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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틸다 하나씨 Jun 13. 2024

압도적인 노랑 터치는 보물이 되어

국립 미술 박물관에서 만나는 국보

하노이 국립 미술 박물관에는 9점의 국보가 전시되고 있습니다.

그중 오늘은 회화 보물 세 작품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Hai thiếu nữ và em bé] 1944, Lacquer, 100.2cm*75cm


Tô Ngọc Vân(1906-1954)(또 응옥 번) 작가의

[Hai thiếu nữ và em bé] 두 소녀와 아이,

베트남 라커 회화(옻칠 미술) 분야에서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이 작품의 작가인 또 응옥 번과 아래에서 소개해 드릴 쩐 번껀, 응우옌 자 치, 그리고 응우옌 뜨엉 런은(이번 화에서는 다루지 않지만) 베트남 근대 미술 4대 작가로 추앙됩니다. 오늘은 그중 세 명의 작가 작품을 감상하시게 될 거예요. 


미술을 잘 모르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어떤 그림을 제일 좋아하냐고 물으면 제목과 작가 이름은 기억 못 해도 대부분 이 작품의 모습을 첫 번째로 묘사해 줄 만큼 유명한 그림입니다. 


유명한 미술 평론가로도 활동했던 이 작가의 작품은 1945년 8월 전후로 그 특성이 나뉩니다. 혁명 전에는 도시의 여자와 풍경을 많이 그렸고 혁명 이후부터는 노동자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해 그들의 그림을 많이 그립니다. '두 소녀와 아이'는 1944에 그려진 작품으로 혁명 이전 작가의 평온한 감성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습니다. 



돌돌 말아 올려진 블라인드 아래로 후드러지게 피어있는 접시꽃이 인상적인 집입니다. 

튼튼한 아치형 벽을 배경으로 자매인 듯 보이는 두 소녀는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그 옆에는 늦둥이 막내 남동생이 땅바닥에 앉아 놀고 있습니다. 

세 명의 인물이 삼각형 구도를 이루며 안정감을 주고 있네요.


그림 중앙의 대나무 벤치에 앉아 있는 큰 누나는 단정하게 머리를 묶고 짙은 노랑 아오자이를 입고서 평온하고 푸근한 느낌을 줍니다. 분홍색 꽃을 다소곳하게 떠 받들고 있는 두 손안에 소녀의 감성이 가득합니다. 


벤치 모퉁이에 팔을 걸터앉아 있는 동생은 순결함의 상징인 하얀색 아오자이를 입고 머리에는 귀여운 꽃핀을 꽂고서 한 움큼 꽃을 움켜쥔 언니의 손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귀엽기도 하고 살짝 새침해 보이기도 하는 그녀의 눈빛과 부드럽게 떨어지는 흰색 아오자이 라인에 시선이 한참 머물게 됩니다.


누나들 옆에서 막내 남동생이 놀고 있습니다. 누나들과 대조되는 붉은빛 티셔츠를 입고 땅에 무언가를 그리고 있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명확한 직선과 곡선, 따스한 오렌지 빛이 섞인 노랑과 흰색, 옅은 분홍색, 

녹색이파리와 대조를 이루는 하얀 접시꽃, 경쾌한 홍색의 조화로움으로 동양적 감성과 그 당시 라커회화 기법이 병행된 포인트들에서 보는 이를 더욱 설레게 하는 작품입니다. 


소재성과 예술성 두 가치를 인정받은 이 작품은 2013년 국가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자세히 그림을 들여다보면 라커페인팅 기법으로 파생된 표면의 텍스처가 작품에 멋을 더합니다.







[Em Thúy] 1943, oil painting, 60.3 cm × 45.8 cm


Trần Văn Cẩn (쩐 번 껀)

Em Thúy (여동생 투이)


베트남 국민 여동생 투이

이 한마디면 작품 설명이 끝납니다. 


맑고 큰 눈에 총명함과 다정함을 함께 장착한 작은 소녀

어린 얼굴의 검은 눈동자는 커다란 호감을 주며 제 시선을 움켜쥐고 놓아주질 않습니다. 


이목구비를 요목조목 바라보게 되는 완벽하게 귀여운 한 소녀가 앉아 있습니다. 8세의 소녀가 지어주는 수줍은 미소와 동그랗게 모은 촉촉한 입술과 통통한 볼, 귀 뒤로 꽂아 넘긴 단발머리, 어깨 위에서 살짝 말린 동그란 머리칼은 귀여움, 사랑스러움 그 자체입니다. 수줍게 어깨를 움츠리고 두 손을 모아 다리 위에 살포시 올려놓은 모습에서 소녀의 순수함은 최고조에 오르죠. 그림의 배치도 소박하기 때문인지 관람객에게 깊은 편안함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대나무 앤틱 의자의 진갈색 곡선이 그림의 구도와 균형을 맞추어 줍니다.

매치된 노란 벽, 홍색과 회색이 어우러진 밝은 꽃무늬 커튼과 소녀의 연분홍 원피스 색상이 은은히 조화롭습니다. 따듯하고 밝은 색상의 조화로 고귀하고 순결한 예술 가치를 창조한 것으로 인정받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2003년에 국가 보물로 지정되었답니다.


