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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랑비탈 Sep 13. 2023

7. 그의 눈빛 속에 그가 보낸 시간들이 보였다

<소설> 애니메이션 회사


            

권도현은 나와 자연스럽게 만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애타게 찾고 있는 거 같았다.

야유회에서도 작품이 끝나고 마련된 쫑파티를 하는 호텔의 연회장에서도 우리 부서의 자리는 언제나 엉뚱하게 제작부와 (심지어 한 방에서 같이 작업하는 칼라부와도) 멀리 떨어진 권도현이 있는 자리의 옆 테이블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으므로 그는 나에게 다가올 수도 말을 걸 수도 없었다.

그걸 지켜보던 (같은 부서의) 희재언니가 말했다.


“불쌍해 죽겠어! 어떻게 좀 해봐!”     


나는 삐죽,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뭐!”     

    



……첫사랑의 깊고 푸른 그림자, 여전히, 나는 그곳에 갇혀 있었다.      


왜? 그랬을까?

그는 나에게 사랑을 훔쳤다.

가장 도덕적으로 보였던 그가.

스스로를 속이면서

나를 속이면서     


나는 첫사랑에 대한 복수를 권도현에게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차피 결혼한 남자의 사랑은 버려질 사랑이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총무과 직원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부탁한 날이었다.

권도현은 창고 앞을 지나다가, 직원에게 내가 준 청구서를 빼앗아 갔다(그가 그런 자잘한 일에 신경 쓸 위치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청구서를 보던 권도현이 갑자기 나를 향해 소리쳤다.


“야! 내가 널 잡아먹냐?”


맙소사!

심장을 뚫고 나온 그의 목소리가 마치 동물의 울부짖음처럼 크게 들렸다. 다른 직원들도 옆에 있는데. 그의 눈 속에 (원망으로 가득 찬) 검고 깊은 동굴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들은 게 없는 것처럼, 그가 챙겨준 것들을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받으며 “고맙습니다”라는 말만 그에게 남기고 1층으로 내려왔다.


계단으로 내려오는 내내 가슴이 뛰었다.

나는 수영언니 책상 위에 물품들을 내려놓고 희재 언니의 자리로 가서 그녀의 목을 끌어안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권실장이 나보고 갑자기 ‘야! 내가 너를 잡아먹냐?’ 그렇게 말했어!”


희재 언니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어머!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아무리 눈치가 빠른 희재언니라 하더라도 언니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 그리고 희재언니의 눈이 갑자기 동그랗게 확장되더니 “저기 권실장님 온다!”라고 말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때, 권도현은 우리 부서 앞을 지나 천천히 배경부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나는 그를 이해했다.

지나치게 이성적인 나의 행동에 그는 질식할 것 같은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권도현은 왜 회사에 나오지 않았을까?

한 달쯤 지났을 때, 그가 누구와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총무과 여직원이 특유의 무심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내가 보고 싶지 않았을까?

나는 표정이 없는 총무과 직원에게 권도현이 곧, 돌아올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며칠 후, 사장이 작업실에 내려와 내가 셀에 그림을 그리는 것을 멀뚱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걸 본 채경언니가 내 자리로 오면서 “사장님! 사장님이 물어보셨던 희망이가 바로 그 친구예요!” 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자, 사장은 무슨 잘못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당황해하며 “보나 마나 예쁘지, 뭐!”라고 얼버무리고 급하게 자리를 떠났다.

사장이 우리 부서를 빠져나가자 채경언니가 여전히 의아해하는 내 표정을 보면서 말했다.


“아! 사장님이 우리 회사에 희망이라는 아가씨가 있다던데 누구냐고 물어보셔서……”




예상대로 권도현이 돌아왔다.

두 달 만이었다.

한결 차분해진 모습,

거친 물음에 달린 답들…….


그는 초라한 밥상을 공손하게 받아 든 선비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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