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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Oct 09. 2019

언제 어디서 불러도 달려갈게

 


아주 오래전 종로의 어학원에서 공부를 마치고 친구와 전철을 타고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당시 인천행 전철은 국철이라고 불렸는데 말 그대로 지옥철이었다. 출퇴근 시간에는 대부분의 승객들이 앞사람과 뒷사람 사이에 끼어서 오래된 샌드위치 속 풀 죽은 양상추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친구와 나는 많은 사람들로 인해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역마다 사람들을 뱉어내듯 내려놓은 지옥철에는 승객들의 숨통을 조금씩 터줄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생겼다. 그때 멀리 있던 친구가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점점 다가올수록 친구의 새하얗게 질린 얼굴이 또렷이 보였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 너 왜 그래? 왜 이렇게 땀을 흘려?"

내 물음에 친구는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뒤쪽을 향해 계속 눈짓을 하였다. 당시는 지금처럼 성추행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을 때였는데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상한 남자가 친구를 괴롭히려고 하는구나.’

나도 처음 보게 된 일인지라 같이 겁을 집어먹고 벌벌 떨었다.  


그때 우리 옆의 한 여자가 지갑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친구에게 내밀었다. 면도칼이었다. 가로 3센티 정도로 아래 위쪽에 전부 칼날이 달려있었다. 잘못 쥐면 내 손이 먼저 다칠 것처럼 위험해 보였다. 이발소에서나 쓸법한 양쪽 칼날을 지닌 면도칼을 친구는 얼른 받아 손에 쥐었다. 나는 그 면도칼을 보면서도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을 했었다.

 

'면도칼을 손에 넣었다고 우리가 안전할까?'

'저 여자는 면도칼을 왜 가지고 다닐까?'

'면도칼을 항시 들고 다녀야 할 정도로 전철은 위험한 공간인가?'

'얼마나 자주 위험한 일을 겪으면 면도칼을 들고 다니는 걸까?'

'우리한테 면도칼을 주면 본인은 어쩌려고 저러나?'

'여분의 면도칼이 또 있을까?' 등등 궁금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면도칼 하나를 중심으로 세 여자가 모여 있어서였는지 친구를 위협하던 남자는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면도칼 그녀도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하더니 다음 역에서 내렸다. 선물로 면도칼을 남겨준 채. 친구는 그 면도칼을 귀하게 다루며 손끝에 꼭 쥐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을 믿음직스럽게 바라보며 안심했다. 당시는 휴대폰 대신 삐삐가 있을 때여서 각자의 집에 가서 연락을 하자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나보다 전철을 더 오래 타고 가야 하는 그녀가 별 탈 없이 도착하기만을 바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내가 하차한 역은 부평이었는데 집까지는 걸어가도 되는 거리였다. 그러나 밤이 너무 늦었던 까닭에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때였다. 웬 낯선 남자가 다가오더니 자꾸 말을 걸며 추근대기 시작했다. 악몽이었다. 지옥철에서 친구가 겪은 일을 나도 겪으려나 보다 싶으니 온몸에서 진땀이 났다. 남자를 피해서 버스 정류장을 벗어나 길을 걸었는데. 아뿔싸, 그가 내 뒤를 바짝 따라오는 거였다. 소리를 지를 수도 없고 주변의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주변머리도 없던 나는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건넜다. 그리고 미친 듯이 달려서 불이 켜져 있는 약국으로 들어갔다.


밤늦게까지 문을 열어둔 약사님이 그때만큼 감사하게 느껴졌던 적이 없었다. 나는 약사님께 부탁해서 약국 전화로 집에 연락을 했다. 내 사정을 들은 작은 언니는 걱정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비로소 안심을 한 나는 약국 대기 의자에 앉아 언니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잠시 후 밖에서 '빵빵'하며 자동차 경적이 울렸다. 아버지가 나를 데려가기 위해서 차를 몰고 나온 거였다. 아버지는 초저녁 잠이 많아서 저녁 식사 후 9시면 잠자리에 들었는데 내가 처한 상황을 듣고는 한 걸음에 달려 나왔다.


그날 연달아 두 번이나 정체불명 남자들의 위협적인 행동으로 겁을 집어먹었다. 하지만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두고두고 생각하게 된다. 아버지가 그려 놓은 '지하철 성추행' 그림을 봤을 때, 또 성추행범을 피해 지킴이센터 역할을 해주는 약국으로 들어가라는 그림을 만났을 때 30년 전 그날의 기억이 바로 떠올랐다.


아버지가 그리신 지하철 성추행 장면, 칼 든 성추행범 얼굴이 여우처럼 보인다.



딸 셋을 키우는 아버지의 염려스러운 마음이 이 그림 한 장에 다 녹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불안에 떨고 있을 막내딸을 데리러 잠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왔던 아버지의 마음은 세상 모든 딸들을 위하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특히나 딸을 키우는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여성을 향한 위험하고 불의한 일에 맞서서 크게 소리칠 준비를 하겠다'라는 뜻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나를 데리러 나와 주었던 그날 밤. 운전석에 앉아 운전하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계속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항상 지켜 줄 거라는 믿음 덕분에 어리숙하고 나약했던 나는 두렵고 무서워하면서도 세상 밖으로 한 발자국씩 발걸음을 내디디며 살아 나올 수 있었다. 이젠 내가 나의 딸을 든든히 지켜줘야 할 차례인 것 같다. 언제 어디서 불러도 기꺼이 달려 나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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