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틸다 하나씨 Feb 24. 2024

산기슭 야생 캠프

바비산 기슭에 자리 잡은 캠핑장,,


감성 넘치는 하얀 캠핑 천막과 따듯한 전구들,

멋진 캠핑 의자와 느낌 있는 캠핑 도구를 장식하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그런 감성 캠핑이 아니다. 딱 느낌 오는 감성 물품 수집하기를 누구보다 좋아하는 나지만 난 내가 생각해도 참 모순이 많다. 멋스런 용품을 만나는 날이면 그걸 진열대에 되돌려 두고 발길을 돌리기란 참으로 힘든 맥시멀 컬렉터이면서도 또 다른 면에서는 자연 그대로의 흙과 돌과 나무, 날 것 그대로의 멋을 온전히 즐기는 여자. 애써 좋은 말로는 리밋이 없는 여자라고 불러보고 싶다.


베트남에도 캠핑카가 놓여있고 감성 뚝뚝 떨어지는 멋진 캠핑 스팟들이 있지만 다른 여행의 목적이 있다면 모를까 굳이 그것을 위해 비행기 타고 달랏을 방문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자연 그대로의 것들을 더 멋있어라 하는 야생적인(?) 사람들이라 하노이 인근의 바비산에서 우리만의 감성 캠핑 스팟을 창착해 내었고,

우리는 베트남 산 자락에 뛰노는 흙강아지들이 되어

야생의 1박을 즐겼더랬다.



원래는 이 바비산 로컬 캠핑장에도 캠프 파이어를 하도록 지정해 둔 곳이 있었지만 학교 수련회를 오면 할 법한 허허벌판 검은 구덩이 앞에서 생뚱맞은 불멍 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일단 캠핑장 스캔이 끝난 뒤 저 구석 끝자락 산으로 이어지는 살짝 경사지고 아늑한 산기슭 스팟을 점찍고는 자리를 틀었다.

관리인 아저씨께서 쫓아오셔서 여긴 안된다 하셨건만 말 잘 안 듣는 우리의 습성은 발동을 했고, 남편의 트레이드마크 호탕한 웃음과 한국 담배 한 갑 주머니에 찔러드리며 설득하는 아들의 애교작전에 아저씨는 이미 넘어가고 있었다. 어어... 안되는데... 안되지만... 그렇다면....


절대로 불이 번지게 해서는 안된다 하셔서 그곳에서도 아저씨께 허락받은 곳에서만 불을 피우기로 약속하고

그렇게 우리의 캠핑은 시작되었다.

관계성만 잘 맺으면 안 되는 게 별로 없는 이 매력적인 나라에 사는 것을 감사해하며

우리는 원하던 최고조의 야생 캠프를 누렸다.

캠핑의 꽃은 겨울인데 또 급 추워진 베트남의 날씨마저 얼마나 고마웠는지. 

동남아에서 한국의 겨울만큼 춥고 건조하기까지 한 날씨는 이례적인 것이기에 

두터운 후드티를 입고 찬 공기를 들이마시며 모닥불을 쬐는 기분이란 더더욱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산두덩이를 타고 올라 가파른 경사에 뿌리가 뽑혀 드러누워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발견. 온 식구가 달려들어 쓰러진 나무를 통째로 낑낑대며 끌고 올 때에 경비 아저씨가 한 차례 또 쫓아오셔서 기나긴 잔소리를 하셨었지만 하여간 말 안 듣는 우리는 또 애교 작전 돌입.

막무가내인듯하지만 겁은 많은 우리를 이내 알아채 버리시곤 이 사람들이 요런 걸 우기긴 해도 결코 위험한 행동을 할 자들은 아니겠다는 확신을 얻으신 후에야 다시 발길을 돌리신 이후로 하룻밤을 새고 캠핑장을 떠날 때까지 더 이상 우리를 찾아 오진 않으셨다. 아무튼 이백 킬로는 족히 될 듯한 나무 한 그루를 넷이서 땀이 흥건하게 배도록 끌고 온 덕에 밤새 꺼지지 않을 땔감을 사냥해 온 모닥불 부자가 되어 얼마나 배가 따시던지...


