 흘리며 놀면서 흥분상태를 유지하며
진지하게 사냥 자세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 꿀복이 간식을 챙겨주며, 그날도 어김없이 장난감 낚싯대로 사냥놀이를 해줬다.
꿀복이는 기분이 좋은지 단지 앞 나무를 타기도 하며, 10분쯤 신나게 놀아주다가 집에 들어가려고 하면,
꿀복이는 늘 나름의 선을 지키는 고양이였다.
단지 내 집 입구까지는 따라오지만 절대 들어가거나 하지 않고 항상 문 앞 입구 까지에서만 인사를 나눴고 따라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은 나를 계속 따라와서 장난 삼아 이야기 해봤다.
"꿀복아! 우리 집 놀러 올래?"
하고 엘리베이터를 버튼 눌렀는데, 꿀복이가 엘리베이터 안까지 따라 들어왔다. 순간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하고 놀랐지만 당황하지 않고 우리 집 현관문을 열어 집 안으로 들어오는지 봤다.
그런데 꿀복이는 현관문 앞 신발장 앞에서 잠시 냄새를 맡는 듯하였고 그대로 주저앉아 더 이상 들어오려고 하지 않았다. 온 김에 물이나 주고 싶어서 물도 마시게 하고 츄르를 하나 줬더니 다시 나가고 싶어 하는 듯 "냐~아옹" 하며 밖을 보고 울었다.
바로 엘리베이터를 잡아 꿀복이를 1층까지 데려다주었고 꿀복이가 돌아가는 모습을 본 뒤 다시 올라갔다.
그날 있던 상황을 남편에게 이야기하니, 남편은 꿀복이를 입양해야겠다고 혼자 결심을 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 종종 꿀복이는 우리 집으로 2~3번 나를 따라 놀러 왔다.
그때마다 늘 루틴은 같았다. 우리 집 문 앞 신발장 앞에서만 누워있고 더 활동영역을 누빌생각은 없는 거 같았다. 그 녀석의칼 같은 모습에 나 역시 좋았던 거 같다. 키울 자신은 없지만 이렇게 한 번씩 우리 집에 놀러 오는 건 기분이 좋았던 거 같다. 단지 내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는 고양이가 우리 집에 가끔씩 들러 휴식을 취하는 상황이 참 반갑고 신기했다. 고양이이와 주기적으로 교감을 하고 있으니 신기했고, 우리 집에 놀러 온 첫 손님이기도 했다.
남편이 늘 출근할 때만 꿀복이가 방문을 하기때문에 내심 부러운 듯 꿀복이와 나의 우정을 질투하기도 했다. 낯선 곳에서 차차 적응하면서 꿀복이와 가끔 교감도 하며 하루하루 재미를 느끼고 지내는 나였다.
작은 변화였지만 하루하루 고양이 때문에 기분 좋은 엔돌핀이 돌곤 했다.
나뿐만 아니라 옆 동, 앞 동 등에서 인싸고양이의 안부를 묻고 찾아주고 귀여워해 주는 주민들이 많았다.
우리 집에서 약 50m 정도 떨어진 식품공장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도 개밥을 나눠 먹으며 활동 영역이
꽤 넓은 것으로 보였다.
모래사장에서 열심히 모래 샤워도 하고 나무를 이용해 스크레쳐도 활용하고, 수직 본능을 활용해서 높은 곳을 다니며 누비는 꿀복이가 참 행복한 고양이라는 생각을 했다.
낭만이 있는 묘생을 살고 있는 꿀복이가 늘 건강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하지만,
그 사건 이 후 꿀복이와 나의 삶에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