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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1983년(1)

by 신화창조

80년대 초반

우리에게 가장 큰 부담은 군대 문제였다.


신체검사를 마치고 자연스럽게 영장이 나와 입대하게 되면

2학년을 마치고 가는 것이 정상이었다.

우리 아들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요즘은

1학년을 마치고 가게 되니까 1년이 늦는 셈이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아마도 자원 문제가 아닌가 싶다.

당시 우리 세대는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로서

인력 자원이 풍부한 시절이었다.

1학년을 마치고 가고 싶으면 우선징집원을 내고 심사를 통과해야 했다.

그래서 대부분 2학년을 마치고 입대하는 추세였다.


당시 우리 군은 한미 방위 협정상 60만의 정규군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넘치는 자원으로 비정규군으로 전투경찰, 의무경찰, 비정규 특수부대까지

거의 70만을 보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방위병도 있었으니…….

기타 비정규군 없이 겨우 50만 유지도 힘든 요즘과는 격세지감이다.

(참 큰일이다. 남자아이가 너무 부족하다. 출생이 바로 애국인 시대가 도래했다.)

나는

친구들보다 군대를 1년 늦게 갔다.

3학년을 다 마치고 갔으니까.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집안 사정 때문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군속 공무원이셨다.

당시 국가의 형편상 군 자녀의 학비로 장학금은 줄 수 없어도

아주 저리로 학자금 융자를 해 주고 있었다.

그것도 딱 한 명에 한해서.

나중에 복학하면 세 살 터울 여동생과 2년이나 겹쳐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는 정년이 얼마 남지 않으셨다.

4학년 1학기 등록금을 내고 휴학하면

전역 후 2학기 한 번만 등록금을 내고 졸업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했다.


친구들을 모두 배웅하고 혼자 남아

한 해 후 1983년에 입대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스물셋 당시에는 그 1년이 엄청 크게 느껴졌다.

군대 동기들이 전부 한 살 동생이니까 말이다. 스물둘, 스물셋.


스물둘 쓸쓸한 캠퍼스, 스물셋 8개월 외로운 휴학 생활.


결과론이지만 나도 2학년 마치고 군대 갔어야 했다.

동생은 아주 공부를 잘해서 융자 따위는 신경 쓸 필요도 없었고

4학년으로 바로 복학하고, 또 바로 졸업.

사회에 나갈 준비 부족으로 허둥대고 말았으니

바보 같은 결정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긴 인생을 살고 보니

1982년, 1983년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앞으로 더 이야기하겠지만 추억할만한 사연도 무척 많았으니까.


이야기가 자꾸 길어진다.

그 아름다운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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