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기언 Aug 31. 2022

그깟 포켓몬빵이 아니라서…

마흔셋, 책방 알바생입니다만,

 1. 등교하는 아이를 다그치지 않기란 마음속에 부처를 모시지 않는 이상 불가능에 가깝다.

아이에게 화를 내지 말라고 법륜스님이 말씀하셨다.

세상 금쪽이의 성모 마리아 같은 존재인 오은영 박사도 그리 말씀하셨다.

그러나 갱년기에 가까워지는 나이에 대적하는 사춘기 중심에 들어서는 아이와 마주치면 일단 서로 화부터 난다. 이게 현실이라 생각한다.


'빨리 밥먹어라'

'빨리 씻고 옷 입어라'

'양말은?'

'로션 발랐니?'


이제 신발을 신고 나가려는 찰라에 가방을 덜 싸서 가방입이 헤벌쭉 벌어져 있는 꼴을 보면 피가 거꾸로 솟다가 급기야 입으로 온갖 시궁창 냄새나는 두꺼비같은 말들이 튀어나온다.

재빨리 입을 틀어막았으면 됐을걸.

내가 그냥 튀어나오려는 더러운 말들을 꿀꺽 도로 삼키면 됐을걸.

그게 안돼서 잔뜩 찌뿌린 표정으로 아이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아이가 현관문을 닫기도 전에 중문을 닫아버리며 고양이를 안고 거실로 가버린다.

그모습을 보는 아이의 상실감과 허탈감을 충분히 예상하면서도.


2. 그렇게 아이를 보내고 나면 마음이 쓰이는 쪽은 일방적으로 화를 내고 못된 말로 상채기를 낸 나 자신이다.

그래서 주방 창문밖을 내다보며 아이가 등교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같이 가는 친구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혼자 고개를 숙이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미안하고 안쓰러운 감정이 차올라 내 자신을 자책하기 시작한다.


'나같은 것도 애미라고....'


서로 핏대를 세우며 말싸움을 하거나, 일방적으로 내게 꾸지람을 듣고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고서 늘 먼저 다가와 준 쪽은 다름아닌 아이다.

아이는 항상 엄마의 기분을 살폈고 엄마가 자기를 용서해 주기를 바랐으며 미소짓기를 바랬다.

잔뜩 화가 나 분이 풀리지 않는 내 앞에 다가와


'엄마 안아주세요. 엄마 미안해요'


라며 두팔을 벌리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측은한 마음이 들다가도 이렇게 쉽게 화난 상황을 무마시키려는 아이가 미워서 애써 외면하기도, 모진말로 밀어내기도했다.

생각해보면 내 뱃속에서 나온 이 아이가 남편도 아닌데 아이가 모든 상황을 어른의 세계처럼 풀어나가길 기대했던 것이다.

내게 듣기 힘든 말을 들어도 묵묵히 참고 들어주는 이 아이가 변함없이 엄마라는 존재로서 사랑해주는 영광을 알지도 못한 채 아이의 사랑을 만만하게 여겼다.


3. 오전에 알바생으로 나가는 동네책방 상가 1층에 24시편의점이 하나 있다.

여름 방학 동안 아이를 데리고 출근을 했기에 책방에서 책을 읽다가 심심하면 밖으로 나가 사람구경을 하던 아이가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뛰어 들어왔다.


"엄마! 여기 1층에 편의점 알지? 거기 지금 포켓몬빵이 들어왔어!"


딱히 포켓몬빵을 사달라거나, 빵 안의 띠부실을 모은다거나 하지도 않던 아이는 왠일로 포켓몬빵을 사야겠다며 보챘다.

사실 다른 아이들처럼 이런 사소한 마케팅 홍보놀음에 아이도 동참했으면 하는 마음이 내심 있었던 터라 나는 얼른 카드를 내어주며 있는 대로 다 사오라고 했다.

아이는 헐레벌떡 뛰어내려가 '대망의 포켓몬빵'을 두개나 획득하여 의기양양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렇게 좋아? 하나는 너 먹고 하나는 친구 줄까?"

