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흑백 시대 때 우리가 재미있게 본 프로그램에 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한다.
TV가 집에 들어온 날, 처음 본 화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설치하고 시험 삼아 튼 화면은
미국 드라마 ‘하와이안 5-0 수사대’였다.
내용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으나
첫 화면은 쇼크가 되어 내 머릿속에 박혀있다.
1972년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드라마는 역시 ‘여로(旅路)’다.
1일 드라마로 기억하는데
드라마가 방영되는 시간에는 거리에 인적이 끊길 정도였다.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인기였다.
일본강점기를 거쳐 625동란, 부산 피란 시절까지를 배경으로 하는
일가족의 수난사를 엮어 놓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극적인 드라마였다고 기억한다.
거의 1년 내내 방영한 것 같은데 5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어머니를 뵈면 항상 이야기꽃을 피운다.
코미디 프로로는 ‘웃으면 복이 와요’의 인기가 어마어마했다.
서영춘, 배삼룡, 구봉서, 이기동, 양훈, 양석천, 이런 분들이
주로 슬랩스틱으로 웃겨 주셨다.
10년 넘게 사랑을 받았는데 왜 사라졌는지 지금도 아쉽다.
어느 젊은이가 가장 웃긴 코미디언이 누구냐고 물으면
나는 ‘서영춘’이라고 차분히 설명해 준다.
훗날 태어난 사람들이 ‘서영춘’ 선생을 못 보고 자란 게 아쉬울 따름이다.
오락프로그램으로는 변웅전 아저씨가 진행하는 ‘유쾌한 청백전’이 있다.
일요일 낮(아마 지금 ‘전국 노래자랑’이 방송되는 시간쯤?)
연예인 운동회 비슷한 건데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지금처럼 채널이 많은 것도 아니어서(당시 대구 지역은 KBS, MBC 딱 두 개)
달리 선택의 여지도 없었지만,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당시 사람들은 TV를 사랑했었다.
이 밖에도 ‘타잔’‘동물의 왕국’‘철인 28호’ 이런 걸 좋아했었다.
물론 내 동생들은 좀 다르지만 말이다.
(주로‘마루치 아루치’‘부리부리 박사’같은 어린이 프로를 좋아했다.)
해가 떠 있는 동안 사라졌던
아이들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
“여로, 한다!” “웃으면 복이 와요, 한다!”
이렇게 소리치면 어김없이 다 모였다.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다.
어떤 이는 추억이 노인들의 전유물이라 빈정대지만,
과거, 현재, 미래가 인생의 총합이라면
추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것만큼 짧은 인생을 사는 것이다.
90, 100을 산들 무슨 소용인가.
진정한 장수는 과거를 아름답게 기억하는 것.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추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