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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기언 Aug 31. 2022

포켓몬빵은 잘못 없지요.

마흔셋, 책방 알바생입니다만,

1. 드디어 내일이 되었다

역시나 등교 전 수학 교과서를 학교에 두고 온 바람에 숙제를 못한 아이를 다그쳐서 일찍 보낸 날이다.


“가자마자 숙제하고, 그럴 수 있어? 뒤에 서있는 거 아니지?”

“네! 나도 뒤에 서는 거 싫어!”


더 이상의 잔소리는 동네 챙피할 고성만 오갈 뿐 아이나 나에게 불필요하므로 이쯤에서 아이를 보냈다.

그리고 나도 그 정도에서 더 험한 말 끄집어내지 않은 나에게 다행스러움을 느꼈던 것이다.


2. 오늘도 그 편의점 들를까?

뭐 딱히 다른 곳으로 가봤자 포켓몬빵이 있을 리 만무하다.

내가 가는 편의점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도로에 인접한 곳으로 실은 장사가 잘 안 되는 곳이라 그나마 있는 빵을 내가 취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알바를 가기 위해 얼굴에 뭐 좀 찍어 바르는 순간에도 어제의 굴욕스러운 순간을 곱씹었다.

그러나 결론은 ‘아이의 기쁨’을 위해 일단 들러보는 것이었다.

아무리 주인아주머니가 퉁명스럽게 “없어요!”라고 말해도 상처 하나 받지 않은 것처럼 알겠습니다라고 하고 깔끔하게 나올 준비가 되었다.

그리고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맞춰 7부 소매의 티셔츠와 스커트를 입고 집을 나섰다.


3. 편의점이 보인다.

그리고 주인아줌마도 보인다.

카운터 뒤에서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거나 박스를 고이 접어서 가게 앞에 쌓아 놓거나  냉장고 뒤에서 물건을 정리하는 그녀가 오늘은 박스를 정리하는지 밖에서부터 분주한 모습이다.

눈이 살짝 마주친 것 같아서 내 쪽에서부터 아는 척을 해야겠다는 본능에 고개를 까닥거렸다.

그러나 매정하게도 그녀는 가게 안으로 쌩하나 들어가 버렸다.


‘에잇 못봤겠지…못봤으니까 그랬을 거야’


애써 그리 위로를 했다.

그리고 편의점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행여라도 내 앞의 흰색 롱셔츠원피스 여자가 혹시 주인아줌마에세 예약을 걸어놓은 그녀일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을 느끼며.


“안녕하세요!”


주인아주머니가 가게 뒤편 냉장고 뒤에서 일하고 있었다.

인사를 하고 들어간 것은 손님이 왔다는 표시를 위함이었다.


“어서 오세요!”


괜히 냉장고 쪽을 둘러보는 척하며 서성대던 내게 주인아줌마는 기계적인 인사를 하였다


“포켓몬빵 왔어요?”


냉장고에는 당연히 포켓몬빵이 없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카운터 쪽으로 오면서


“없는데? 요새 늦게 와~ 아직 없어”

“아… 그렇구나…. 그럼 이따 다시 올까요?”


트럭이 11시 정도에 오는 걸 알고 갔는데 요새 그보다 늦게 온다는 정보를 흘려주셨다.


“저…이 건물 2층에 책방에서 왔어요.”

“아! 그 책방? 그래? 암튼 이따 다시 와봐요! 어제도 그냥 갔지? 빵이 안 왔어… 요새 늦게 와”


4. 우리 책방 사장님이 오픈하고 떡도 돌리고 아이들 간식도 자주 사면서 편의점 사장님과 쌓은 인덕이 아주 두터운 덕을 본의 아니게 , 아니 의도적으로 봤다.

나는 책방의 사장도 아닌데 책방을 팔아서 편의점 사장님과 하나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냈다.

순전히 포켓몬빵을 위하여.


“네…2층에 그 책방^^”

“요새 이상하게 빵이 늦게 오네… 어제도 왔었지? 너무 일찍 왔어. 이따가 다시 들러봐요”


하아…

주인아주머니는 어제의 나를 기억하고 있었고 내가 들를 때마다 내가 마스크를 쓰고 무슨 옷을 입고 입든 간에 나를 분간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제의 나는 빵이 있어도 감춰두고 내게만 안주는 파렴치한 편의점 주인으로 그녀를 치부하고 자존심을 혼자서 뭉개고 있었다.

그러나 실상은 매사 부정적으로 보고 제멋대로 상상해버리는 내 오랜 습관에서 온 마음의 지옥에 불과했던 것이다.


책방 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고 바닥의 먼지들을 대충 쓰레받기로 쓸고는 도롯가에 하얀 트럭이 와있는지 확인하러 유리창에 바싹 붙어 내다보았다.

아직은 없다.

뭔가 커피를 내리고 책을 읽으며 정서적 안정감을 가져야 할 텐데 언제 납품 트럭이 올지 몰라 안절부절못한다.

한 20분 지났나?

편의점 앞에 물건 납품용 네이비색 바구니 두 개가 포개어져 놓여 있음을 보고는 얼른 가게 문을 잠그고 쏜살같이 뛰어 내려갔다.


‘헛참… 나이 마흔 넘어서 뜀박질이 고작 포켓몬빵 때문이야…?’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짧게 든 생각은 개나 줘보려!


“빵 왔어요?!”


나를 잠시 바라보던 주인아줌마는 카운터 뒤로 가더니


“오늘도 하나 들어왔어. 하나 두 개 이상은 안 들어와”


라며 우리 아이가 젤 좋아하는 포켓몬 샌드위치 빵을 내밀었다.

계산을 하기 전 잽싸게 카운터 앞에 유통기한 임박해서 꾸러미로 모아 파는 과자 봉다리들을 잡아들었다.


“얘네도 같이요”


뭔가를 되게 간절히 원하면 상대방이 원하는 뭔가를 내줘야 하거나 내 위치를 슬며시 내비쳐야 할 것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잘난 부모를 둔 자식들이 슬며시 자소서에 부모에 대해 글적거리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나 자신으로는 안될 것 같으니까 배경을 잡아끌어서라도 용쓰는 몸부림이랄까.


나는 우리 책방을 팔아서 포켓몬빵을 획득한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맛있게 빵을 먹고 띠부실을 펼쳐 보이며 좋은 거 뽑았다고 기뻐했으니 그걸로 다 된 것 같다.



2022. 엄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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