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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Feb 21. 2021

나의 낡고 늙은 이어폰이여.

작고 사소한 것들이 눈에 밟힐 때

초등학교 때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발 밑에 차이는 돌멩이 하나가 있었다. 동그랗고 작은 그 돌멩이를 발로 톡톡 차면서 집까지 왔다. 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섰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도로 밖으로 나갔다. 대문 앞 길바닥에 내버려 둔 작은 돌멩이가 불쌍해서였다.


그 돌멩이를 끝내 집으로 가지고 와서 책상 서랍 속에 집어넣었다. 그 속에는 이미 여러 종류의 돌과 빵 봉지, 과자 봉지, 쌕쌕 오렌지 빈 캔, 낙엽, 시든 꽃잎 등등이 가득했다. 길거리에서 내 발 끝에 채인 것들을 외면하지 못한채 전부 주워온 결과였다. 엄마의 눈에는 쓰레기통과 다름없어 보였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서랍은 잡동사니 보물 창고였다. 어른이 되면서 뭔가를 끌어 모으는 증세는 줄어들었지만 가끔씩 작고 사소한 것이 눈에 밟혀 괜한 수고를 할 때가 있다. 


몇 달 전 약속 때문에 홍대입구역 근처에 갔다가 카페에서 이야기를 잘 마무리짓고 집으로 돌아올 때였다. 오랜만에 전철을 탄 까닭에 이리저리 헤매다가 겨우 자리에 앉았다. 서울 나들이가 조금 버거웠던지 피곤이 몰려오길래 음악을 들으며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방을 열고 이어폰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20번쯤 가방을 뒤졌으나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카페에서 약속시간을 기다리며 책 읽을 때 음악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다 듣고 나서 이어폰을 감아두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홍대입구역에서 출발한 전철은 마곡나루를 향해 가고 있었다. 약속 장소였던 홍대 할리스 커피에 전화를 했다. 혹시 카운터에서 내 이어폰을 보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전화를 받은 직원분은 오늘 밤 청소하다가 발견하게 되면 연락을 주겠다며 내게 폰번호를 물었다.


번호를 남기면서 차마 내가 앉아있던 2층 자리를 한번 살펴봐 달라는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바쁜 분들에게 그런 식으로 민폐를 끼칠 수는 없었으니까... 전화를 끊고 나서 '이어폰 하나 그냥 사지 뭐.' 가볍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눈 앞에 '나의 이어폰'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2년 넘게 사용한 이어폰이었다.


나는 물건을 잘 잃어버리지 않을뿐더러 한번 내 손에 들어온 건 어지간해서는 버리지도 않는다. 이어폰이 카페 바닥에서 뒹굴다가 쓰레기통에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집에 가서 내일 아침까지 직원분의 연락을 기다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작년 어느 한 때 딸아이가 새로 산 애플 에어 팟 한쪽을 잃어버리고 울던 모습도 생각났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없어진 에어팟을 끝내 못 찾아 두고두고 속상해하던 아이를 보며 더 열심히 찾았어야 했나 하는 후회도 했었다. 그런 후회가 남지 않으려면 생각났을 때 실천에 옮겨야 했다.


불쌍한 이어폰을 구하러 가야겠다고 결심한 나는 결국 전철에서 내려 다시 반대쪽 전철을 타고 홍대입구역으로 향했다. 가면서도 '나란 인간은 왜 고생을 사서 하는가?'중얼거리며 스스로를 구박해댔다.


몸도 피곤하고 다리도 아프고 얼른 집에 가서 쉬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단지 오래도록 사용했고, 혼자 버려두기 불쌍하다는 이유로 이어폰을 찾아 나선 내가 솔직히 이해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어폰이 카페에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자, 되돌아가는 나의 발걸음이 더욱 미련 맞고 한심해 보였다.


