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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연 Feb 27. 2020

돈키호테를 찾아서 14

두 번째 미술관



프라도 미술관에서 만난 거인



지난 며칠간 레지던스의 빛나는 유산과 스페인 농구의 위대함을 경험했기에 이제 돈키호테와의 정면승부를 시작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스페인의 또 다른 굉장한 보물을 경험하기 전에 돈키호테에게 들이대는 것은 준비가 덜 된 채 풍차에게 돌진하는 늙은 기사 꼴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들었다. 그렇다. 뭐든 신중해서 나쁠 건 없지 않은가.


그리하여 나는 '프라도 미술관'으로 향했다. 마드리드 3대 미술관이자 세계 3대 미술관인, 명실상부 스페인의 대표 문화유산이자 마드리드의 노른자... 그곳을 방문하기로 했다. 오전에는 오히려 사람들이 붐빈다는 첩보에 오후 1시가 지나서 가니 오전에 관람을 뚝딱 마친 사람들이 점심을 먹으러 빠져나오고 있었다. 첩보가 유효해서일까, 아트 패스가 있는 나는 줄을 설 필요 없이 그대로 미술관으로 입장했다.


2019년 가을의 프라도 입구. 200주년을 맞아 공사 중. 내가 가는 곳은 언제나 공사 중.


2018년 4월 퓰리처상 비평 부문 수상자인 미술비평가 제리 살츠(JerrySaltz, 71)는 뉴욕에서 열린 프리즈 뉴욕(Frieze New York) 아트페어의 강연 자리에서 젊은 예술가들에게 열 가지 조언을 나눠줬는데, 그중 하나가 이것이다. “여행할 기회가 생긴다면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가라. 버스를 타든, 비행기를 타든, 무조건 그곳에 가야 한다. 가서 3일을 그곳에서 보내라. 다른 곳은 필요 없다.”

                                              

지난해 이 기사를 읽고서 알게 된 곳이 프라도 미술관이었다(내 자신이 미술 문외한이라는 걸 앞서 내내 강조했음. 그럼에도 쪽팔림). 제리 살츠 역시 이 기사로 알게 된 미술 비평가였는데, 그가 남긴 다른 아홉 가지 조언 역시 너무나 절절해서 나는 그의 조언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로 했고 이후 주변에도 널리 알려야 할 예술가의 금언이라 주장해왔다. 여기서 그가 남긴 금과옥조 같은 열 가지 조언을 한번 살펴보려 한다. 이는 내 주장의 신빙성을 얻으려는 것이기 때문이지 결코 원고 페이지 분량을 늘리려는 꼼수가 아님을 강조한다(편견을 접고 읽어보시면 동의하실 것이오).


제리 살츠(JerrySaltz) 2018 퓰리처상 수상자. 미술평론가


제리 살츠의 젊은 예술가를 위한 열 가지 조언


1. 작가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자기 생각을 '구슬로 꿰어내는 것'이다. 당신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든 작품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예술은 없다.


2. 작가의 삶은 고되다. 그러므로 정말, 정말, 정말, 정말로 꼭 하고 싶을 경우에만 그 길을 택하라.


3. 밤을 꼬박 새울만큼 치열하게 하고, 동료 작가들과 서로 지지해주라. 혼자서 버티기엔 당신이 굉장히 약한 존재임을 잊지 마라.


4. 가난하게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삶이 절대 지루하진 않을 것이다.


5. 질투를 이겨내라.


6. 당신 작품의 의미는 당신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마라. 오스카 와일드는 “당신이 당신 작품을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죽은 것”이라고 했다.


7. 강인해져라.


8. 여행할 기회가 생긴다면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가라. 버스를 타든, 비행기를 타든, 무조건 그곳에 가야 한다. 가서 3일을 그곳에서 보내라. 다른 곳은 필요 없다.


9. 당신의 작품을 위해 7명만 설득해라. 네 명의 컬렉터, 한 명의 딜러, 두 명의 비평가에게 당신의 작품이 기회를 얻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설득하면 된다. 7명이면 된다!


10. 공격을 받아들여라. 당신 자신을 드러내고, 당신의 의견을 가져라. 그리고 기억하라. 당신은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덜 알고 있다는 것을.


어떠한가? 노 비평가의 삶과 예술에 대한 통찰이 철철 느껴지지 않는가? 아니어도 어쩔 수 없지만, 젊은 예술가들이 새겨들으면 정말 좋을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특히 1, 4, 5, 10번에 공감한다. 그리고 8번을 실현하기 위해 지금 이곳 프라도 미술관에 와 있다. 3일이 아니라 석 달이 내게 주어졌고 오늘은 프라도를 방문한 첫 날일 뿐이다. 나는 제리 살츠의 조언을 상기하며 미술관 안으로 들어섰다.


이곳을 먼저 방문했던 분들의 조언에 따라 먼저 가장 위층인 3층으로 올라갔다. 3층부터 훑어 내려오며 그림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방대했다. 먼저 램브란트와 루벤스 그리고 플랑드르 지방 화가들의 그림이 쉴 새 없이 펼쳐졌다. 플랑드르 지방과 네덜란드는 과거 스페인의 식민지였기에 그곳 화가들의 여러 작품이 여기에 와 있었다. 특히 벨기에 한 화가가 그린 ‘랜드스케이프 페인팅’이라는, 마치 전투 지형도 같은 그림에 푹 빠졌는데 그림의 중심부에 자리한 적의 성채 조감도에서 시작해서 그림 앞부분에 와서는 적의 성안으로 대포를 날리는 아군의 모습이 과장된 원근감으로 그려져 있었다. 원근감을 적당히 무시했지만 멀리 상대 성곽 혹은 전투지를 조감해서 세밀하게 그린 그림은 그 자체로 전술 지도이자 전투 기록을 남긴 그림이 아닌가 싶었다.


