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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랑비탈 Mar 04. 2023

6. 본래적인 삶과 비본래적인 삶

선과 나무의 홈스쿨링


“너무 순진해서 눈물이 납니다.”     


선의 초등학교 1학년 통지표에 담임선생님이 남긴 글이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2학년 2학기부터 선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선을 바라보는 친구들의 눈빛에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선이 달라지지 않으면 악의를 가진 친구들―선은 그들의 눈빛에서 (본능적인 감각으로) 나쁜 의도를 읽었다―의 먹잇감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만만하게 보이거나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 치밀한 방어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진한 본성대로 행동한다면 나쁜 의도를 가진 친구들에 의해 바보취급을 받기 십상인 것이다.     


그때부터 선은 영리하게 행동했다.

본래의 나를 숨기고 복잡한 정치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선은 선천적인 호기심으로 타인에 대한 개방성은 높은 편이지만 많은 친구들과 폭넓게 사귀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독립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유를 침해받지 않는 선에서 소수의 친구들과 깊이 있게 교류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많은 친구들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학교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많은 친구들과 부지런히 우호적인 관계를 쌓지 않는다면, 그 친구들이 오히려 나쁜 의도를 가진 친구들과 한 패가 되어 나를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애써 많은 친구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의 소모는 선의 삶에서 억울한 것이었지만(그 에너지의 소모는 내향적인 기질을 가진 선에게 큰 손실이었다. 선은 그 에너지를 다른 곳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 시간을 견디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다행히 선은 집안 형편도 좋은 데다 성적도 좋아서―이것은 장점으로 작용했다― 친구들을 만드는데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다.

두터운 친구 관계는 나쁜 친구들이 선을 함부로 할 수 없는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더 큰 이유가 있다면 촌지 때문에 선생님들의 강력한 보호를 받은 것이다.

우등생들의 엄마들은 대부분 정기적으로 선생님에게 촌지를 드렸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한 명만 빼고(그 아이는 늘 1등이었다) 다 그렇게 했다.

학기 초와 봄 소풍, 학기 말, 운동회, 학년 말, 그리고 학교의 행사가 있을 때마다.


                                           



선의 엄마는 아침마다 학교에 가는 선을 붙들고 엄격한 얼굴로 말했다.     


“너는 부반장이니까 다른 아이들의 모범이 돼야 하는 거야!”     


그 말을 듣고 있는 선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때, 선은 행복을 포기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6년 동안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인 부반장이었지만 행복한 적은 없었다.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 생각대로 말할 수도 없고, 내 생각대로 행동할 수도 없었다.      


선은 생각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언제까지 이렇게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살아야 하는 걸까?

나는 없고, 보여 지는 나만 있는 삶.

그 시절에 대해 선은 ‘나는 나를 버렸다’고 일기에 썼다.     


나는 나를 버렸어.

나는 나를 잃어버렸어. 나의 본성을.

마음속에 숨겨 놓았던 나의 본성은 점점 작아지고 있어.

내가 나를 돌보지 못하는 동안 ‘나’는 이제 영원히 사라지게 될지도 몰라.

어른들은 공부를 잘하고, 상을 타고, 선생님의 칭찬을 받고, 학교의 임원이 되는 것만 좋아해.

나의 행복은 어른들에게 중요하지 않아.

어른들이 좋아하는 걸, 나의 행복이라고 말하고 있어.

그렇지만 나는 그걸 거부할 수 없어!

나는 갇혀 있는 거야! 쇼윈도 속에 갇혀 있는 거야.

사람들이 바라보는 쇼윈도 속에.

누가 날 여기에 가두었을까?

내 허락도 없이 말이야!     

                                          



추석 연휴 다음 날(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추석 다음 날인지, 추석 연휴 다음 날인지, 70년대에 추석 연휴가 있었을까?) 초등학교 4학년 교실, 선은 엄마가 고급 의상실에서 추석빔으로 맞춰준 옷을 입고 있었다.

리틀 엔젤스가 입은 옷처럼 망토가 귀엽게 들어간 빨간색 정장이었다.      

선생님은 교무회의에 들어가고, 교실은 떠들썩했다.

선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예쁜 옷을 입고 있었지만 외로웠다.      

그때, 갑자기 괴로움 같은, (이상한) 고통이 몰려왔다.


선은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있었지만 친구들과 동 떨어진 다른 세계에 앉아 있었다.

혼자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고통,

아마 ‘고독’에 대한 첫 인지였을 것이다.

낯설고 두려웠던, 그 경험 속의 선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다.

고급스럽게 차려입은 옷차림과 비교되는, 아무것도 아닌 (자아의) 모습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있는 선을 누군가가 바라보면서 계속 손가락질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선은 직감했다.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상, 또 다른 (선의) 현실이 있다는 것을.

지금 선이 살고 있는 세상보다 더 중요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아무리 부유한 환경 속에 있더라도 그것만으로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친구들이 떠드는 모습이 다른 세상처럼 보였다.

음소거가 된 화면 속에 갇힌, 바보들의 세상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겹쳐지는 두 개의 세상이 기괴하게 느껴졌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두 개의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이 선은 몹시 낯설고 무섭게 느껴졌다.     

                                          



선이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은 것은―자신을 추스르기 시작한 것은―아이러니하게 학교를 그만둔 이후였다(사람을 어떤 시스템 속에 오랜 시간, 일방적으로 묶어두는 것은 사람의 정신을 갉아먹는 행위 같았다. 학교란 어른들이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방치하는 시스템이 아닐까?).

주변 사람들이 선에 대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개를 돌렸을 때, 선은 독서라는 보물지도를 통해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기 시작한 것이다.

혼자 일어나 걷기 시작한 것이다.


독서와 긴 사유의 시간.

선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말하는 벙어리’라고 불렸지만 조금씩 체온이 따뜻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자유로부터 수혈받은 피가 선의 몸에서 돌기 시작했다.


가공의 세계에서 해방된, 나만의 고유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다시 삶을 시작하는 시간, 비로소 희망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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