복잡한 홍대입구역에서 떨어뜨렸다면 찾을 가망은 전혀 없었다. 그저 의심이 되는 최초의 지점인 카페로 다시 가보는 것이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것조차 하지 않은 채 집으로 갈 수는 없었다. 이어폰과 나 사이에는 2년이라는 세월이 쌓여 있지 않은가. 이어폰은 몰라도 나는 아는 우리의 추억이 말이다.


카페 2층에 올라가 내가 앉아 있었던 자리를 살폈다. 시간이 지나 이미 다른 남자분이 앉아 있었기 때문에 가까이 가서 뒤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정신 나간 여자로 보일게 뻔했다. 그냥 멀찍이서 몸을 구부려 가며 바닥과 의자를 샅샅이 살펴봤지만 이어폰은 보이지 않았다. 여러 각도에서 보고 또 보다가 결국 남자분이랑 눈까지 마주치고 말았다. 민망함에 몸을 휙 돌려 반대편으로 향했다.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만 했다.


'정녕 이 모든 게 헛고생이란 말인가??? 시간과 에너지와 전철 요금까지 버려가며 도로 왔는데 이게 말이 되나???' 너무 허무해서 그대로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았다.


바로 그때였다!!!!!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근처에서 내 이어폰을 발견했다. ㅜㅜ (너무 반가워서 비명지를 뻔함)


에고고. 세상에나. 네가 왜 거기서 나와?????


헤어진 가족 만난 듯한 느낌을 이어폰한테서 전해받게 될 줄이야.... 

얌전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이어폰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얼른 사진 한장을 찍었다. 반가운 마음에 이어폰을 손에 쥐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다른 사람들의 신발에 밟힌 건 아닌지 물티슈로 깨끗이 닦아준 다음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널 찾으려고 전철 중간에 후다닥 뛰어내렸어.


이어폰을 손에 쥘 수는 있었지만 길바닥에 기운을 쏟고 다닌 탓에 나는 가방을 들 힘조차 없었다. 다시 자리에 앉아 좀 쉬었다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누군가가 그날 하루 있었던 나의 행동을 멀리서 지켜보았다면 '제정신이 맞나? 좀 이상한 여자 아닐까?'라고 의심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어폰을 구출하기까지 한 시간도 넘게 헤매고 다녔던 것 같다. 그냥 없는 셈 치고 새 이어폰을 사거나 집에 있는 다른 이어폰을 쓸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미련이 많은 타입이라 나와 인연 맺은 물건을 찾지 않은 채 내 일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중간에 돌아가지 않았다면 집 근처까지 왔다 해도 서울을 향해 다시 갔을지도 모른다.ㅜㅜ  마음이 한 번에 딱 먹어지지 않아서 몸이 고생이긴 하지만 그냥 나라는 사람은 원래 이런 타입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니 두 번 다시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다시는 이어폰을 주머니 따위에 넣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가방 속에 쏙 집어넣었다.


돌아오는 전철에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이어폰을 구출하는데 기력을 다 써서 밥을 못하겠다고 말했다. 전철역으로 마중 나온 남편과 나는 저녁으로 쌀국수 한 그릇을 사서 반씩 나눠먹었다. 평상시 같으면 혼자서 두 그릇도 먹을 수 있는 쌀국수였지만 입맛이 달아나버려 반만 먹었으니 내겐 그날의 일이 꽤 힘겨웠던 모양이다.


되찾은 이어폰을 사용한지 며칠이나 지났을까? 이어폰 줄이 서서히 벗겨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벗겨질 줄 알았다면 찾으러 가지 말고 내버려 두었어야 하는 것이 여러모로 더 현명한 선택이었을 거다.


그러나 인생이 늘 현명하고 옳은 선택만 하는 건 아니니까, 또 그렇게 야무지게 선택했다고해서 다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니까.... 나는 내 미련맞은 선택에 책임을 지며 테이프를 감아 이어폰줄 수리를 했다.


나의 낡고 늙은 이어폰은 여전히 나와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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