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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 인사, 영등포 지점

by 신화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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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초 정기 인사에서 또 한 번 지점을 옮기게 되었다. 영등포 당산 지점 발령.


종합병원 발령을 거부한 것에 따른 보복 인사라고 여겨졌다. 입사 4년 동안 벌써 네 번의 이동이었다.

연초만 되면 짐을 싸야 하는 운명. 일을 못 하고 당하는 인사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실적이 꼭짓점에 있는 직원을 이렇게 대우하는 경우는 없었다고들 했다.

이내 박복한 팔자(?)에 헛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마 속으로 이랬을 것이다.

‘너 이 녀석, 어디 한번 당해 봐라. 네가 감히 덤벼? 거기서도 살아나오나 보자.’


더 웃기는 건 신년 인사회 때 본부장이라는 사람이 손을 잡고 내게 이렇게 나직이 속삭였다.


“내년엔 북부 지점으로 가야지?”


이 정도면 보복 인사라는 내 확신이 틀리지 않았나 싶다.

세월이 흘러 내가 그 회사를 그만두고 U사 본부장을 하고 있을 때 그때 그 본부장이 정수기를 팔러 나를 찾아 왔다.

나 같으면 못 간다.

어떻게 찾아갈 생각을 했을까.

예의를 갖춰서 그분을 대하면서 인생의 알 수 없음에 다시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튼, 인사는 순순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부끄럽지 않은 실적으로 주임을 거쳐 ‘代理’라는 직함을 얻었지만, 여전히 난 힘없는 쫄병 신세가 아닌가.


당산 지점엔 아는 얼굴이 많았다. 개그맨 뺨치게 유머 감각이 뛰어난 지점장님, 선비 같은 소장님은 동향 출신 선배였다. 입사 당시 주임이었는데 어느새 과장이 되어 소장님을 하고 계셨다. 어느새 내 위치는 소 차석이 되어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지점에서는 나를 따듯하게 환대해 주었다. 부당한 대우에 대한 연민의 정이 발동했으리라 짐작할 뿐 이유는 잘 모른다.


담당 지역은 영등포, 동작이었다. 여전히 낯설었지만 좋았다. 사무실이 포함된 지역이 내 땅이었다. 발만 내놓으면 거래처였다. 안양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만큼 일할 시간이 많았다. 새로운 길을 익히느라 엄청나게 많이 걸어 다니긴 했지만, 금방 적응했다. 4년이라는 경험이 순조로운 적응을 도운 것이다.


영등포, 동작에서도 성공이었다. 신규 잘하고 큰 매출 잘 끌어오는 베테랑이 되었으니까. 덕분에 당산 지점은 일 잘하는 지점으로 회사 내에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다음 편에서는 영등포에서 에피소드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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