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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랑비탈 Apr 01. 2023

11. 나도 상을 타고 싶어!

선과 나무의 홈스쿨링(영재교육원 입학)

          

열두 살 때, 교회에서 온 나무가 현관에서 신발도 채 벗기 전에 말했다.     


“나도 상을 타고 싶어!”     


학교에서 상을 탄 친구들이 교회에 와서 자랑을 한 모양이었다.

선과 선의 남편은 보육사에서 상장 서식을 사서 나무에게 줄 모범상을 만들고, 상장을 수여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 어린이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아름다운 어린이입니다.”      


그런데 기뻐할 줄 알았던 나무의 표정이 시큰둥했다.

이게 아니었나? 선과 남편은 잠시 머쓱해졌다

어린이 집에 다닐 때였다.

나무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선을 보고 억울한 듯이 말했다.     


“엄마! 나 ‘멋진 어린이 자격증’ 만들어줘! 애들한테 내가 멋진 어린이라고 말했더니, 애들이 내 말을 안 믿어!”     


선은 운전 면허증 크기의 종이에 나무의 사진을 붙이고 ‘이 어린이는 멋진 어린이입니다’라고 쓴 다음, 문방구에 가서 코팅을 해서 자격증 수첩에 넣어 주었다.

그런데 그 수첩을 5학년의 나이가 될 때까지 소중하게 들고 다녀서, 선과 남편은 얘가 좀 모자란가?라는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웃었던 적이 있었다.  

그 생각을 하고 상장을 만들었는데 나무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던 것 같았다.      

                                          



나무가 열세 살이 되었을 때, 선과 나무는 초등학교 앞을 지나다가 우연히 지역 학원연합회에서 주최하는 수학경시대회 현수막을 보았다.

선은 상을 타고 싶다는 나무의 말이 떠올랐다.     


“나무야! 우리 저기 한 번 나가볼까?”     


나무는 반색을 하며 말했다.     


“그럴까?”     


선과 나무는 집에서 가까운 학원으로 갔다.     


“홈스쿨링을 하는데 수학경시대회에 접수할 수 있을까요?”     


“예, 가능해요. 수학을 잘하나 봐요?     


작은 체격에 동그란 안경을 쓴 원장 선생님은 웃는 얼굴로 나무의 얼굴을 유심히 보면서―홈스쿨링을 하는 아이에 대한 호기심과 선의가 가득 담긴 얼굴로―흔쾌히 대답해 주었다(그 표정은 제도권 교육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해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고 선과 나무의 선택을 지지해 주는 얼굴이었다).

혹시,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고 접수를 안 해주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했던 선의 얼굴이 밝아졌다.      

시험을 보고 나온 나무의 표정이 밝았다.     


“엄마! 너무 쉬워! 금방 다 풀었는데 엄마가 시험이 끝날 때까지 답안지 확인하라고 해서 지금 나오는 거야!”     

결과는 실수로 한 개 틀려서 준수학왕이었다.

독일의 신문 기자인 니콜라우스 피버가 쓴 책, ‘펠릭스는 돈을 사랑해’를 읽고 또 읽은 나무는 준수학왕이라는 타이틀보다 상금으로 받은 오만 원이 더 신이 난 얼굴이었다.     


“나, 수학경시대회에 또 나가고 싶어!”     


내친김에 이번에는 대학교 영재교육원에서 주최하는 수학경시대회에 접수했다.

2등에 해당하는 금상이었다.

나무는 신이 났다. 집에서 혼자 공부만 하다 누군가에게 공적으로 인정받는다는 게, 나무에게는 무척 신나는 일인 것 같았다.

상금으로 20만 원을 받은 나무가 엄마와 아빠에게 호기롭게 말했다.     


“오늘은 내가 쏜다!”


나무가 앞장서서 간 곳은 식구들끼리 가끔 갔던 오리구이 집이었다.

오리구이 집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나온 나무는 말글터문고 앞을 지날 때, 다시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 여기 들어가자! 내가 엄마, 아빠한테 책 사줄게! 읽고 싶은 책 있으면 다 골라봐!”     


아빠가 웃으면서 말했다.     


“똥개,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선도 나무가 기특한 듯 웃으며 말했다.     


“정말? 엄마도 사고 싶은 책이 있었는데!”      


나무가 말글터 문고의 계단을 내려가면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사고 싶은 거 있으면 다 말해! 내가 다 사줄게!”     


서점에 들어간 선은 알랭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아빠는 새로 출간된 이이화 선생의 ‘한국사 이야기’를 골랐다. 그리고 나무는 가격이 제법 나가는 말론 호아글랜드의 ‘생명의 파노라마’를 골랐다. 계산을 하는 나무의 얼굴이 더할 수 없는 뿌듯함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수학경시대회라는 이벤트에 신이 난 나무는 가을에도 지역 학원연합회에서 주체하는 수학경시대회에 나갔다.

이번에는 대상이었다.

10만 원을 상금으로 받은 나무는 이번에는 어디에 쓸까? 궁리를 하다 영어 공부에 필요한 카세트 플레이어를 샀다.      

                                          



우연처럼 시작된 수학경시대회의 입상은 뜻하지 않게 나무의 진로에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

율곡 경시대회가 끝나고 강릉대학교 영재교육원에서 모집요강을 발표했다.

그런데 다른 대학교의 영재교육원 모집 요강과 다르게 제출 서류에 초등학교 성적 증명서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나무에게는 청신호였다. 세 번의 경시대회를 통해 나무는 이미 지역의 수학영재로 손꼽히고 있었다.


선은 원서를 준비해서 영재교육원 사무실로 갔다.

노크를 하고 들어갔을 때 담당 직원은 통화 중이었다.     


“예, 이번 강원 수학올림피아드에서 금상을 받은 홈스쿨링을 하는 학생이요, ……예, ……예, ……예.”     


선은 의아했다. 전화로 문의한 적도 없고, 첫 방문이었는데…… 영재교육원 직원은 누군가와 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통화가 끝난 직원은 나무의 서류를 친절하게 받아 주었다.

후에, 선은 (소문으로) 그 전화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무가 영재교육원에 접수하기 전에 나무와 같은 학년의 아이를 둔 엄마가 영재 교육원에 “홈스쿨링은 받아주면 안 된다고!” 전화를 했던 것이다.

그걸 영재교육원 원장님에게 보고하는 과정에서 선이 사무실에 들어갔던 것이다.


나무는 수학경시대회 입상 성적으로, 특별전형으로 합격했다.

엄마들 사이에서 “홈스쿨링을 왜 받아주냐고! 공평하지 않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뭐가 공평하지 않단 말일까? 선뜻 앞뒤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럼, 학교에 다니는 게 불공평하다는 말인가?

그런데 엄마들의 불평이 아이들의 입에서도 똑같이 튀어나왔다.

영재교육원 캠프에서 어느 아이가 나무의 등 뒤에서 말했다.


“야! 영재교육원에서 홈스쿨링을 왜 받아 주냐? 말이 되냐? 학교도 안 다니는 애를 왜 받아 주냐고? 불공평하게!”     


아이들과 엄마들의 생각은 학교에 다니는 것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럼,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면서 왜 계속 학교에 다니는 것일까.

불공평하다는 말의 배후에는 공교육에 대한 적지 않은 불만과 불안을 갖고 있다는 게 아닐까.


선은 엄마들이 공교육의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았던 자신들을 합리화하기 위한 반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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