쩐 번 껀 화가는 인상주의 기법으로 낭만적이고 섬세하게 인물의 감정을 깊숙이 그려내는 것에 능숙한 화가입니다. 33세에 '여동생 투이'를 그렸고 60대에는 손녀의 초상화를 멋지게 그려내기도 했답니다. 

이 그림은 프랑스 화가 Henri Matisse(앙리 마티세)의 비대칭 구도에서 영향을 받았다고도 합니다.


단순하지만 사랑스러운 얼굴을 표현하며, 모든 사람과 소통하고자 하는 듯한 믿음 가득한 눈을 가지고 있는 "Em Thúy"에게서 영감을 받은 영국인 Paul Zetter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Em Thúy를 위한 미뉴엣" (Little Thúy Minuet)이라는 곡을 작곡했으며, Caroline Fry를 초청하여 "Em Thúy"를 보존하고 복원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외국인 자국민 누구 할 것 없이 보는 순간 그 눈빛을 잊지 못하게 만드는 '여동생 투이'랍니다. 






[Thiếu nữ trong vườn]1939, 159 x 400 cm


Nguyễn Gia Trí (응우옌 자 치) 의병풍 

Thiếu nữ trong vườn(화원 속 소녀들)


Nguyễn Gia Trí (응우옌 자 치)는 베트남 라커 예술계의 훌륭한 스승으로 일컫어집니다. 

1939년 달랏의 2대 바오다이(Bảo Đại) 별궁을 위한 병풍 장식물로 창작되었던 이 작품은 1978년부터 베트남 미술 박물관으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습니다.

8개의 목판으로 나뉘어 있고 양면으로 제작된 이 병풍의 한 면은 화원 속 소녀들의 모습이고 다른 한 면은 족뭉(dọc mùng) 나무, 바나나와 대나무 군락이 있는 정원풍경을 묘사합니다.


화원 속 소녀들이 그려진 앞면에는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구조가 있습니다. 서로 다른 연령대의 7명의 여성이 화려한 개량 아오자이를 입고 매우 생동감 넘치는 포즈를 하고 있습니다. 오른쪽 가장 앳된 두 명은 숨바꼭질을 하고 스무살 남짓 보이는 왼쪽의 세 명은 친밀하게 팔짱을 끼고 금박을 입힌 바나나 군락 옆을 걸어오고 있습니다. 그들의 우아하고 진한 꽃무늬 아오자이는 탐이 납니다. 우유빛깔의 계란 껍데기를 입힌 동그란 달과 부드럽게 구부러진 구름 자락은 빛나는 달밤의 부드럽고 평화로운 리듬을 부각하였습니다. 그림 가운데 즈음 오른편에는 중년의 한 여자가 노란색 아오자이를 입고 부용나무 아래에서 사색하고 있습니다. 중앙 부분에는 가장 나이 든 한 명의 여성이 손을 베개 위에 얹고 평안하게 앉아 세상을 관조하고 있는 듯합니다. 


공시성 공간 조형 수법과 서양식 인물 조형 기술, 동양식 식물 화법이 쓰인 이 작품은

소녀부터 노년까지의 한 여성이 거치는 인생의 각 시기를 화려한 화원 속에서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병풍의 앞면 (화원 속 소녀들) 1939, 옻칠
병풍의 뒷면 (바나나 나무와 대나무 군락)


병풍의 뒷면은 족뭉 나무와 바나나 군락이 빛나고 있습니다. 

블랙에 가까운 색감의 땅과 풀잎이 돋보입니다. 살짝 곁들여진 붉은 나뭇잎은 단풍잎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어두운 배경 위에 하얀빛을 띠는 달걀 껍데기와 금박이 깔끔하고 조화롭게 결합되어 화려함을 돋보이게 합니다. 화원 속 소녀에 비해 그림의 구조가 더 구성지고 장식적 표현이 많습니다. 


화가의 세련된 화법과 라커 예술의 재료 처리 기술의 우위를 보여줍니다. 

튼튼하고 맥락 있는 병풍의 구조는 이 작품을 독특하게 만들었고,

뛰어난 예술성으로 2017년에 이 라커 병풍은 베트남 국보로 등재 되게 됩니다. 



라커 회화는 사진으로는 다 전할 수 없는 아쉬움이 큰 작품입니다.

베트남 여행의 기회가 되신다면 국립 미술 박물관을 들러서 

오늘 소개해 드린 작품들을 직관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노랑'이라는 색감에는 호감을 끌어당기는 
압도적인 힘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바로
'행복, 활력, 따뜻함, 긍정의 강렬한 에너지'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반 고흐의 작품에서 노랑이 빠져 본 적은 없습니다.

그가 사랑한 노랑은 그의 '빛과 생명의 에너지'였고

우리의 마음은 그의 노랑에 자석처럼 달라붙어 버렸더랬죠. 


노랑을 사랑하고

고흐를 사랑하는 저는

베트남의 노랑과도 사랑에 빠졌습니다.


베트남에서 국가 보물이 된 회화 세 점을 보면

순도 높은 노랑 터치의 마법이 

이 곳에도 작용한 것이 분명해 보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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