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간택일지 1>
아직 코로나의 여파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난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다.
종종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는 꿀복이 얼굴을 한 번씩 보고 싶어서
주차장 쪽에서 그 녀석을 불러보았고 일주일 동안 운 좋으면 하루에 한 번은 봤지만 나쁘면 3일 동안 꿀복이의 행방을 알지 못해 허탕을 치기 일쑤였다.
이렇게 혼자만의 짝사랑이 시작되었고, 그러면서 점점 화성이라는 곳에 적응하고 있었다.
꿀복이는 인싸 고양이기 때문에 나 말고도 찾는 이가 많았고, 단지 내 관리소에서도 이 녀석을 챙겨주고 놀아주시곤 하셨다. 매일 물과 사료가 있는 걸로 봐서는 누군가 꿀복이를 돌봐주고 계시는 것 같았다.
꿀복이의 활동범위는 생각보다 넓었다. 단지 내 옆을 벗어나면 큰 식품공장이 나오는데, 그곳에 닭장도 있고 염소도 있고 대형견 한 마리가 있는데 그쪽에서 놀다 오는 것을 보곤 했다. 담벼락을 넘어서 놀다 온 꿀복이는 늘 배가 빵빵했는데, 그곳에서도 누군가 사료를 챙겨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저번에는 개밥을 먹고 있는 것을 목격했는데 굶고 다니는 거 같지는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꿀복이는 자유로운 낭만고양이였다. 흙에서 뒹굴며 모래샤워를 하고, 나무에 올라타 천연 스크래쳐를 사용했고 적당히 사람들과 친화적이고 호의적이라 애교 부리며 간식도 받아낼 줄도 아는 영리함도 있었다.
어느 날, 단지 내 단톡방에 이런 글 이 올라왔다. 꿀복이를 잡아다가 중성화를 시킨다나 뭐라나?
길고양이들 중성화 수술을 하는 지자체 운영시스템이 있던 거 같았다. 찾아보니 화성시 고양이 중성화사업(TNR) 제도를 말씀하시는 거 같았다. 꿀복이를 데려가 중성화를 시킨다는 글을 보았다.
나는 고양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 길고양이들 개체수를 줄이기 위해 그렇게 시행하는 게 나은 처치라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수술한 뒤로 꿀복이가 보이지 않았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알고 보니 수술 직후 보호자가 없는 길고양이들은 바로 야생으로 방생되며 추후 관리가 안 되는 거 같았다. 수술부위가 아물 때까지는 그루밍을 하면 안 되는데 꿀복이는 그곳을 많이 핥았는지 고환 쪽에서 출혈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꿀복이 밥을 챙겨주시던 이웃주민이 꿀복이를 데리고 다시 한번 병원을 방문했었다고 한다.
그분도 걱정이 되었긴 했지만 넥카라를 씌워주며 다시 야생으로 돌려보냈다고 들었다. 성묘 3마리를 키우고 있는 상태라 선뜻 입양이 쉽지 않았기에 그분도 초초해하며 걱정하셨던 것 같다.
이 소식을 듣자마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꿀복이를 어떻게 하면 보살펴 줄 수 있을지 고민했던 거 같다.
점심시간에 밥도 안 먹고 꿀복이가 걱정되어 찾아다니기 시작했는데, 늘 쉬던 곳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꿀복이 왼쪽 귀가 이상하다.
귀가 좀 잘려있었다.
길고양이들 중성화 수술(TNR)을 하고 나면 그 표식으로 귀를 저렇게 커팅한다고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귀를 너무 커팅한 거 같아서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여전히 고환을 제거한 수술부위가 부어올라서 피가 꽉 차 있고 피딱지가 항문 주변 더럽게 붙어 있었다. 뭐라도 챙겨주고 싶어서
"꿀복아 우리 집 가서 간식 먹자"
하고 집으로 향하니 곧장 잘 따라왔다.
그런데 우리 집에 오면 꿀복이 루틴은 똑같은데 신발장 앞 이상 더 올라오는 법이 없는 친구였다. 그날따라 우리 집 거실로 향하는 게 아닌가? 거실에 갑자기 앉더니 오줌을 쌌다. 내가 너무 당황스러워 속으로
'고양이도 이러는 경우가 있나 낯선 곳이라 긴장했나'
하고 그 부분을 닦았는데 다시 다른 위치에 자리를 잡더니 그곳에도 실례를 해버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행위가 스프레이라는 행동인 거 같은데 (호르몬을 이용하여 주변 환경에 향기를 남기는 행동) 우리 집 두 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고, 갑자기 소파 위로 올라가 식빵을 굽고 있었다.
사실 나는 대혼란에 빠져버렸다. 길에서 생활하는 고양이가 더러운 발바닥으로 온 집안을 다니며 오줌 싸고 소파까지 점령을 하니 당황스럽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일단은 지금 사태가 당황스러우니 사진을 찍어두고 남편에게 보내어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보았다.
남편은 한껏 상기된 채 전화를 했고, 꿀복이가 우리를 간택한 거 같다며 그냥 입양하자며 어린아이처럼 들떠있었다.
