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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기언 Oct 27. 2022

땅 보고 걷다 돈 줍기

마흔셋, 책방 알바생입니다만

고양이에게 간식을 주다가 실수로 하나를 떨어뜨렸다

곧장 줍지 않았다

하릴없이 하루 종일 먹고 자고 하는 아이가 어느  돌아다니발견해 먹길 바래서다

심심한 고양이에게 이보다 더 아싸 기분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와 집에 오는 길에 땅을 보며 걷다 우연히 100원을 주웠다

곧장 사 먹지 않고 집에 가져가서 공으로 얻은 그 돈을 가지고 뭐할까 며칠을 고민했다

100원을 가지고 할 건 많지도 적지도 않았다

과자는 새우깡을 사는 게 양이 많은 거였고

새콤달콤 체리맛을 사는 게 젤 좋아 보였다.

결국 새콤달콤을 사서 친구에게 2개 주고 나머지 5개는 이틀에 걸쳐 녹여 먹었다


얼마 후 함께 집에 가던 길에 친구가 길에서 500원을 주웠다.

우리에겐 너무나 큰 액수였다.

친구가 딴맘을 먹기 전에 아파트 상가에 있는 샤론 슈퍼로 데려가 나 200원어치 과자와 사탕을 사게 했다.

어리둥절하지만 돈을 주운 친구는 내 말대로 500원을 그 자리에서 다 쓰고 양손엔 과자 두 봉지를 들고 집으로 갔다.


다음날 친구는 지나가는 말로 500원을 홀랑 다 쓰게 만든 나랑 놀지 말라는 한 살 위 언니의 분노를 전달했다. 그 언니는 우리가 늘 무서워했던 괴팍한 성격의 언니라서 혹시 학교에서라도 마주치면 복도 끝에서부터 획 돌아오던 길을 다시 가기도 했었다.

그런 언니가 나에게 분노를 품었다니 그보다 더 오금이 저릴 수가 없었다.

동생이 주운 돈을 본인의 허락 없이 과자 몇 개로 둔갑시킨 죄인이 된 것으로 나는 학교에서건 동네에서건 언니의 눈에 띄면 안 되는 처지에 놓였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땅만 보며 하교하는 습관을 가지게 됐다.

언제 지폐를 주울 지 모르는 가능성을 위해…

바람에 나부끼는 낙엽만 봐도 혹시 5000원짜리인가 뽀로로 달려가서 확인해보고 아이들이 버린 콘 아이스크림 쓰레기가 떨어져 있어도 돈인가 싶어 확인하곤 했다.

그런 나를 보는 내 친구는 늘 내게 물었다.


“돈 주으면 뭐 살라고 그리 보고 다니냐?”


딱히 살 건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돈 자체가 귀한 시절이었고, 집에 오는 손님들이 인사치레로 쥐어주는 돈이 용돈의 전부였다.

모아지는 돈의 규모에 따라 뭘 살지 결정하는 타입이었기에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저축이란 건 없었다.


“몰라. 그냥 네가 500원 주웠응께 인제 나는 1000원 주울 차롄갑다 하는거여”


10살 소녀들의 전라도식 대화는 이런 식으로 주고받다가 길가에 꽃이라도 발견하면 기어이 꽃을 보러 가고 또 휴지가 나부끼면 돈인가 싶어 달려가서 확인하고 다시 길을 가는 패턴이었다.


결국 그토록 바라던 지폐는 땅에서 얻지 못했다.




아이가 저만치서 걸어오는 게 보인다.

책방의 시야는 교묘하게 비틀어진 각도로 인해 200도 이상은 좌우가 확트여 다 보이므로 어느 길에서 누가 오는지 굳이 몸을 비틀지 않아도 한눈에 다 볼 수 있다.

잠시 책방에서 숙제시키고 간식 좀 먹일 요량으로 아이에게 오랬더니 신이 나서 달려오다 걷다 하는 중이다.

그러다 빈 깡통을 만나면 어김없이 툭 차고 깡통이 굴러간 곳으로 가서 또 차면서 온다.

그러다 땅에서 뭔가를 주운 모양이다.

카드 같은 건데 아이가 한참을 보더니 표정이 밝아지며 냅따 뛰어 책방으로 한달음에 달려오는 게 보인다.


“엄마! 나 포켓몬 카드 주웠어요! 완전 센 건데!!! “


출입문을 열기가 무섭게 아이는 벌게진 얼굴로 한 손엔 포켓몬 카드를 쥐고 뛰어 들어왔다.


“응 엄마도 봤어. 누가 흘린 모양이네”


아이는 시시한 게 아니라 진짜 센 애라며 누가 흘렸을까? 중얼거리며 카드 한 장 가지고 한참을 들떠서 떠들어대며 간식을 먹고 학원에 갈 채비를 했다.


“엄마! 나 이제부터 땅만 보고 걸을래요!”


“응?? 뭐???”


“땅 보고 걸으니까 좋은 일이 생기는 것 같아”


“그러다 앞에 오는 사람이랑 부딪히고 위험해. 똑바로 앞을 보고 걷는 거야. 알았지? 땅만 보고 다니면 안 돼!”


정말 걱정되는 마음에 잔소리를 하며 아이를 배웅했지만 왠지 쓸데없는 말을 한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책방에서 내려다보이는 아이는 역시나 거리 이곳저곳을 내려다보며 앞에서 자전거가 오는지, 개를 끌고 산책시키는 사람이 오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정말 땅만 보고 걷고 있었다.

한번 땅에서 횡재한 운을 또 거머쥐어 보겠다고 선택한 땅 보고 걷기가 대를 이어 갈 줄 누가 알았겠나?


며칠 저러다 말겠지 싶어 그냥 못 본 척하기로 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2022. 10.26 엄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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