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는 누나가 열두 명이나 되는 홀어머니 외아들이었다.
연필 한 다스, 누나 한 다스 C 군.
어머니가 누나를 열둘이나 낳으시고
외아들을 얻었으니 얼마나 귀한 자식이었을까.
그와 난 3학년 때 처음 만났지만, 성적도, 덩치도 엇비슷해 금세 친해졌다.
자유분방하고 익살스러운 그의 성격도 금세 친해지는 데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하나 웃기는 것이 그는 거의 매일 1교시가 끝나고 등교한다는 것이다.
집도 바로 학교 앞인데, 교무실에 불려가기 일쑤였다.
“왜 그러는 데?”
그가 말한 이유인즉슨,
아침에 일어나기 어려운 아들을 어머니께서 그냥 자게 내버려 둔다는 것이다.
‘하~’
그는 매사에 심각한 법이 없었다.
지각 빼고 말썽을 피우는 애는 아니었다.
다만 온종일,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그런 것만 찾아다니는 녀석이었다.
3학년 1년 내내 장난만 쳤는데
희한하게도 성적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했다.
재미없을 것 같다며
과외 근방엔 얼씬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세월이 흘러,
예비고사를 치른 뒤 나와 같은 대학에 지원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본고사를 치르게 되었다.
(일부러 날 따라 왔는지, 그건 물어보지 않아 모른다.
하지만 그 녀석이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무슨 인연일까.
같은 고사장.
오전 1교시는 국어, 오후엔 영어, 수학, 세 과목이면 끝이다.
오전 국어.
한 30분쯤 지났을까.
열심히 지문을 읽고 답을 쓰고 있는데
갑자기 C 군이 답안을 내고 제일 먼저 나간다.
‘어~? 시험 시간이 두 시간인데? ’
어차피 국어는 작문이 대부분이라 알고 모르고 할 게 없었다.
큰 소리로 부를 수도 없고 휭하니 나가는 그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오후 시험 전에 물었다.
“너! 왜 그랬는데?!”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애들이 너무 많아서 식당에 자리 없을까 봐 일찍 나갔어!”
억장이 무너지고 기가 막혔다.
당연히 나는 붙고 그는 떨어졌다.
‘하~’
그 이후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무려 4수나 한 것이다.
아버지가 안 계신 외아들로 군 문제를 해결한 덕분에
하염없이(?) 사신 우리의 C 군.
그러나 그는,
4수 끝에 서울 유수의 대학에 합격했다는 반전 드라마를 써버렸다.
재수, 3수를 거치는 동안 장난을 손에서 놓지 않으면서도…….
나중에 동창회 자리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고등학생 같았다.
장난기 줄줄 흐르는 천진한 얼굴을 하고서는,
“히히 깔깔 인마야! 절마야!…….”
‘너! 언제 철들래?’
어찌 되었거나 유쾌한 추억을 많이 남겨 준 친구였다.
이렇게
재미있고 평범한 이야기를 쓰면서
그 친구의 실명을 쓰지 않고 ‘C 군’이라고 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 말을 하자니 가슴이 아프다.
어느 날…….
왕성하게 사업을 하던 C가
타국에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단다.
다시 억장이 무너지고 기가 막혔다.
갑자기 돌연. ‘하~’
지병도 없었다는데 심장마비로.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를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사는 게... 뭘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