땔감 사냥을 마친 후

아이들은 곳곳을 탐색하기 바쁘고

알아서들 야영장 평지로 내려가 배드민턴을 즐긴 후 산 언덕을 타며 곤충도 잡고 곳곳을 신나게 뛰어다녔다.


어른들은 토치로 주전자 물부터 데워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산 공기와 함께 혀 끝을 휘감으며 퍼지는 아라비카의 풍미에 시작부터 다들 몽롱해진다.


자 이제 배가 슬슬 고플 시간~

야외에서 굽는 석쇠 구이에는 그 누구도 명함을 내밀지 말라~ 

알차게도 챙겨간 먹거리들... 버터새우구이로 시작해 삼겹살 LA갈비까지 클리어해주고

매운 닭발 치즈구이 소시지 감자 쥐포까지 단 한쪽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


집 테라스에서도 불을 척척 잘 피우는 숯불 전문가 남편은 바비산에서도 거침없었고 맛있는 숯불 구이를 종류별로 끊임없이 입에 넣어주니 사슴을 잡아와 바치는 야생의 사자보다 멋질 수밖에.


 


모닥불 위에 냄비를 달아 팝콘도 튀기고 

점점 쌀쌀해져 오는 새벽 한 시에 끓여 먹는 라면 맛은 크~~ 어찌 잊을 수 있으리~~



물 먹은 나무에 불이 붙지 않아 애를 먹어도 신이 나서 하하호호

연기 먹은 두 눈이 메워서 뜨지 못해도 하하호호

어렵게 어렵게 붙은 모닥 불길에 모두 기립 박수를 치며 하하호호

나무 꼬챙이 끼워 구운 마쉬멜로우를 크래커 사이에 꾹 눌러 만든 산속 스모어의 잊지 못할 그 달콤함조차 완벽했던 겨울 캠핑~~



야영장 근처로 내려가면 데크 위에 텐트를 치라고 훌륭하게 준비된 지정 스팟이 있었건만

말 안 듣는 우리는 또 산기슭 밑 풀밭에 텐트를 치고 둥지를 틀었다. 점점 축축해져 오는 엉덩이에 깜짝 놀라서 일어나니 엉덩이에 동그란 미키마우스 얼룩이 하나씩 생겼다고 또 깔깔깔깔. 멀쩡히 메말라 있던 풀 밭이였는데 흙이 머금고 있던 습기에 이리 조용한 습격을 당할 줄이야. 산 언저리에 있는 한 집으로 얼른 내려가 천막천을 얻어와서 텐트 밑에 깔고는 이젠 완벽해졌다고 또 웃어댄다.


스피커 어깨에 메고 엉덩이 치켜들며 산이 떠나가라 노래하는 우리들. 아무도 없는 산자락에 캠핑장 룰 따위는 우리에게 속해 있으니 이보다 더 자유로운 야생 캠핑이 어디 있을까. 모든 것이 날 것이고 모든 것이 자유롭지만 또 이 모든 걸 야생 캠핑의 시나리오에 넣고 무선 마이크까지 야무지게 챙겨간 우리들, 정말 내가 생각해도 못 말리는 가족들이긴 하다.



막내의 친구 가족과 함께 떠난 야생 캠프덕에 우리는 베트남에서 잊지 못할 추억 한 상자 또 채웠더랬다.

아이들의 숨통 트이는 만세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힐링이었지.



커다란 나무 한 그루 장작 알뜰히 태우느라 밤샘 불멍에 도전~ 새벽 이슬이 어깨를 적실즈음 밤샘 모닥불 감성과 다크서클을 맞교환했지만 겉은 퀭한 눈으로 운전해도 시력은 더 선명하게 반짝거리니 자연과 야생에서 얻는 에너지 충전의 신비함을 설명할 길이 있으랴…


야생 캠프 속 스며있는 멋에 흥건히 젖어들었던 날의 회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우면 채워지는 유리 상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