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들 Nov 27. 2023

기업가가 세상을 사는 방법

기업가의 세계관을 파악하여 그들에게서 배운다.

현대 기업가는 새로운 종류의 인간입니다. 상인(Merchant)은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궁금한 건 도대체 “과거의 상인과 현대 기업가는 무엇이 다른가?”입니다. 기업가는 현대인입니다. 2023년을 산다고 해서 다 현대인인 건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가끔 밀림 속에 사는 사람들을 보며 ‘인간의 근원’을 알아내려 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이건 조금은 우스운 일입니다. 밀림 속 사람들은 그저 시대와 동행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조상인 구석기인들은 2023년에 밀림 속에 사는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구석기인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예술을 남겼고 ‘자기가 살던 시대’, 즉 그들에게 있어서 현재를 살았습니다. 2023년에 밀림에 있는 사람들은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현대의 특징은 무엇이며 현대를 살고 있는 기업가들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1. 실증주의


현대 기업가는 현대의 세계관에 맞추어 사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묻습니다. 현대의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바로 실증주의입니다. 그리고 실증주의가 곧 경험론이자 회의주의입니다. 인간이 사물의 본질을 알 수 있다면 실증주의는 자리를 잃습니다. 실증주의는 인간이 세계의 ‘본질’이 아닌 ‘표층’만을 알 수 있다는 데에서 발생한 이념입니다.


현대 기업가는 사물의 본질을 묻지 않습니다. 그건 현대적인 질문이 아닙니다. 현대 기업가는 “내가 가진 노동과 자본으로 어느 정도의 생산량을 산출할 수 있는가?”라고 묻습니다. 즉, 기업가는 노동과 자본의 ‘함수’를 묻습니다. 여러분이 기업가라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근로자를 고용합니다. 이때 여러분은 근로자의 자아실현을 신경 쓸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기업가에게 근로자는 생산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기업가는 근로자의 ‘본질’을 묻지 않고 단지 ‘유용성’을 물을 뿐입니다. 기업의 재무 상태가 악화되면 기업가는 근로자와 계약 관계를 중단해야 합니다. 물론 이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근로자와 정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가는 회사가 어려워지면 근로자를 내보내야 합니다.


현대의 경제체제는 시장경제입니다. 시장경제는 돈이 거의 모든 걸 결정합니다. 따라서 경영에 있어 선택기준은 다름 아닌 ‘돈’입니다. 여러분이 친구와 동업을 한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점점 커가는데 친구는 회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회사를 이끌려 합니다. 즉, 돈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회사를 이끌려 합니다. 이때 여러분은 동업자를 버려야 합니다. 우정을 운운하며 돈이 되지 않는 길을 갈 수는 없습니다. 돈은 눈에 보이지만 우정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친구를 버리는 행동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기업가는 돈이 가는 길을 따라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 기업가의 정신을 장악하고 있는 실증주의입니다. 실증적인 것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게 현대 기업가입니다. 실증적으로 산다는 건 매우 힘듭니다.

그래서 기업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2. 실존주의


현대 기업가의 두 번째 특징은 돈을 향한 무한한 욕심입니다. 그 어떤 현대 기업가도 ‘이만하면 되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충분한 돈이라는 건 없습니다.


경방의 김용완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기업인이란 개미처럼 죽을 때까지 일할 운명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맞습니다. 기업가는 죽을 때까지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에게 도달이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삶의 태도는 단지 기업가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현대인은 모두 이런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인은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하기 위해 일하고, 살기 위해 살고, 사랑하기 위해 사랑합니다. 이런 태도를 우리는 실존주의라고 부릅니다. 그 어떤 현대 사상도 실존주의 밖에 있을 수 없습니다.


무엇이 도대체 실존주의를 만들었나요? “실존이 본질을 앞선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요? 이 말은 사실 매우 간단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근원(본질)을 모르고 앞으로도 영원히 모를 거라는 겁니다. “내가 왜 태어났을까?” 이런 질문은 이제 쓸모도 없고 의미도 없는 질문입니다. 인간은 존재의 근원에 대하여 단 하나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건 ‘여기 지금 내가 있다.’는 사실 뿐입니다. 우리는 지금 나에게 주어진 현재(실존)만을 살 수 있을 뿐입니다. 끊임없는 자기 갱신으로 매 순간을 ‘현재’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실존주의의 요체입니다.


경영자는 매 순간 스스로를 갱신해야 합니다. 시장경제는 단 한 순간의 안일함이 몰락을 가져올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새로운 경쟁자는 계속 들어오고 기업 환경 역시 계속 변합니다. 기업은 성장 아니면 몰락 밖에 없는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디에서 멈출 수 있겠습니까? 그 어떤 경영자가 ‘이만한 시가 총액이면 되었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 어떤 현대 경영자도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의 시가총액은 오늘로 끝입니다. 내일은 또 내일의 시가총액이 있습니다. 경영자는 매 순간 기업을 개선하기 위해 경영해 나가야 합니다. 충분한 이익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경방의 김용완 회장이 말했듯이 기업가란 ‘죽을 때까지 일할 운명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멈춤은 곧 죽음입니다.


기업가는 실존을 살아야 합니다.






(브런치에는 없는, 경제 경영과 관련된 저의 더 많은 글들을 보고 싶으시다면,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https://studiocroissant.com/my-philosophy-39/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