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 JS가 올라왔다.
JS는 본부장이 지점장으로 근무하던 지역의 직원이었다. 어느 날 느닷없이 서울로 발령이 나서 황당해하며 올라 왔다고 한다. 이른바 젊은 본부장의 측근 강화책.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JS는 나이도 나보다 한 살 아래고 1년 후배였다. 만나 보니 본부장과는 많이 다른, 착한 친구였다.
그는 부임 첫 날부터 울상이었다.
오고 싶지 않았는데 끌려 왔다고, 신혼인데 강제로 별거하게 생겼다고 징징대었다.
악명 높은 지점장이 본부장으로 영전해 쾌재를 불렀는데 이게 무슨 낭패냐고 울상으로 하소연했다.
‘이런 쯧...’
본부장은 내 경우와 다르게 양질의 거래처를 JS에게 인수인계하게 했다.
서울 생활에 재미를 붙이라고 나름 배려하는 것 같았다. 난 뭐...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 것 가지고 앙앙불락하는 것은 조잔한 놈이나 하는 짓이라고 여겼다.
‘주머니가 아무리 두꺼워도 주머니 속 송곳은 언젠가 반드시 튀어 나온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튀어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송곳이 아니겠지.
난 진심으로 JS가 잘 되길 바랐다. JS도 1년 선배인 나를 잘 따랐다.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나도 JS의 실적이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매일 고향을 그리워하며 징징대었고 그런 그를 본부장은 매일 무자비하게 괴롭혔다. 팀장, 지점장이 있는데도 다 재치고 본부장이 대리를 직접 관리했다.
남이 욕먹는 걸 옆에서 듣는 것도 괴로웠다.
JS의 참을성도 대단했다. 적어도 겉 표정으로는 흔들림이 없었다.
심지어 혼나면서 졸기도 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물으니 지방에서 그에게 잘 훈련이 되어서 아무렇지도 않단다.
그런가보다 하던 어느 날,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JS가 자취를 감추고 무단결근을 한 것이다.
사흘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서울 거처였던 누나 집에도, 지방 본가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이 더 지나면 자동 면직이었다.
그렇게 애를 태우던 중, 나흘 째 JS가 나타났다.
본부장 방에서 장시간 면담을 끝내고 밝은 얼굴로 나온 JS의 첫 한마디,
“형! 나! 있던 곳, **지점으로 돌아가기로 했어!”
그렇게 JS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그의 거래처는 내 것이 되었다.
국립**병원.
“나도 팔 약이 생겼다!”
1993년 6월쯤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