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책상 서랍에서 필요한 물건을 꺼내려는데 잘 열리지 않았다. 가까스로 열어보니 오래전부터 쓰던 일기장과 수첩, 다이어리, 편지지 등이 한데 엉켜 덩어리로 있었다. 꺼내서 일일이 늘어놓고 보니 초등학교 때 쓰던 일기장부터 사춘기 때 쓰던 노트와 대학생, 직장인이 되어 끄적거린 메모들까지 한가득이었다.
2011년부터 일기장 대신 먼슬리 다이어리를 사용하고 있다. 먼슬리 다이어리란 월간 달력 같은 거다. 날짜만 기입이 된 채 빈칸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날그날의 짧은 일기를 쓰며 메워나갈 수 있다. 쓰다 보니 편리하고 분량의 부담도 없어서 매년 새해가 되면 먼슬리 다이어리를 하나씩 사기 시작했다. 그게 올해로 12년째다.
아버지의 일기 수첩에는 한 줄 일기가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처럼 매일 쓰기 위해서는 기록의 과정이 단순하고 쉬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로 세로 3센티미터 밖에 되지 않는 빈칸에 오늘 하루를 단 몇 줄로라도 요약하자는 마음이 일었다. 커다란 노트에 일기를 쓰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야깃거리가 많은 날은 노트 한 페이지를 꽉 채울 수 있을지 몰라도 그다음 날도 쓸거리가 풍성하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럴 경우 백발백중 쓰다 만 일기장이 되어버린다.
나는 내가 얼마나 끈기 없고 인내심 없는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끈기 없고 인내심 없는 사람이 매일의 기록을 남기려면 무엇보다도 부담이 없어야 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일기만큼은 될 수 있는 한 매일 쓰고 싶었다. 아버지가 남겨놓은 일기 수첩을 보면서 더욱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매일 일기를 쓴 이유는 단 하나다. 기록을 해 놓지 않으면 기억을 떠올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기를 쓰지 않은 날의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린다. 떠올리려 해도 떠올릴 수 있는 실마리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루를 요약한 단 한 줄 또는 하루를 대표하는 단어 하나만 있다고 해도 그 옛날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 아무리 시시한 일기나 메모일지라도 매일의 기록이 중요한 까닭이다.
가물거리는 순간들이 생기면 몇 줄 일기를 썼던 먼슬리 다이어리를 펼친다. 아버지의 한 줄 일기 수첩과 같은 역할을 해주는 나만의 일기장을 말이다. 그것을 펼치고 그 날짜에 해당되는 칸을 찾는다.
'앗, 다행이다. 뭔가가 적혀있네.'
그 몇 줄 끄적임이 단서가 되어 잊고 있던 순간과 기억들이 물밀듯 밀려온다.
그러나 그날의 기록이 빈칸으로 남겨져 있다면 어떠한 기억도 떠오르지 않는다. 기억나지 않는 백지상태인 그날에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다. 어떤 기록도 되어 있지 않은 지나간 날은 나에게 있어서 그냥 사라져 버린 날과 같다. 혹은 처음부터 없었던 날과 같다.
하지만 기록되지 않은 그날 나는 무척 아팠을지도 모른다. 힘들거나 괴로웠을지도 모르고, 슬퍼서 많이 울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반대로 즐겁고 행복하고 기뻤을 수도 있다. 그 다양한 감정의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음에도 기억이 나지 않기에 영원히 되새기지 못하고 지나치게 된다.
예전에는 이 빠진 것처럼 군데군데 먼슬리 다이어리의 빈칸을 그대로 내버려 두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정성을 기울이는 편이다. 매일매일 나에게 주어지는 엄지손가락 반만큼의 '빈칸'을 채우려고 몇 줄 일기를 끄적거린다. 하루를 묵묵히 살아가듯 해당되는 날짜의 여백을 나의 손글씨로 채워 본다. 서너 줄 내외의 자잘한 글씨로 하루를 색칠하는 거다. 그날의 사건과 그날의 내 느낌이 가장 중요한 쓸거리가 되어준다.
내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나에게 일기란 숙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책상에 앉아서 일기를 쓰고 있으면 아버지가 오며 가며 칭찬을 해주었다. 공부할 때보다 일기를 쓸 때 아버지의 칭찬이 더 잦았다. 벼락치기 공부는 어쩌다 할 수 있어도 매일의 일기 쓰기는 성실함과 꾸준함 없이는 안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어쩌다 한 번씩 듣게 된 아버지의 칭찬이 좋아서 나는 6학년 졸업할 때까지 일기를 써나갔고 그 후에도 계속 쓰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다.
오래된 일기장을 들춰보다가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초등학교 3학년이던 1979년의 일기에서 멈췄다.
1979년 4월 25일 수요일
제목 : 지우개를 자르고
오늘 아침에 지우개를 잘랐다.
공부를 하는데 틀려 지우는데 자꾸 뿌러졌다.
그래서 잘를때는 가슴이 아프지 않았는데
잘르고 나서 생각을 달리 했다.
지우개가 사람이고 사람이 지우개면
지우개가 날 잘랐을 거란 생각을 했다.
나는 다음부터 지우개를 자르지 않게다고
굳게 굳게 다짐하고 맹세했다.
어렸을 때 내가 일기를 쓰고 엄마에게 내밀면 엄마는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틀린 글자를 찾아주었다. 그런데 이 날은 엄마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 일기를 살펴보지 않았던 거다. 왜냐하면 맞춤법이 많이 틀려 있기 때문이다.
부러졌다 - 뿌러졌다.
자를 때는 - 잘를때는
않겠다고 - 않게다고
이 한 편의 짧은 일기로 지우개를 자르고 나서 마음 아파하며 후회했던 열 살 꼬마의 심정을 알 수 있다. 또 엄마가 바쁘거나 아팠을 거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때의 일이 생생하게 기억나지 않더라도 감정과 상황은 충분히 유추해 볼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나에게 지난 일기의 가치는 충분하다.
집이 망해서 여기저기 이사를 자주 다녔던 시절이 있었다. 아버지는 빈상자와 노끈을 구해와서 집안의 살림살이를 쉴 새 없이 싸고 풀었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불필요한 걸 버려야 조금이라도 일하기가 수월했을 텐데 아버지는 나의 일기장을 한 권도 버리지 않고 간직해 주었다. 그러니 떠나간 아버지의 일기 수첩을 간직하는 것은 내 몫의 일이 되어야 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