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병원 J박사
30년 전 쯤 된 이야기다.
D병원의 비뇨기과에 J박사라는 분이 계셨다.
원장님 급 최고 원로 선생님,
흰머리와 단아한 용모가 멋진 노신사 선생님.
당신과는 거래 관계로
아무리 적게 만나도 한 달에 한번은 만나야 했고,
우리 회사의 오너와도 친분이 많은 분이셨다.
D병원은 환자가 많지 않는 공립 병원이었지만
비뇨기과만은 환자가 많아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다.
J박사와 상담하려면 개인 연구실에서
거의 1시간 이상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었다.
무척 지루한 시간이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 하나면 무료함을 달랠 수 있는 시절도 아니었으며.
아무래도 기다리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게 되는데
당신 책상 위를 살펴보면 뭔가를 공부하고 외운 흔적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중고등학생들이나 함직한 방식의 연습장 공부.
새카맣게 외운 흔적들.
일흔이 다된 연세에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하다니.
‘저런 자세는 배워야 해.’
또,
수십 키로 떨어진 댁까지 걸어서 출퇴근을 하시기도 했다.
거의 왕복 네 시간을 말이다(길에서 우연히 만난 적도 있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말이 쉽지, 그 연세에 쉽지 않은 일이다.
가장 웃겼던 것은 우리 오너에게 자꾸 돈을 꿔가라는 거다.
우리 회사는 매우 건실한 회사라서 굳이 그럴 필요 없다는데도 자꾸만 꿔 가라고 조르셨다.
문제는 별 볼일 없는 담당자에 불과한 나에게 자꾸 다리를 놓으라고 조른다는 거다.
오너에게 전했더니 펄쩍 뛰는데 나 보고 어쩌란 말인가.
그것도 당시로는 매우 큰돈인 수억 원씩이나.
당신의 속셈은 알만했다.
우리 오너는 신용이 좋기로 유명했고 우리 회사는 알찼으니까 노는 돈 이자가 욕심났겠지.
한 마디로 이자 놀이를 하시겠다는 이야기였다.
일 년은 거절만 했던 것 같다.
오늘도, “회장님이 싫다는데요.”
내일도, “회장님이 싫다는데요.”
아주 꿈에도 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내 능력은 거기까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오너가 갑자기 나를 부르셨다.
난감한 표정의 오너가 하신 말씀,
“야! J박사가 돈 던지고 도망갔다!”
나로선 괴로움을 면했지만 이런 건 상상도 못했다.
대단한 양반이셨다.
유머로 승화되었다는 돈 꿔가라는 것 빼면
무척 재미있고, 친절한 분이셨다.
아들 또래 담당자를 격의 없이 잘 대해 주셨고 배울 점도 무척 많았다.
어느덧 나도 그 나이가 다 되어 가는데 당신 마냥
자기관리 잘하면서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는 분이셨다.
나도
온화하고 유머 넘치고, 모두에게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분처럼, 누군가의 기억 속에 따뜻하고 유쾌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