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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랑비탈 Apr 08. 2023

12. 지금, 애를 데리고 뭐 하는 짓이에요?

선과 나무의 홈스쿨링

        

나무가 열네 살이 되기 전, 선은 나무에게 물었다.     


“홈스쿨링을 계속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중학교에 가는 게 좋을까?”     


나무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거 같더니, 금방 입을 열었다.     


“학교생활도 궁금하지만 나는 홈스쿨링의 장점을 놓치고 싶지 않아!”     


“그럼 중학교까지만 홈스쿨링을 하고, 학교생활을 안 해보면 그것도 섭섭하니까 고등학교는 갈까?     


“그래! 그게 좋겠다!”     


아이는 홈스쿨링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 중에 선과 나무의 선택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전직 고위 공무원으로 동네에서 존경받고 있는 어른은 지나가는 선을 붙들고 노기 띤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애를 데리고 뭐 하는 짓이에요?”     


마치 선이 크게 잘못한 것처럼,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리고 인사만 하고 지내는 동네 사람들 중에서도 선에게 눈을 부릅뜨고 똑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또 집안의 먼 친척뻘인 강 선생님의 반응은 더 어이없었다.

강 선생님은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연극 교실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처음 홈스쿨링을 시작할 때, 선은 남편에게 말했다.     


“나무를 강 선생님 학원에 보낼까? 연극 교실 프로그램에 희곡 쓰기도 있으니까 사고력이나 글쓰기 공부도 되고, 또 연극을 해보는 것도 나무한테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그래, 좋은 생각이야! 강 선생님 학원에 보내면 강 선생님이 조카처럼 얼마나 잘 보살펴 주겠어?”     


그러나 두 사람의 생각은 보기 좋게 어긋났다.

연극 교실에서 발표회를 한다고 했을 때, 선은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와 함께 케이크 전문점에서 산 롤 케이크와 음료수를 들고 갔다.

그런데 아이들의 공연이 끝났을 때, 모르는 엄마가 선이 강 선생님 책상 위에 올려놓은 케이크와 음료수를 들고 가서, 마치 자기가 사 온 것처럼 테이블 위에 세팅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강 선생님이 웃으면서 말했다.     


“은호 어머님이 이런 것도 다 준비해 주시고, 바쁘실 텐데 이렇게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선에게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그러고 서 있지 말고 나무 엄마도 좀 도와요! 빈손으로 왔으면 이런 거라도 좀 도와야지!”     


선은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면 모두가 난처해지는 상황이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이 서 있었다.

강 선생님이 교실은 나간 사이, 선의 친구가 은호 엄마에게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케이크하고 음료수는 이 엄마가 사 온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은호 엄마는 몹시 바쁜 사람처럼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작은 목소리로 “예” 하고 대답을 하더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아이들의 음료수에 일일이 빨대까지 꽂아주고 있었다.

아이들이 케이크를 먹고 음료수를 들고나갔을 때, 선을 따라온 친구가 강 선생님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나무는 잘하지요?”     


강 선생님은 플라스틱 포크로 케이크를 집으면서 누구 하고도 눈도 안 맞추고 혼자 웃으면서 말했다.


“갸가 잘 하긴 하는데, 애가 뭔 말이 그렇게 많은지…… 그냥 하라는 대로 하면 될 걸 ……하여튼 문제야! 아는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고……, 그게 문제라니까! 애들은 자고로 학교에 가야 되는데, 학교가 괜히 있는 게 아녀! 그래서 애들은 학교에 다녀야 돼!”     


선이 친하게 지내는 지인과 강 선생님과 함께 밥을 먹는 자리였다(지인은 강 선생님과 같은 극단에서 활동한 적이 있었다).

지인이 말했다.     


“요즘 아이들이 학원에 그렇게 많이 다니는데 오히려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업 성취도는 떨어진다네. 또 유학을 갔다 온 아이들은 영어는 잘하는데 국어, 사회, 도덕 같은 과목에서는 점수가 안 나온데!”     


“독서가 부족해서 그래요. 어렸을 때부터 배경 학습이 충분히 되어 있어야 하는 건데……”     


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 선생님이 테이블 위에 놓인 메밀 전을 젓가락으로 찢으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수준 높은 책을 읽어도 학교에 안 다니는 애들은 문제가 있어! 문제가!”     


그러면서 찢어놓은 메밀 전 하나를 입에 넣고, 신이 난 얼굴로 웃으면서 나무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나무야! 엄마 눈치 보지 말고 선생님 얼굴 보면서 말해봐! 너, 솔직히 학교에 가고 싶지? 학교에 가고 싶은데 엄마 때문에 못 가는 거지?”     


이게 무슨 짓일까?

벌써 선이 보고 있는 데서만 두 번째였다.

나무는 자기에게 얼굴을 바짝 디밀고 말하는 강 선생님이 난처한 듯, 강 선생님을 바라보며 가만히 웃고 있었다.

선이 말했다.     


“나무는 사실 안 그런데,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오히려 곤혹스럽다니까요!”     


선과 같이 있는 지인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그래, 편견도 문제야. 본인은 안 그런데 주변에서 자꾸 내 생각으로 남을 판단하는 게!”     


그 시기에 나무는 일주일에 세 번, 대학교 부설 영어 교육원에도 다니고 있었다.

영어 교육원에서는 단짝 친구도 만들고 선생님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한국인 선생님들도 나무를 귀여워했지만 특히 영국인 교수인 타미는 나무와의 관계를 소중한 관계로 생각하고 있었다.

나무가 수업 중에 경제 동화를 읽은 얘기를 꺼내자, 타미는 집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면서 일요일에 전화를 하면 외국여행을 하면서 모은 동전을 몽땅 나무에게 주겠다고 제안했다.

동전을 갖고 싶은 욕심에 타미에게 전화를 한 나무는 어느 날, 여러 나라의 동전한 뭉치를 집에 들고 와 타미가 “우리는 친구래!”라고 말했다.

그 후로도 타미는 종종 나무에게 “우리는 친구야”라고 말해 주었다.


타미 선생님은 나무가 어린아이였지만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면서 나무와의 대화를 즐거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먼 친척인 강 선생님은 오히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과 나무의 의지를 꺾고 있었다.

강 선생님에게는 나무가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선은 나무에게 말했다.     


“이제 연극 교실은 그만 가고, 그 시간에 그림 그릴까?”      


“그래, 좋아!”     


나무는 흔쾌히 대답했다.

왜, 빨리 그런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까?

선은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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