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호연 Mar 14. 2020

돈키호테를 찾아서 22

알깔라 데 에나레스 上


아, 이곳이 바로 세르반테스 님이 탄생한 그 고귀한 땅이란 말인가.



지난 2회 내내 글쓰기 단상과 작가의 일상에 대해 적었다. 돈키호테에 대해 본격적으로 쓰겠다고 한 지가 언제인데 계속 단상과 일상을 끄적이고 있느냐 하면... 역시 글은 안 풀리고 무어라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것도 어렵지만 돈키호테라는 고전을 내 방식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오는 어려움은 여전히 컴컴한 어둠 속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일 따름이다.


아니, 마드리드의 세르반테스 길과 세르반테스 집을 방문했고 세르반테스 동상도 마주했으며 돈키호테 타일 그림이 그려진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과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구상한 감옥 건물까지 다녀왔는데도 막막하기만 하고 안 써지면 어떻게 한단 말이냐. 그렇게 막연히 핑계를 대고 있는 동안 시간은 잘도 흘러 마침내 10월 8일이 되었다. 세르반테스 옹이 내게 준 미션이 떠올랐다. 내일은 그의 생일. 그렇다. 나는 지금 바로 알깔라 데 에나레스로 가야 한다. 그의 생일 전야를 만끽하고, 그의 생일에 그의 고향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전 노력이 다 실패한다 해도 세르반테스 옹의 미션을 수행하고 나면 비로소 물꼬가 트이고 나는 마드리드에 온 목적, 바로 나만의 돈키호테를 쓰는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샘솟기 시작했다.


2019년 Mercado Cervantino 공식 포스터 



거두절미하고 여전히 햇살이 뜨거운 10월 8일 오전, 나는 레지던스에서 지하철을 타고 아토차 역으로 향했다. 마드리드의 서울역 격인 아토차 역은 이전에 말라가에 갈 때 렌페를 타러 한 번 온 적이 있다. 이곳에서 알깔라 데 에나레스 행 열차를 타고 가면 된다. 알깔라 데 에나레스는 마드리드 근교 도시이고 우리로 치면 서울-양평 거리로, 즉 이번 여행은 경춘선을 타고 양평에서 내리는 정도라고 보면 된다. 어느덧 한 달 넘게 마드리드에서 지내다 보니 모든 지리를 한국과 비교해 이해하는 버릇이 생겼다. 재미도 있고 외우기도 쉬워서 그렇게 된 듯하다. 예컨대 마드리드를 서울이라고 치면 바르셀로나는 부산, 세비야는 전주, 말라가는 여수, 이런 식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알깔라 데 에나레스는? 거리상으로는 양평이지만 직접 다다라 겪는 도시의 실체는 또 다를 것이다. 이쯤에서 이 도시에 대해 좀 더 객관적으로 정리된 내용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알깔라 데 에나레스

Alcalá de Henares


에스파냐 중부 마드리드 주(州)에 있는 도시. 마드리드 북동쪽 약 30km, 에 나레스 강 연안에 자리 잡고 있다. 알깔라는 아랍어로 ‘성(城)’이란 뜻이다. AD 1000년 파괴되었으나 1038년 무어인이 재건하였으며, 1083년 알폰소 6세가 탈환하였다. 화학제품 · 면제품 · 향수 · 도자기가 생산되며 ‘알깔라 아몬드’가 유명하다. 산후스토 교회와 오래된 대학 건물이 있다. 대학은 1508년 성서 편찬으로 유명한 메네스 추기경이 건설한 것인데, 1836년 마드리드로 옮겨졌다. 세르반테스와 페르난도 1세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두산백과에서 퍼 온 알깔라 데 에나레스에 대한 소개다. 세 개의 키워드로 살필 수 있는데 ‘대학’, ‘세르반테스’ ‘아몬드’가 그것이다. 아몬드라니, 반드시 아몬드를 찾아 먹어야 할 판이다. 아무튼 알깔라 데 에나레스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고 교육도시 이미지가 강하다. 유서 깊은 대학들이 많았고 지금도 대학들이 융성해 이곳에 유학 온 한국 대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르반테스가 태어난 도시로 유명하다. 세르반테스의 생일에 맞춰 세르반테스 축제를 열고 세르반테스 문학상도 만들어 주는 등 이 도시는 세르반테스의 위엄과 존영이 넘치는 동네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나도 지금 가는 것이 아닌가.


기차에 오르고 삼십 분 정도 지났을까, 벌써 종점인 알깔라 데 에나레스에 도착하고 말았다. 마음의 준비도 할 겨를 없이 나는 바로 역을 빠져나와 도시 중심을 향해 걸어 나갔다. 이 도시의 첫인상은 우리나라 지방도시 느낌 그대로였다. 소박한 역과 역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도심으로 가는 길, 대도시의 붐비는 차량과 사람들 대신 여유 있고 느긋한 거리 풍경... 이 펼쳐졌지만 본격적인 축제의 메인 거리에 다다르자 인구밀도와 거리의 공기 자체가 달라지고 있었다. 역에서 15분 정도 걸어가자 나타난 축제의 메인 거리는 이미 장터 모드로 변화한 채 어디서들 몰려온 건지 북적이는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있었고 이곳이 지금 세르반테스 축제인지 전국 먹거리 축제인지 모르게 좌판이 한가득 늘어서 있었다.


