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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랑비탈 Apr 15. 2023

13. 독서와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

선과 나무의 홈스쿨링


영재교육원 수업 첫날, 수업을 마치고 온 나무에게 선이 물었다.     


“오늘, 재밌었어?”     


“재미는 있는데 처음 듣는 말이 좀 있더라.”     


선은 나무가 받아온 교재를 펼쳤다.

고등학교에서 다루는 10―가, 나의 내용이었다.

선행 학습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나무에게는 낯 선 것들이었다.

선과 나무는 서점으로 가서 중학교 2학년과 3학년 수학 교과서, 그리고 수학의 정석, 10―가, 나를 샀다.

그리고 다시 수업계획을 세웠다.


영재 교육원 진도에 맞춰 중학교 1학년 수학부터 수학의 정석 10―가, 나까지 집합 부분부터 영역별로 묶어서 풀어나가기로 했다.     

영재 교육원의 두 번째 수업 전까지 2주간의 시간이 있었다.

그동안 중학교 1학년, 2학년, 3학년 수학 교과서와 수학의 정석 10―가까지의 집합 부분을 모두 풀고, 세 번째 수업 전까지 중학교 1학년부터 10―가까지의 수와 연산 부분을 다 푸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그런 방식으로 방정식과 함수도 푼 다음, 도형과 통계, 확률도 중학교 1학년 과정부터 10―나까지 영역별로 쭉쭉 풀어나가기로 했다.     


중학교 과정은 초등학교 심화 과정과 연결되어 있어 별 어려움이 없지만 정석은 아무래도 혼자 풀기에는 무리일 것 같아 나무가 중학교 과정의 문제를 풀고 있을 때, 선도 나무 옆에서 정석을 풀기 시작했다. 선이 먼저 풀어보고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나무에게 설명해 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웬걸, 나무는 어느새 중학교 과정을 다 풀고, 선 보다 빠르게 정석을 풀고 있었다. 게다가 선은 실수가 잦았는데 나무는 실수도 적었다. (정석은 선이 중학교 3학년 겨울 방학 때, 학원에 다니면서 풀었던 문제들이었는데―반가웠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옛날에 풀었던 문제유형들이 꽤 보였다―선은 그때 실수했던 부분에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긴 시간이 지난 뒤에도 똑같은 문제에서 실수를 반복하는 것에도 웃음이 나왔지만, 그 기억이 어제의 일처럼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 것도 신기했다.)


선은 정석을 덮으며 말했다.     


“잘 됐다! 이제 나무 혼자 풀어도 되겠어! 엄마는 밥만 해줘도 되겠어!”     


문제를 풀던 나무는 고개를 들어 선을 보고 씩 웃더니, 다시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영재 교육원을 다니는 첫 해 동안, 나무는 중학교 1학년 수학부터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인 수학 10―가, 나의 과정까지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풀었다.

힘들어하는 기색도 없었다. 평상시와 조금 달랐던 것은 수학 문제를 푸는 시간이 조금 늘어났을 뿐이었다.

여전히 좋아하는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음악회에도 가고 정기적으로 친구들과 테니스도 쳤다.


그 시간은 선에게도 특별한 시간이 되었다.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도 홈스쿨링의 중요한 목표였는데, 영재 교육원에 다닌 1년의 시간은 나무의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 주었다.

선은 이제 어떤 공부라 하더라도 나무가 혼자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심 놀랐다.

정석을 이렇게 쉽게 풀 다니!

이유가 뭘까?

한 가지밖에 없었다.

독서였다.     


그리고 어디선가 읽은 글이 생각났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아이일수록 이과 과목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성취도를 보인다는 연구였다.

선이 나무를 키우면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은 ‘괜찮아!’였다.

그 말은 선이 어린 시절 가장 위로가 됐던 말이기도 했다.


유난히 감수성이 예민했던 선은 어릴 때, 문득문득, 불안감 속에 갇혀 있었다.

엄마나 아버지가 선을 위해 이벤트를 연출할 때조차―예를 들면, 평소에 갖고 싶어 했던 예쁜 옷이나, 신발, 인형 등을 선물해 주었을 때―행복한 미소를 지어야 마땅한 자리에서 선은 알 수 없는 불안을 느꼈다.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났지만 낯 선 곳에 단독자로 존재한다는 어렴풋한 자각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선을 괴롭혔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따뜻한 눈빛으로 ‘괜찮아!’라는 말을 자주 해 주었다.

아버지의 온기가 담긴 따뜻한 말 한마디에 선의 마음은 금세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아이들에게는 (표현하지 못하는) 불안이 있다.

생래적인 불안 말이다. (그걸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자라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불완전한 존재로 태어났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무력한 존재로 낯선 세상에 홀로 떨어졌다는 걸 말이다).

이때, 부모가 아이에게 냉정하다면, 제거되지 못한 어둠은 아이의 무의식 속에 스며들어 평생 아이를 우울하게 만들 것이다(어쩌면 어둠의 존재보다 부모가 있는데 믿고 의지할 데가 없다는 것이 아이를 더 우울하게, 난폭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부모만 믿고 태어난 생명인데, 부모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말이다).


뇌가 완전하게 발달하기 전단계의 아이들은 여러모로 곤혹스러움을 경험한다. 그래서 선은 아이들에게는 특별히 따뜻하고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은 인생의 선배로서 그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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