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봄은 답답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거래가 전혀 없는 대학 병원 두 개를 담당해 묵묵히 견디며 신약 활동에 전념해야 했다.
누구도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매출 없는 필드 맨의 심정이란 괴롭고 힘든 일이다.
주인의 존재가 분명한 개인 의원과 달리 대학 병원의 제품 활동은 복잡하고 과정도 길었다.
약 하나 넣기가 그리 힘든 줄 짐작이나 했겠나. 숫제 하늘의 별 따기라는 표현이 정확했다.
임기응변으로 엉겁결에 도장을 받기는 했지만 그게 그리 대단한 일인 줄은 나중에나 알았다. 회사는 거의 잔치를 열 기세였다. 단지 도장 받은 것만으로.
병원 생리나 구조를 모르니 시행착오도 많았다. 엉뚱한 곳에서 헤매기도 하고, 힘없는 기초 의학 교수님을 상대로 힘을 빼기도 하고, 경쟁사 제품을 추천한 교수에게 썰을 풀다가 쫓겨나기도 했다.
대학 병원의 신약 활동은 혼자 힘으로 불가능했다. 때론 본부장을 동원하고 심지어 사장까지 동원해야 실마리가 풀렸다. 웬만한 베테랑이 아니고선 만나주지도 않았다.
난 밖에 나가 싸울 때는 회사 내의 감정 따위는 개의치 않았다. 필요하면 감정이 남아 있는 본부장의 옷자락이라도 잡아야 했다.
그렇게 해서 의약품 심사와 관련 있는 사람들은 전부 만났다. 1년 과정인 접수, 예선, 본선, 결승까지 모든 위원회란 위원회는 다 통과해 연말에는 당당히 두 제품을 병원에 무사히 착륙시킬 수 있었다.
그 많은 우여곡절을 어떻게 다 설명하랴.
욕먹고 쫓겨나는 건 상식이 되었고 절차를 몰라서 면박당하는 것은 그냥 재미로 알고 일했다.
어쩌면 세상살이라는 게 몰라서 욕먹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생각하니 욕먹는 일도 즐길 수 있었고 마음이 편했다.
어떤 경우에서도 일할 수 있는 교두보만 생기면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와 감정이 없을 수 없는 본부장도 열심히 도와주었고 전문 경영인 사장님도 몇 차례 병원에 다녀갔다. 그 과정에서 본부장과의 감정은 사라졌다.
당신이나 나나 우리는 다 같은 프로 필드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