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직장

by 신화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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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당시 내 첫 직장의 상태에 대해 설명을 조금 해야겠다.

그래야 앞으로의 이야기를 끌고 나갈 수 있으니까 어쩔 수 없겠다.


지금은 중견 회사가 되어 있지만 입사 당시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창립한 지 12년 된 작은 회사였다.

보통의 제약 회사는 약국, 의원 등 작은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영업을 시작해서 점차 어려운 큰 병원으로 영역을 넓혀 간다.

대학 병원 쯤 되면 특별한 제품도 있어야 하고 절차와 조건이 까다로워 웬만한 회사는 접근조차 못한다. 그런데 첫 직장은 거꾸로 시작한 회사였다. 약사 출신인 오너 K 회장 부부는 S 대학병원 앞에 약국을 열고 직접 필드맨이 되어 병원을 다니며 영업을 했단다.


1970년대는 의약품 공급이 수요보다 턱없이 부족하던 시절, 처음엔 용하게도 미군 약을 구해와 팔았단다. 엄청난 수요 공급의 차이로 떼밀리듯 유통도매를 거쳐 제약회사를 설립했단다. 당시 병원은 원내 감염이 엄청난 고민거리였고 친정 회사에서 만든 페니실린 제품이 대박을 쳤다고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회사가 나의 첫 직장이었다. 오너 부부는 대학병원 영업 전문가인 동시에 약사였다.

그러다보니 병원 영업을 먼저 시작하게 되었고 다른 기능 영업은 늦게 시작해 내가 입사했을 땐 의원은 시작한지 겨우 2년, 약국 영업은 막 시작한 참이었다.


회사는 작아도 오너는 물론 종합병원 직원들까지 영업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했다. 거기에 비해 성공 사례가 없는 의원이나 약국 직원은 자존감이 낮아 마음속으로 언제나 병원부 발령을 열망하고 있었다.


‘이 회사에서 오래 살려면 종합병원부에 가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모자란 성공 사례는 쌓으면 되는 것이고, 보란 듯이 5년 동안 쌓았으며, 언젠간 자부심 강한 병원부 직원보다 더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본의 아니게 발령을 받아 가게 된 것이다.


난, 이런 생각을 마음속에만 두는 게 아니라 거침없이 공사석 가리지 않고 말해 왔다. 이런 것들이 그들에게는 특별하게 받아졌을 것이고 거부감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사람은 보통 자신과 다르면 밀어낸다고 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겁내지 않았다.

달리는 전차처럼 내 생각을 밀고 나갔다. 옳다고 생각하면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하지 않고…….


비겁함은 죽음보다 싫었다. 내가 비겁하다는 것은 나를 세상으로 내보낸 내 부모, 내 형제, 내 조상을 욕보이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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