"내가 이 빵을 직접 샀다는 게 좋아!"


포켓몬빵을 사려고 땡볕에 편의점 앞에 열댓 명의 어린 아이들이 줄 서 있는 모습을 보며 아이와 나는 굳이 저렇게까지 사야하는지 하는 대화를 했었다.

그리고 나는 아이가 전혀 이런 놀음같은 포켓몬빵 모으기에 관심 없다고 생각했고 한 편으로는 이 아이도 저 무리에 끼어 천진난만하게 빵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스러움을 보여주길 바랬다.

여하튼 아이는 이 날 이후로 매일 비슷한 시간에 포켓몬빵을 사러 편의점으로 갔고 거의 매일 하나씩 사왔다.



4. 오늘 아침에도 역시나 아이에게 한바탕 퍼붓고 쫓아내듯 등교시켰다.

어린 아이가 그깟 숙제 한번 놓칠 수 있는데, 나도 어릴 때 교과서 안가져가서 옆반에 빌리러 다니고 그랬으면서 왜 내아이에게만은 그런 실수가 용납이 안되는지...

아이를 보내고 알바하러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르기로 했다.

그 시간에 포켓몬빵을 납품하는 트럭이 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고 멀리 길가에 하얀색 납품트럭이 세워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아이에게 마음의 상채기를 주고는 포켓몬빵을 쓱 내밀어 상처에 밴드라도 붙여줄 심산이었다.

편의점문에는 '포켓몬빵 안팝니다'라고 A4용지에 굵은 글씨로 써서 붙여놨지만 그건 이미 몇달 전부터 붙여져 있었지 몇달 내내 빵이 들어오는 건 아는 사람은 알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포켓몬빵 있어요?"


한달 내내 아이와 번갈아가며 매일 아침을 드나들며 빵을 사가는 내 얼굴을 주인이 모를리 없었다.

아니 그제도 가벼운 사담을 나누며 하나 있다고 했었다.

어제는 막 납품받은 빵 두개를 진열하기도 전에 두 개 다 사려고 하자 하나는 예약되어 있다며 하나만 가져가라고 하셨다.


"없어요!"


주인은 늘 포켓몬빵을 카운터 왼쪽 구석에 숨겨놓고 있거나 컵케익으로 된 것은 크림이 녹아서 어쩔 수 없이 냉장고에 비치해 놓는다.

내게 냉정하게 없다고 말하며 카운터 왼쪽으로 눈이 향하는 걸 보면서 거기에 정확히 그곳에 빵이 놓여져 있음을 직감했다.

뭔가 기분이 이상스럽게 나빴지만 그냥 알겠다고 하고 나왔다.


'참내, 있으면서 없다고 뻥을 치네. 진짜 드러워서 진짜!'


책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밟으면서 자존심이 밟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진짜 없는데 내가 그냥 넘겨짚고 이러는 건가.


무엇보다 아이에게 웃음을 주며 내가 준 상처를 메꿀 수 있는 빵을 구하지 못해 화가 났다.

난 참 화가 많은 여자로군.

그냥 애초에 아이에게 친절한 엄마였다면 될 것을 그깟 포켓몬빵 하나 구하지 못했다고 이럴인인가!


'내가 포켓몬빵만 딱 사고 다른 물건을 안사서 저러는 걸까?'

'그동안 주인 아줌마 하소연도 맞장구 쳐주며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나만의 착각인가?'

'혹시 내 얼굴을 마스크때문에 못알아보신건가?'

'다른 예약자는 도대체 어떻게 주인 아줌마를 구워삶은걸까?'


오전 내내 이런 생각이 맴돌았다.


그러나 이내 결심했다.

내일 또 가기로.

포켓몬빵이 아이와 나 사이에서 기쁨을 유도하는 유일한 것이라면 그것은 세상에서 제일 값진 보석이나 다름없으므로.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캐릭터빵 사는 열혈엄마모드로 전환 ON.


2022.08.31 엄기.언

이전 09화 나도 7만 원짜리 티켓쯤이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