Mercado Cervantino 메르까도 쎄르반티노!


Mercado Cervantino!


벌써 꼬챙이에 꽂힌 채 적당히 그을려진 돼지다리와 쏘시지가 나를 맞이하고 있었고 편의점 테이블 크기의 원형 불판에서는 한 번에 백 명은 먹을 법한 빠에야가 익어가고 있었으며, 감자니 호박이니 가지니 하는 야채들이 모둠으로 구워지는 곳은 도저히 그냥 지나치기 힘들 정도로 침샘을 자극했다. 나는 이곳에 먹으러 온 게 아니다. 세르반테스의 흔적을 찾아온 것이고 그의 축제에 있을 여러 이벤트를 통해 그에 대해 조명해보아야 하며 최대한 그를 느끼고 그에 대해 쓸 수 있는 영감을 몸소 충전해야 한다. 그렇게 다짐하며 먹부림을 자제하고 걸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화천 산천어 축제에 온 외국인 꼴이 되어 마냥 신기하게 두리번댈 따름이었다.


잠시 뒤 큰길을 꽉 채운 좌판 행렬을 피해 공원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나 공원 역시 여러 가지 행상들이 축제를 위해 들어서는 중이었는데, 모두 세르반테스 시대의 흔적을 연상케 하는 것들이었다. 대장간으로 꾸민 기념품 상점, 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공예품을 파는 상점, 전통 면제품을 늘어놓은 좌판 등 분위기는 과거였지만 그 안에 상품들은 현재에도 통용될 기념품과 생활용품이었다. 나무로 깎은, 마치 <반지의 제왕>에나 나올 법한 맥주잔에 정신이 팔린 나는 얼마에 흥정하면 될까를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몸을 돌렸다. 그때 내 눈앞에 공원 중앙에 우뚝 선 동상이 보였다. 좌판에만 집중하느라 미처 확인하지 못한 그 동상을 향해 내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세르반테스 축제의 중심가 공원에 자리한 그 동상이 누구일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동상 앞에 다다른 나는 무릎이라도 꿇을 자세로 엉거주춤 선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마드리드의 작은 광장에서 마주친 그, 세비야의 어느 길가 구석에서 마주친 그, 그리고 이제 이곳 그의 성지에서 비로소 우뚝 선 그를 재회할 수 있었다. 세르반테스 동상은 (공사로 문 닫은 스페인 광장 동상을 제외하고) 그동안 내가 본 그의 동상 중 가장 늠름하고 웅장해 보였다. 한 손엔 깃털로 된 펜을 들고 허리에는 날렵한 칼을 찬 채 서 있는 청동 세르반테스는 이 도시를 지켜주는 수호신의 풍모로 자신의 생일 축제를 준비 중인 후손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너희들 나 덕에 먹고 사니 한상 거하게 차려봐라. 풍악을 울려봐라. 신나게들 놀아봐라.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세르반테스 머리 위에 어김없이 갈매기 한 마리가 떡하니 앉아있었다. 고얀 놈! 하지만 다시 보니 흰 갈매기는 마치 세르반테스에게 내리쬐는 강렬한 햇살을 막아주는 하얀 타원형의 모자처럼 보였다.


갈매기 모자를 멋지게 착용한 세르반테스 동상



갈매기를 모자로 쓴 세르반테스에게 다시 찾아뵐 것을 눈으로 나누고 관광안내센터로 향했다. 이곳 대학교 학생이자 관광안내센터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듯한 여자분이 나를 맞아주었다. 내가 세르반테스 축제를 보기 위해 왔다고 하니 그녀는 한없이 반가운 태도로 몇 가지 팸플릿과 도시 지도를 주었고 축제 기간 중 있을 주요 행사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중 두 가지를 듣고 나는 그 자리에서 펄쩍 뛰고 싶었는데, 어떤 것인지는 다음 회에 밝히도록 하겠다.


한편 관광안내센터는 작은 세르반테스 박물관을 겸하고 있었기에 나는 관광안내는 물론 세르반테스에 관한 여러 자료들을 동시에 섭렵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그동안 본 것 중 가장 잘 생긴 세르반테스 석고상과 그의 다양한 초상화를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초기 돈키호테 판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철철 넘치는 고서의 분위기만으로도 나는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온 지 겨우 삼십 분이 지났는데 나는 마치 노다지를 발견한 도굴꾼인 양 정신없이 감탄하며 사진 찍어대기 바빴다.