뒤이어 ‘도팽의 보물 방’은 원형의 전시 공간이었는데, 그곳에 루이스 14세의 아들인 루이 드 프랑스, 일명 ‘그랑 도팽’ 소유의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 보물들은 도팽의 아들인 스페인 왕 펠리페 5세가 상속받아 프라도에 남기게 된 것이었다고 한다. 크리스탈, 옥, 금, 은, 등을 정교하게 세공한 아름다운 장식품들이 마치 인디아나 존스가 잠입해 훔쳐야 할 것처럼 폼나게 자리해 있었고 보물을 담는 전용 가죽 함 역시 가죽 본연의 결을 잘 살린 채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다. 인디아나 존스의 도둑질을 돕고 내용물 대신 가죽 함만 좀 챙겨도 나는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


2층에서는 방대한 분량의 종교화와 정물화가 보였는데,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가 활동하던 1500년대에서 1600년대 작품들이 많아 그 시대의 시대상을 마치 활동사진 보듯 경험할 수 있었다. 역시 돈키호테를 쓰기 위해 봐 둬야 할 것은 많았고 내가 글 작업을 미루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게 아니라는 걸 스스로 다시 납득할 수 있게 되어 좋았다. 하하.


이어서 수많은 인물화가 전시실을 채우고 있었다. 사진이 없던 시절, 왕가와 귀족들은 사진을 찍듯 궁정화가를 시켜 이렇게 기록을 남긴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한 업무를 수행하는 궁정화가 중 '고야'가 있었다. 스페인의 영혼과도 같은 고야가 그의 궁정화가로서 의무로 그린 그림들이 파스텔 톤의 밝고 화려한 색채로 빛나고 있었다. 그 시대 왕족과 귀족들이 내 눈앞에서 생생하게 살아나고 있었고, 그만의 인간의 살아있는 표정을 덕지덕지 묻힌 화풍에 완전히 반해버리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1층으로 내려간 뒤 목격한 그의 변신은 마치 반전영화를 보듯 소름이 돋고야 말았지만.


프라도에 한 번만 올 것은 아니지 않은가? 2층의 1/3 지점을 지날 즈음 이미 내 체력은 방전되기 시작했고, 제리 살츠가 프라도의 마드리드에서 3일을 지내다 오라고 한 이유가 바로 이것에 있음을 절감했다. 프라도는 매우 크다! 루브르나 바티칸이나 프로도나 일단 크기로 먹고 들어가는 것이다. 다행히 프라도 미술관은 매일 마감 2시간 전에는 프리하게 들어올 수 있고 내게는 두 달 반의 시간이 남아있다. 나는 남은 전시들을 스킵하고 1층의 고야를 향해 내려갔다.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 프란시스코 고야. 프라도 미술관


오늘 프라도에서 집중해 보려던 것이 고야의 그림들이었다. 3층과 2층의 고야는 궁정화가로서 그리고 풍속화가로서의 뭐랄까 잘 정돈된 웰메이드의 작품들을 그리고 있었다. 그것은 직업 화가로, 왕족과 귀족의 주문을 받아 사진과도 같은, 조선왕조실록의 한편에 들어갈 것 같은 그림들을 채워야 했던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충분히 영혼을 불어넣은 그림들이었지만, 1층의 고야는 즉 그의 좀 더 자연스러워진 말년의 작품들은, 그가 얼마나 강렬하고 열정적인지를 느끼게 해 주었고 시대의 고뇌와 아픔을 또렷하게 드러내 주고 있었다.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란 작품은 프랑스에 함락당해 총구가 겨눠진 스페인 민중의 참혹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표정 하나하나에 고통과 두려움이 느껴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어찌 그리 생생하게 살아있는 질감으로 묘사하고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또한 자기 아들을 잡아먹는 사르트누스를 그린 그림과 어딘가 불만 어린 적당히 취한 두툼한 볼의 자화상을 보면 광기로 들끓는 그의 내면이 얼굴 근육마다에 도드라진 듯했다. 이러한 그의 어두운 화풍의 그림들 끝에서 마침내 내가 가장 보고 싶었던 그의 그림 <거인>을 볼 수 있었다.


 <거인> 프란시스코 고야. 프라도 미술관


어둔 밤 분주한, 개미 같은 피난민들이 검은 평야에 쏟아져 있고 그들 뒤로 캔버스를 가득 채운 거인의 뒷모습이 밤과 같이 드리워져 있다. 아 이것이 고야의 내면이고 이것이 스페인의 풍광이며 이것이 이 부박한 민족의 영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폭풍처럼 감도는 그림이었다. <거인>은 거기에 있었고 스페인도 거기에 있었다.  


프라도를 나와 보니 정문 앞으로 고야의 동상이 떡하니 자리해 있었다.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은 같았지만 머리에는 하얀 새똥이 그득했다. 역시 동상은 비둘기들 공중변소일 따름이다. 나는 고야의 영혼에 취해 얼얼한 기운의 머리를 식히며 대로변을 걸어 숙소까지 도달했다. 다시 프라도에 가 고야와 새로운 프라도의 보물들을 목격할 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졌다.


새똥을 뒤집어쓴 스페인의 거인, 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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