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하고 8개월 만에 받게 된 새로운 후배 B 군. 내심 기대가 컸다.
잘 가르쳐 주고도 싶었고 친하게 지내고도 싶었다.
졸병들끼리 희로애락도 같이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
첫 후배 B 군은 무려 나보다 네 살이나 나이가 많았다.
보자마자 한숨부터 나왔다. 완전히 아저씨다.
‘이놈의 팔자’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난 아직 20대 팔랑인데 30대 중반을 치닫고 있는 아저씨 후배라니.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잘 지내봐야지.
잠시 이야기를 나눠보니 사람은 좋아 보였다.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 여러 일을 해 보다가 늦었다고 했다.
연장자이니까 예우는 해 주겠노라 말했다.
어린 사람이 후배 후배 하면 얼마나 서럽겠는가 싶어서.
생각해줘서 고맙단다. 나이를 잊고 대해 줘도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
며칠을 지나보니까 이 사람이 영 이상했다.
자기와 나잇대가 비슷한 주임, 대리들하고만 상대하는 것이었다.
며칠을 속앓이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지내던 어느 날,
타 지점 동기들이 몰려왔다.
“어떻게 된 거야!”
그냥 둬도 되냐고 내게 따진다.
“하….”
그러고 보니 B 군은 우리 동기들에게 선배라는 존칭도 쓰지 않고 있었다.
누구 씨, 누구 씨 한다.
나만 참으면 되는 일이 아니게 되었다.
선을 넘었다....
깊은 곳에서 면담을 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고 주의하겠단다.
그런 말을 하고 나니 마음이 좀 그래서 저녁에 둘이서 한잔했다.
“군대 안 갔다 왔냐, 자존심 상하겠지만 어떡하겠냐, 잘 지내자.”
그렇게 B 군과 수십 년, 긴 세월이 시작되었다.
나의 첫 후배는 굉장히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는 왕소금인 데다,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
영업도 자기가 이만하면 되었다 싶으면 딱 그만한다. 그리고 다음 달로 넘겨 버린다.
희생정신 제로. 협동심 개나 줘버려 주의자였다.
문제는 그런 게 다 티가 난다는 것이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신입은 신입, 윗사람 눈에는 다 보인다는 데 있었다.
당연히 수군거리는 말들이 들려왔다.
저러다가 후배 하나 있는 거 찍혀 죽겠다 싶었다.
또 면담을 했다.
조심하겠다고 손가락 걸고 약속.
그런데 이 부분은 잘 바뀌지 않았다.
천성인가 보다.
전략을 바꿨다.
무식한 방법으로 해결하자.
주문서 감추고 그러면 사규 위반이다, 들키면 너 짤린다, 적당히 해라, 반협박, 반공갈을 쳤다.
완전 오리발이다. 그런 거 없단다. 그렇다면 또 술 먹어야지.
몇 시간을 어르고 달래서 항복을 받아내곤 했다. 확실히 그는 술에 약했다.
‘아이고, 내 팔자야...’
이런 게 아주 월례 행사가 되어버렸다.
나중엔 팀장이 월말만 되면 데리고 나가서 면담하라고 신호를 보내기까지 했다.
절대로 자기 주머니에서 돈 나오는 일 없고 가늘고 길게 사는 게 인생 목표인 네 살 많은 내 졸병 B 군.
내가 팀장 할 때 담당자하고 지점장 할 때 팀장하고 내가 임원 할 때 부장을 했다.
지금은 아들, 딸 낳고 도매상 사장이 되고 돈 많이 모아 잘 산다.
지방 출장 가서 여관비 아낀다고 차에서 자고, 병원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아래 부하들이 회식하자고 성화를 부리면 돼지고기 두 근 사서 자기 집으로 데려가는 우리의 B 군.
보고 싶네.
*** 아 참! 지금은 내게 너무나 깍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