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기언 Sep 06. 2022

나도 7만 원짜리 티켓쯤이야…

마흔셋, 책방 알바생입니다만,


1. 그림 보는 걸 좋아한다.

그림이 뭔 줄 알아야만 전시회를 다니고 그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 아니기에 무작정 구미에 당기는 그림이 걸려있는 전시장이나 갤러리를 찾아다니곤 한다.

주로 혼자 다니다가 아이를 데리고 다니다가 지인들과 함께 다니곤 한다.

티켓값은 혼자 혹은 둘일 때 되도록 3만 원이 넘지 않도록 하는 편이다.

예술의 전당 같은 경우는 커피랑 빵값 그리고 주차비용까지 추가되기 때문에 5만 원은 훌쩍 쓰고 오는 것 같다.

그래서 가급적 할인이 되는 카드가 있는지, 얼리버드 티켓이 있는지 확인하는 게 순서이다.


2. "전 세계 주요 예술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글로벌 아트 페어 프리즈 서울(Freize Seoul)이 지난 주말에 열렸다."

나도 알고 있었다.

책방에서 주중에 열리는 함께 글 쓰는 모임에 참여하는 분 중 한 분이 다름 아닌 프리즈와 함께 열리는 키아프(Kiaf)에 초대된 유명 작가분이셨다.

수수한 모습의 나와 다름없는 아이 엄마인 줄만 알았던 그녀가 동서양의 미술 화법을 넘나들며 불과 몇 달 전까지 생활했던 캘리포니아에서의 생활을 중심으로 몽환적인 그림을 그려내는 엄청난 에너지의 예술인이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작품보다도 그녀가 수줍게 써 내려간 몇 줄의 글을 낭독했을 때 느낀 충격이 더 압도적이었다.

그림을 잘 그려내는 사람은 글솜씨는 그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가 속된 말로 얼탱이 없는 충격을 받은 것이다.

무덤덤하게 써 내려간 그녀의 글에서 드라마처럼 화면이 생생하게 그려졌고 그녀가 그 당시 느꼈을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받은 느낌을 받은 글.

그리고 곧바로 나는 내 글이 초라하고 부끄러운 휴지조각 속 검정색 점들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10년을 기다렸다고 했다. 전시회에 부스 하나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전 세계 예술인이라면 월드컵 출전이 꿈인 축구선수들보다 더 한 인지도와 명성을 쌓아야만 그 작은 부스 하나를 거머쥘 수 있는 것이었다.


"꼭 가볼게요. 실제로 그림 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진심이었다.

내가 사는 세상엔 키아프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이 9할이었으므로, 사실 나도 그것이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 퀄리티인지, 대단함인지 몰랐기에 티켓값에 대한 생각도 안 하고 그저 좋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전시회가 열리는 코엑스까지 차를 타고 갈 것인지, 지하철을 탈 것인지를 잠시 고민했었다.


- 키아프랑 프리즈랑 둘 다 볼 수 있는 기회야.


라며 책방 사장님이 티켓을 구매할 수 있는 링크를 보내주셨다.

가격을 보니 55,000원.

남편과 함께 갈 생각을 했다.

나보다 더 그림을 좋아하고, 그림 솜씨도 뛰어난 그가 요새 들어 스트레스에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며 함께 보러 갈 생각을 했었다.

55,000원짜리 2장이면 110,000원.

선뜻 결제하기 힘든 금액이었다.

이번 달 대출이자와 원금으로 나가는 것에 생활비까지 숨이 허덕거리는 요즘이다.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 요구르트 하나 사는 것조차 한 번 더 생각한다는 남편은 45,000원짜리 전자담배 한 보루는 껌 한 통 사듯 산다.

일단 급하게 두장을 미리 사놓지 않고 남편에게 함께 글 쓰는 작가님들에 대해 계속 자랑을 하며 키아프에 대해 관심 있는지 찔러보았다.


"음... 얼만데?"


3. 남편이 드디어 반응을 보였다.

언제, 어디에서 전시가 열리는지 보다 티켓값이 얼마인지가 더 궁금한 사람.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이번 달 보릿고개를 어떻게 넘길지가 더 신경이 쓰일 테지.

나는 책방 사장님이 보내준 링크를 다시 열어 티켓값을 확인했다.


'7만 원/인당'


뭐지, 그새 가격이 오른 건가.

아... 이게 진짜 가격이구나.

그럼 둘이 합해 14만 원.


"당신 혼자 가요"


남편은 몇 날 며칠 키아프, 프리즈 어쩌고 하면서 비바람 부는 날씨에 자꾸 나가자고 하는 마누라에게 체념하듯 말했다.

5만 5천 원과 7만 원의 어감이 주는 차이는 상당했다.

대번에 못 갈 전시회라는 체념이 가슴으로 훅 치고 들어오는 불길한 7만 원이다.

연극도 아니고, 뮤지컬도 아닌데 이렇게 고가인 데에는 필시 이유가 있었다.


"아니, 나도 안 갈래. 그럼..."


무심코 연 인스타그램에는 여기저기서 벌써 작품 앞에서 멋들어지게 포즈 잡고 찍은 사진들이 올라와 있었다.

어떤 인플루언서가 프리즈에 대한 혹평을 써놓은 것을 맨 먼저 본 것이 다행이었다.

생각보다 구성이 알차지 않고 오히려 K-아트에 대한 위상을 비교적 더 크게 느꼈다는 그녀의 글 속에서 쓰지 않은 티켓값 7만 원이 더욱 굳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피드는 오리지널 원작에 목마른 대중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대부분의 작품들이 첫날부터 완판행진을 이룬다는 것이 팩트였다.


함께 글을 쓰는 작가님의 인스타그램에 가보았다.

나도 꽃다발 하나 만들어서 남편과 함께 팔짱 끼고 방문하고 싶었던 그녀의 부스엔 세련되고 카리스마 넘치는 패션으로 무장한 예술인 그녀가 방문하는 손님들과 활짝 웃고 있었다.

글 쓰러 올 때와는 사뭇 다른 전문가 느낌 술술 풍기는 그녀의 아우라와 이전에 들려준 글이 오버랩되며 그녀야말로 '본 투 비 예술인'인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나처럼 구구절절 길게 쓰지도 않는데 뇌리 깊이 박히는 그녀의 다른 글들이 궁금하기도 했다.


4. 프리즈가 끝났다.

나는 결국 주말 내내 동네에서 한 발자국도 안 나가고 하루 종일 내리는 비를 보다가, 잠깐 비가 멈추면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다시 비가 오면 창문을 닫았다가 하는 일상을 보냈다.

그러나 가슴 한편엔 이상한 쓰라림이 느껴져 머리까지 타고 올라옴을 느꼈다.

38억짜리 작품이 팔렸다는 매체의 글을 읽으며 세상엔 사방 벽 하나만 한 그림을 척척 사들일만한 부자들이 넘쳐나는 것에 대한 이질감을 느꼈다.


전시회를 다녀온 사장님이 찍어온 사진을 스마트폰을 통해 구경했다.

헉! 교과서에서나 보던 그림들이 한국에 왔었다.

그걸 또 누군가 샀단다.

우리나라에는 이건희만큼 오리지널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실감했다.


3일간, 나는 7만 원에 벌벌 떠느라, 4만 5천 원어치 전자담배를 피우는 남편 눈치 보느라 예술에 대한 갈증을 애써 삼키며 알 수 없는 우울감을 느꼈다.

지난 3일의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테지.

나는 그렇게 애써 붙잡지 않은 그 순간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을 억누르며 예정되지 않은 다음을 기약한다.


이전 08화 에피쿠로스처럼 늙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