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00 사무국장.
그동안 수집한 정보로는 그는 우리 회사 출신이었다.
주임도 되기 전, 일찌감치 회사를 그만두고 운수업에 뛰어들어 제법 성공한 사람으로서,
사랑의 전화에 주 1회 출근해서 병원 경영을 돕고 있었으며,
의약품 및 진료 자재를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물론 무급 봉사로.
‘아! 우리 회사 출신이라니.’
실마리가 보였다. 어쩌면 잘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 만나 봐야겠다.'
병원 봉사를 계속하며 다시 몇 주의 시간을 보냈다.
성과 없이 시간만 흘러 불안하기도 했지만 참고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나를 찾았다.
'드디어 만났다!'
그가 꼬치꼬치 캐물었다.
언제 입사했느냐, 직급은 어떻게 되냐. 고향은 어디냐.
대답을 열심히 한 후, 조심스럽게 나도 물었다.
“선배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그렇게 하라고 한 신 국장은 섭섭했던 지난 이야기부터 털어놓았다.
이야기는 대충이랬다.
“친정 회사라고 잘 해줬는데 어느 날 갑자기 담당자가 나타나지 않더니 주문한 약도 오지 않더라.
그러니 별수 있겠느냐. 거래 못 하는 거지.”
“담당자가 바뀐다면 새 담당자가 함께 와서 인수인계해야 하는 게 정석 아니냐, 이러는 법이 어디 있냐.
너 같으면 거래할 수 있겠냐.” 라고도 했다.
무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단다.
할 말이 없었다.
여기에는 속사정이 있었다.
마포를 담당하던 후배 담당자가 어느 날 아무 연락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무단결근 후, 해고 처리.
그리고 업무 공백이 생겼고 거래처는 방치되어버린 것이다.
사고 1년이 지난 후, 내가 왔고,
다른 사람 같으면 포기했을 거래처를 살려 보려고 애쓰는 있는 중이었다.
회사 족보를 따져보니 신 국장이 회사를 계속 다녔더라면 나의 1년 선배가 되었다.
이번엔 내 사연을 이야기했다.
“여차여차 굴러다니다가 여기까지 왔다.
조금만 참고 있으셨다면 한 지점에서 직계로 만났을 겁니다.”
그 시점부터 분위기가 확 좋아졌다.
서로 얼굴 보기 전에는 신입사원인 줄 알았단다.
보통 새 담당자는 신입이 오니까 말이다.
“ 전 대립니다. 회사 계셨으면 같이 대리 달고 있을 겁니다.
국장님은 대리 2년 차, 전 1년 차.”
처음 30분은 수다를 떨면서 놀았으며,
나중엔 속사정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회사 험담을 했다.
“이건 윗놈들이 멍청해서 저지른 실수입니다.
그렇게 날아간 거래처가 한둘이 아닙니다! 자기들이 나가서 수습해야지 이게 뭡니까!”
이번엔 신 국장이 웃으며 나를 말렸다.
“워워~ 자네 그러다 회사 오래 못 다녀. 하하”
거래는 복원되었다.
그제야 소장님, 본부장님 모두 방문해서 사과했다.
솔직히 내 느낌으로는 그들이 신 국장을 조금 무시한 것 같기도 했다.
주임도 못 달고 그만둔 친구가 갑자기 거래처 실권자가 되어 나타났으니 선뜻 보고 싶었겠나.
게다가 회사가 명백히 실수했으니 당연히 머리를 숙여야 했고, 그건 하기 싫었을 테고.
어쨌거나 신 국장의 도움으로 거래는 대박이 났고 그 대박으로 나는 영등포에 싹을 뿌리고 거둘 때까지 시간을 벌었다.
아직도 신 국장의 한 마디가 귀에 쟁쟁하다.
사랑하는 후배 님들!
아무리 어렵고 앞이 보이지 않더라도 시장만 있으면 반드시 길도 있습니다.
찾아볼 생각을 안 하거나 미리 포기하지 마세요.
“저 포도는 실 거야!” 하며 그냥 지나가 버리는 여우는 되지 마세요.
어떻게 해서든 포도는 따 가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