그렇게 20분쯤 있는 동안 물과 츄르를 주고 났더니 꿀복이는 다시 현관으로 향했다.내보내 달라고 문 앞에서 울고 있었다. 그래서 얼른 문을 열어주고 같이 공동현관 앞까지 데려다주면서 마중을 해주었다.
그날 오후 부랴부랴 일을 마치고 온 남편이 또다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나한테 물었다.
"꿀복이가 우리 집 안까지 들어왔었다고? 자세히 좀 설명해 줘"
내심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차저차 있던 일을 얘기하며 오줌을 두 곳에 싸고 갔다 하며 점심에 있던 에피소드를 방출했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난 사실 꿀복이가 낭만고양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보면 자연친화적으로 지금 잘살고 있는 아이를 우리가 입양하는 게 맞을까 생각이 들었어! 오늘 보니깐 입양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어. 우리 진지하게 이 친구 입양할까?"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꿀복이를 입양하는 것에 대해 물어보았다. 남편은 말할 것도 없이 바로 꿀복이 입양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였고, 남편과 그날 고양이를 맞이하기 위한 최소한의 물품이 뭔지 적어보기 시작했다.
일단 사료, 사료그릇, 물그릇, 스크레쳐, 모래, 화장실, 고양이전용샴푸 이렇게 목록이 정리되었고,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으니 일단 다이소로 가서 필요한 것들을 구매했던 것 같다. 고양이전용샴푸는 없길래 동네 애견샵을 검색해서 고양이전용샴푸를 사 왔고 혹시 몰라 츄르와 참치도 같이 구매를 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우리가 모든 물건을 구매하고 돌아오는 길에 남편은 일주일 만에 꿀복이가 좋아하는 담벼락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그 녀석과 마주치게 되었다.
"꿀복아! 어디 있었어? 보고 싶었는데, 오늘 우리 집 갈래?"
하면서 남편이 꿀복이에게 다가갔다.
늘 그렇듯 애교 많은 꿀복이는 남편과 내 다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반가움을 표했다.
그리고 남편이 다시 말했다
"꿀복아~ 우리랑 같이 살자, 우리 집 가자!"
제안을 한 뒤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대답은 없었지만 말없이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공동현관 앞에서 우린 다시 한번 물어봤다.
"이제 우리랑 같이 살게 될 거야! 여기 넘어가면 우리 집에서 평생 함께해야 해, 진짜 갈 거야?"
하고 제안했는데 꿀복이는 자연스럽게 우리를 따라오며 엘리베이터에 함께 탑승했다.
그리고 남편은 재빨리 꿀복이를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 아마 묘생처음 첫 목욕이라는 것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가 물을 싫어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꿀복이는 큰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남편은 "이 친구 이거 수속성 고양이 아니야?"
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그게 뭐야?" 했더니 물을 싫어하는 고양이들이 대다수인데 가끔 특이하게 물자체를 무서워하지 않는 고양이들이 있다곤 했다. 수속성 고양이를 만나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고 남편은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게 빨래하듯 때 구정물을 씻기고 똥꼬 주변 피딱지들이 제일 거슬려서 거기를 위주로 닦아주라고 말했다. 털에 있는 물기를 말려주려고 하는데 꿀복이가 극도로 싫어했고, 드라이기 소리가 무서운지 멀리 떨어져 혼자 그루밍을 하기 시작했다. 대충 물기만 닦아주었고, 아마도 낯선 샴푸냄새가 싫을 수 있었던 거 같다. 혼자서 그루밍을 하기 시작하더니 점점 털의 윤기가 살아났다. 피곤했을 꿀복이에게 물과 사료를 제공했지만 도통 먹진 않았다.
그리고 나는 고양이가 모래에 배변활동을 하는 것이 신기했던 터라 특별히 훈련하지 않아도 그냥 본능적으로 가서 배변을 본다는 점에서 그 상황을 구경해 보고 싶었는데 아직 꿀복이는 화장실 이용을 하진 않았다.
그리고 솔직히 고양이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처음이라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랐다. 빠르게 집에 적응을 시켜주고 싶은데 조급함이 들었다.
'쓰담을 해줘야 하나? 궁디팡팡을 해야 하나?'
여러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꿀복이가 좀 쉴 수 있도록 조금 떨어진 채 관찰했다.
어디선가 고양이는 낯선 환경이면 무조건 구석으로 숨는다고 들었는데 꿀복이는 그런 행동은 없었다.
그냥 너무 자연스럽게 소파에서 널브러져 자고 구루밍 하고 어색해 보이진 않았다.
간식도 안 먹고 꿀복이가 좀 지친 느낌이라 걱정이 들었다. 남편은 새벽출근 때문에 안방에서 일찍 잠이 들었고, 나는 걱정이 돼서 한 번씩 자다 깨다 꿀복이를 살폈다.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가보니, 꿀복이가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모래를 긁는 소리였다.
'드디어?' 화장실도 이용하고 우리 집 시스템에 적응을 하고 있나 보다 싶어 대견했다.
간식이랑 사료들들 거의 다 먹은 거 같았다. 물도 절반이상 다 마신 거 보니 좀 안심이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고양이 상태를 좀 더 객관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다음날 동물병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