관광안내센터 內 세르반테스 작은 박물관 - 세르반테스 초상들


관광안내센터 內 세르반테스 작은 박물관 - 잘생긴 흉상과 돈키호테 초판



관광안내센터를 나온 나는 참을 것 없이 세르반테스 생가로 향했다. 그곳을 향해 가는 동안에도 세르반테스 축제를 위해 차려진 수많은 좌판을 지나며 다시 끓어오르는 식욕과 싸워야 했다. 이미 정오가 지난 시간, 뭐라도 먹고 가도 되지만 안내센터 분 말에 따르면 광장에서 생가가 그리 멀지 않다고 했다. 무엇보다 오후가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동네의 메인 코스인 세르반테스 생가로 몰려올 것이기에 조금이라도 덜 붐빌 때 그곳에 가야 했다. 나는 호객행위와 좌판 음식의 유혹을 뒤로하고 인파를 헤집으며 진군을 거듭해 마침내 세르반테스 생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사진에서 보던 그대로 생가 앞 벤치에는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가 나란히 앉아 서로 의논(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돈키호테가 산초에게 일장 연설을)하는 모습의 동상이 익살스럽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돈키호테와 산초 사이의 공간에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아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이미 붐비고 있었다. 덩치 큰 서양 아저씨 아줌마들도 모두 라만차의 두 시골 영웅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은지 큰 엉덩이를 방패 삼아 나를 막아서고 있었다. 저마다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사진기를 켜고 나의 영웅 두 명을 에워싼 그들이 내게는 마치 물리쳐야 할 풍차의 뒤태와도 같아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돌진하기보다는 작은 덩치를 활용해 비집고 들어가기로 했다. 그들 사이에 빈 공간을 침투해 마치 손흥민이 빠른 스피드로 프리미어 리그의 대형 수비수들을 제치듯 날쌔게 그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리하여 사진을 찍기 위한 대기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고 바야흐로 내 차례...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 사이에 앉은 나는 셀카 포즈로 스마트폰을 들어보았으나 역시 예상한 문제가 벌어졌다. 돈키호테와 찍으면 산초가 안 나오고 산초와 찍으면 돈키호테가 안 나오는 것이다! 두 사람을 번갈아 찍을 수도 있지만 둘 모두와 함께 찍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때 내 곤경을 바로 이해한 독일인지 네덜란드인지 아무튼 키가 크고 혀를 꺾어 발음을 많이 하는 아저씨가 대뜸 카메라를 달라고 하셨다. 나는 구원자를 만난 듯 그에게 카메라를 건넸고, 그는 돈키호테와 산초 사이에 앉은 채 만면의 미소를 짓는 동양인의 사진을 찍어주다가... 그대로 스마트폰을 들고 달아나버렸다...


...라고 하면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겠지만(주인공이 곤경에 빠질수록 이야기는 달아오른다), 그는 내게 두 장의 사진을 찍고 마음에 드냐고 확인해보라고까지 하는 친절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감사를 표했다.

 

헤이 요 맨! 위 메이드 잇!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 사이에 드디어 자리한 나. 그게 무슨 의미일까? 별 것도 아닌 그 행동과 사진 한 장에 이미 행복감이 차올랐다. 마드리드에 오기로 결정된 후 지난 몇 개월 간 이 둘을 쫓아 마음과 몸이 계속 움직여 왔기에, 마치 정품 피규어를 손에 쥔 덕후처럼 흥분된 기분이 멈추지 않고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센스 있게 자원해서 사진을 찍어주신 친절한 게르만족(으로 추정되는) 아저씨께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사진을 찍은 뒤 세르반테스 생가에 들어갔다. 원래는 입장료를 받는 듯했지만 축제 기간이어서 무료개방인 듯했다. 세르반테스의 생가는 뭐랄까, 예상한 그대로였다. 중세 말기 스페인 유태계 가정집의 풍경을 살피며 내부를 한 바퀴 돌았다. 차분하게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공간을 음미할 따름이었다.


생가를 나와 간단히 요기를 한 뒤 숙소로 향했다. 여장을 풀고 잠시 쉰 뒤(시에스타) 다시 거리로 나와 점점 달아오르는 세르반테스 축제의 전야를 돌아보았다. 낮에는 보지 못했던 거리 곳곳의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의 흔적도 발견할 수 있었다. 문 닫은 상점의 셔터와 거리 벽화, 기념품점 등에는 돈키호테 혹은 세르반테스의 마르고 강인한 골격이 빠지지 않고 새겨져 있었다. 나는 좌판에 널린 맥주 한 잔을 사들고 그 밤 그 도시를 즐겼다. 그리고 내일 있을 본격적인 무대를 그리며 일찍 잠을 청했다.


다양한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 이미지 그리고 조금 독특한 돈키호테 & 산초 판사 조합
이전 21화 돈키호테를 찾아서 2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