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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리며

by 신화창조

고등학교 1학년, 국어 수업 시간이었습니다.


창밖에 봄비가 오고 있었고요.

봄에 관한 어떤 시 한편을

선생님께서

여운이 길게 남는 운율로 읽어주셨습니다.

열일곱에게는

처음 겪는 묘한 경험이었어요.


전율 같기도 하고, 감동이라고 해도 좋고, 공감이라고 해도 좋았어요.

아무튼

너무 좋더라고요.


그 후 봄비만 오면 그 시를 생각합니다.


제가

그 시를 47년 내내 생각하는 까닭은 희망의 정서를 품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 시를 외우고 있으면,

어둡고 암울한 현실도 곧 밝은 미래로 바뀔 것만 같았습니다.

다시 힘을 내어 달려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기도 하고요.


살면서 참으로 어렵고 힘들고 암담한 적도 많았지만

결국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은

봄비와 같은

좋은 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직은 좀 이른 것 같습니다만

봄비를 기다립니다.

봉지 커피 한잔 손에 들고 창밖을 바라보며

그 시를 외고 싶습니다.

좋은 시는 사람의 삶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때로는 다시 살아갈 용기를 주기도 합니다.


그 시는, 이수복 시인의 ‘봄비’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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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비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고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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