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 은평, 용산, 마포에 이어 강남, 그리고 안양, 안산까지.
가는 곳마다 실적은 치솟았다.
불과 3년 만에 의원부에는 더 이상 경쟁자가 없었다.
회사에서 부여한 목표를 한참 넘어선 지도 오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망쳐놓은 지역만 골라 돌면서 번번이 살려놓았으니,
스스로 느끼는 자부심도 컸다.
어렴풋 다른 이의 시샘도 느껴졌다.
그 즈음, 당시 회사에서 영업의 꽃이라고 하는 서울 종합병원부로 갈 의향을 물어왔다.
서울 종합병원부는 당시 영업부 모든 직원의 로망이었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
큰 성과라는 실적과 적성이 맞아야 갈 수 있는 부서.
그래서 누구나 발령만 나면 춤추듯 꽃가마 탄 듯 부임하는 부서였다.
또 미리 발령을 귀띔해준 전례도 없었다.
워낙 영업을 잘하고 있으니 특별히 배려한 것이라고 했다.
마치 ‘인심 쓴다, 옛따 먹어라’는 식으로 들렸다.
엄청 좋아할 줄 알았나보다.
그러나 정작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짧은 3년이었지만 입사 이래 회사의 명령에 토를 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무데나 가라고 하면 두 말 없이 가서 기대 이상 결과를 내왔다.
그것도 자알~~.
그대로 진행되더라도 별 말없이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속마음은 가고 싶지 않았다.
첫째, 의원부에서 나름 아성을 쌓았고,
웬만한 종합 선배들 못지않은 실적을 쌓고 있었으며,
그냥 내버려두면 종병부 모두를 제칠 수도 있을 것 같은 야심이 있었다.
둘째, 별 것도 아니면서 으스대는 종병부 선배들의 꼴도 보기 싫었다.
명령만 나면 당연히 내가 춤을 추며 올라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회사의 명령인데 감히 어떻게 거역하랴.
지점장이 다방으로 조용히 불렀다.
지점장은 부장급이었다. 난 주임이었다.
“솔직히 말해줘. 가고 싶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명령인데 어찌 거부하겠습니까.”
“아니야, 자네 의사를 분명히 해. 나머진 내가 맡을게. 안 가게 해 볼게.”
지점장은 보내기 싫었나보다.
특 A급 직원이 갑자기 빠지면 당연히 지점이 흔들릴 테니 말이다.
“그래도 됩니까?”
“물론이지. 나를 믿어봐.”
“네, 알겠습니다.”
발령은 취소되었다. 종합병원부가 뒤집어졌다.
난 꽃 부서인 종병부 발령을 거부한 첫 번째 직원이 되어 있었다.
회사가 종병 발령을 강행하면 즉각 내가 사직한다고 전해졌단다.
종병 선배들은 싸가지 없는 후배가 나타났다고 펄펄 뛰었다고도 했다.
본사는 기분이 나빴지만 취소할 수밖에 없었단다.
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다.
가기 싫었던 건 사실이지만 뭐 그렇게까지 튀고 싶지는 않았다.
어쨌든 찝찝하게 의원부에 더 머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한 순간의 해프닝이
훗날 내 인생의 방향을 돌려놓을 줄은 그땐 미처 몰랐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묘한 웃음이 새나온다.
그 사연은 다음 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